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남긴 채 야적⋯포천 폐차장 화재가 드러낸 ‘법의 공백’
전기차는 의무·일반차는 공백⋯엇갈린 법 기준
“입고 즉시 제거해야”⋯폐차 단계별 법 제도화 필요

포천시 가산면의 한 폐차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폐차 차량에 남아 있던 배터리와 잔존 연료가 얼마나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를 사전에 차단할 명확한 법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났다.
15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일 오전 4시40분쯤 포천시 가산면의 한 폐차장에서 불이 나 야적돼 있던 차량 600여 대 가운데 약 300대가 전소됐다. 불은 약 2시간 만에 진화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인접 야산 일부가 소실됐고, 민가 2채가 열변형 피해를 입는 등 자칫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화재 당시 CCTV 영상에는 교통사고로 폐차된 카니발 차량의 엔진룸 쪽에서 불꽃이 번쩍이는 장면이 포착됐다. 소방 당국의 CCTV 분석과 현장 감식 결과, 배터리 인근 퓨즈블록에서 전기적 단락 흔적이 발견되면서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 법령을 보면 전기차의 경우 구매 보조금을 받은 차량이 폐차될 때 배터리를 분리해 반납하도록 규정돼 있다. 대기환경보전법과 환경부 고시에 따라 반납된 배터리는 재사용·재활용·매각 절차를 거쳐 관리하는 것이 법적 의무다. 특히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는 반드시 배터리를 분리해 지정된 장소에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더 큰 문제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의 경우 배터리와 연료 등 위험 요소를 사전에 관리하도록 명시한 법 조항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폐차 차량의 배터리·연료 제거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제거 시점과 방법, 차량 야적 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률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관리 책임이 사업자 자율에 맡겨지고, 영세 폐차장의 경우 안전 조치가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를 계기로 폐차 단계별 안전 기준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폐차 차량 입고 즉시 배터리와 연료를 제거하도록 의무화하고, 차량 간 이격 거리와 방화 구획 기준을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반 시 행정 처분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소방 당국은 "폐차장은 구조적으로 화재 위험이 큰 시설"이라며 "관리 기준을 법으로 명확히 하지 않으면 유사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부소방재난본부 관계자도 "포천 폐차장 화재는 야적 차량에 남아 있는 배터리와 연료 같은 위험 요소가 얼마나 빠르게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며 "폐차장 관계자들은 차량 입고 단계부터 배터리와 연료를 제거하고, 차량 간 이격 거리 확보와 작업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양주시에 등록된 폐차장은 총 29곳으로 경기도에서 가장 많고, 포천시는 11곳이다. 이번 포천 폐차장 화재는 개별 사업장의 관리 문제를 넘어, 폐차장 안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한 법의 공백을 드러낸 사례로 남고 있다.
/포천·양주=이광덕 기자 kd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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