[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아르헨 “포클랜드는 우리 땅”, 트럼프 뒷배 삼아 英 흔들기

남대서양 끝 작은 섬이 다시 지정학의 무대로 소환되고 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피를 흘리며 싸웠던 곳, 포클랜드 제도(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의 포클랜드 영유권에 대한 입장 재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잠잠했던 갈등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74일 전쟁, 승패 넘어 정치까지 흔들어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영국이 지배해온 포클랜드 제도를 전격 점령하면서 전쟁의 막이 올랐다. 정치적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선택한 ‘도박’이었다. 당시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즉각 대응했다. 항공모함, 원자력잠수함 등 함정 111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기동부대를 1만3000km 떨어진 전장으로 급파했다.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원정전이었다. 미국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해전에서 영국군은 함대공 미사일, 어뢰 등으로 공세를 펼쳤고 아르헨티나군은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로 맞섰다. 영국군의 해리어 전투기는 아르헨티나 전투기들을 상대로 공중 우위를 확보했다. 해리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직이착륙이 가능했던 전투기였다. 전쟁의 추는 서서히 영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정적 순간은 육상에서 왔다. 영국군은 상륙작전을 감행해 교두보를 확보한 뒤 진격했다. 마침내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이 항복했다. 74일간의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전쟁으로 아르헨티나에서 649명, 영국에서 255명의 전사자가 나왔다. 민간인인 포클랜드 주민 3명이 영국군 포격 과정에서 사망했다.
포클랜드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양국 정치의 향방을 바꿨다. 지지율 하락으로 낙마 위기에 처했던 대처 영국 총리는 재선에 성공했고,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붕괴해 민주화를 앞당겼다.
군사적으로도 이 전쟁은 현대전의 본질을 드러냈다. 항모·핵잠수함·미사일, 공군 전력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후 영국은 이곳을 남대서양·남극을 잇는 전략 거점으로 삼아 군사력을 상시 배치해왔다.
◆중동전쟁 여파, 남대서양까지 번지다
포클랜드의 가치는 전쟁 이후 더 커졌다. 과거엔 어업권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에너지와 군사 패권이 핵심이다. 인근 해역에는 최대 31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극 자원 경쟁과 항로 통제까지 감안하면, 이 섬은 더 이상 펭귄들이 사는 땅이 아니다. 지정학은 늘 그렇듯, 가치를 뒤늦게 증명한다.
그런 포클랜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의 대(對)이란 군사 협력에 불만을 표시하며,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에 대한 입장을 재검토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다. 앞서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전쟁 군사 지원에 비협조적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을 상대로 불이익 조치들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 중에는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 등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해외영토’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입장을 재고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노골적 친(親)트럼프 행보를 해 온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르헨티나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공세에 나섰다. 토리아 비야루엘 아르헨티나 부통령 겸 연방상원의장은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의 땅”이라며 “영국은 법적, 역사적, 지리적 이유를 근거로 한 우리의 주장에 대해 양자 논의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영유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끝나지 않은 영유권 분쟁
포클랜드 제도는 아르헨티나 남부 파타고니아 대륙붕에 위치한 군도다. 아르헨티나 동쪽 약 480km 거리에 있다. 두 개의 큰 섬과 70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총면적은 약 1만2000㎢로 전라남도와 비슷하다.
포클랜드 제도는 오랜 식민지 역사 속에서 영유권 분쟁이 축적된 대표적 지역이다. 이 군도에 처음 발을 디딘 서양인은 영국 선원들이었다. 1690년 존 스트롱 선장은 이 지역을 항해하며 ‘포클랜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영국 해군의 후원자였던 포클랜드 자작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어 프랑스인들이 들어왔다. 1764년 프랑스 북서부 항구도시 생말로에서 출항한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은 이 섬을 ‘말루인’(Malouines)이라 불렀다. ‘말루인’은 특정한 뜻을 지닌 단어가 아니라 ‘생말로 출신 사람들’을 가리킨디. 그는 생말로 출항에 의미를 두고 이같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는 포클랜드에 소규모 식민지를 세웠다.
영국인들은 1765년 다시 돌아와 전체 섬들을 자국 영토로 선언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1766년 군도에 대한 권리를 스페인에 넘겼다. 프랑스어 ‘말루인’은 스페인어로 바뀌면서 ‘말비나스’가 됐다.
스페인은 섬을 통제했지만 영국과 갈등을 빚었다. 여기에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아르헨티나도 가세했다. 아르헨티나는 포클랜드를 ‘말비나스’라 부르며 자국 영토라고 주장했다. 1833년 영국은 섬에 있던 스페인·아르헨티나 세력을 몰아내고 섬에 대한 지배를 확립했다
영국-아르헨티나 갈등은 1982년 전쟁으로 폭발했다. 이후 포클랜드는 영국의 전략 거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아르헨티나의 영유권 주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갈등 위에 최근 국제 정세가 다시 얹히고 있다. 이란 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영국 간 균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과 밀레이 대통령 간 밀착 관계가 맞물리면서, 포클랜드는 다시 국제 정치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남대서양의 외딴 군도는 오늘도 조용하지만, 그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는 지정학의 격류가 다시 흐르고 있다. 제국주의의 유산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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