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장사에서 돈봉투 의혹으로

문상현 기자 2023. 5. 15.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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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돈봉투 살포 의혹의 출발점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개인 비리 사건이었다. 수사 범위는 넓고 대상자도 많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다.
4월12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에 대해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연합뉴스

시작은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사무부총장의 개인 비리였다. 청탁 알선과 거액의 돈이 오간 전형적인 정치자금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유력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하나둘 나오더니 이제는 민주당 전 당대표와 현직 국회의원, 당직자 다수가 연루된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번졌다. 검찰은 의혹의 전모를 밝히겠다고 나섰다. 수사 범위는 넓고 대상자도 많다.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이정근 전 부총장은 ‘4전 4패’ 정치인이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서초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구청장 선거 등에 민주당 후보로 네 번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잇따른 선거 패배에도 서초갑 지역위원장직은 계속해서 유지했다. 2021년에는 당의 돈과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당직인 사무부총장에 임명됐다. 2017년, 2022년 대선에서는 선거대책위원회 부본부장을 맡았다.

서울 서초는 보수정당 텃밭이다. 이력만 보면 이정근 전 부총장은 험지에서 고군분투한 정치인으로, 연달아 공천을 받고 요직을 차지하는 등 당내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인 듯하다. 그러나 이 전 부총장이 언제 처음 정치권에 발을 들였는지, 정치인으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는 그와 알고 지내왔다는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다르다. 그의 정치 입문 시기만 해도 일부는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캠프를 지목하고, 다른 일부는 민주당 후보 직함을 처음 받기 직전인 2015년을 꼽는다. 이번 돈봉투 등 의혹이 불거진 직후 알려진 다른 과거 이력들도 대부분 2016년 이후 제작된 이 전 부총장의 선거 공보물 등에서 확인됐을 뿐이다.

이정근 인맥의 실체는

다만 민주당 내에서 이정근 전 부총장을 수식하는 공통된 단어가 있다. ‘인맥’이다. 친화력이 좋고 발이 넓어 알고 지내는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이 역시도 ‘직접 확인’했다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드물다. 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 대부분은 “이 전 부총장에게 그렇게 들었다”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누구, 누구와 친하다는 얘기가 돌기는 했다”라고만 말한다. 최근 당을 뒤흔든 의혹의 핵심 관계자인 이 전 부총장과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인 만큼 말을 아끼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인맥이 알려진 것처럼 넓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정근 전 부총장의 ‘인맥’ 이야기는 그의 개인 비리 사건 판결문에서도 드러난다. 4월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이 전 부총장에 대해 징역 4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 전 부총장은 2019년 12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사업가 박 아무개 회장에게 사업 관련 청탁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챙긴 혐의(알선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를 받아왔다.

1심 판결문을 보면, 2019년 박 회장은 한 투자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감사가 반대 의견을 냈고, 박 회장은 그를 설득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정근 전 부총장과 그가 친분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같은 해 11월, 이 전 부총장과 박 회장이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마주앉았다. 박 회장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아 마련된 자리였다.

이 전 부총장은 이날 박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예요.” 박 회장이 인수하려는 투자회사가 벤처펀드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 펀드에 자금을 출자하고 관리·감독하는 곳이 중소벤처기업부라는 것을 이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돈 이야기는 2019년 12월 두 번째 만남에서 나왔다. 이번에도 이 전 부총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박영선 장관에게 인사할 돈으로 2000만원이 필요하다”라는 것이었다. 박 회장은 며칠 뒤 현금을 마련해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부총장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제가 밥도 사고 해야 하는데, 제 돈을 쓸 수 없지 않나요.” 박 회장은 그 자리에서 알선 수고비 명목으로 1000만원을 이 전 부총장에게 더 건넸다.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공동취재

이후 이정근 전 부총장은 박 회장을 ‘오빠’라고 불렀다. 박 회장도 이 전 회장을 ‘동생’ ‘아우’로 불렀다. 박 회장은 이 전 부총장에게 마스크 사업 인허가, 정부지원금 배정, 회사와 부동산개발 사업권 인수 등 사업 현안을 이야기했다. 이 전 부총장은 그때마다 문재인 정부의 정·관계 인사들의 이름을 댔다. 앞서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노영민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류영진 전 식약처장, 이성만 민주당 의원,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등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유력 정·관계 이름만 15명이다. 이 전 부총장은 이들 모두 자신과 친분 있는 인사들이라며 박 회장에게 이들을 “연결해주겠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청탁은 13차례, 돈은 32차례에 걸쳐 10억260만원이 이정근 전 총장에게 전달됐다. 박 회장이 녹음한 휴대전화 통화와 평소 대화, 문자 및 카카오톡·텔레그램 메시지, 돈을 건넨 날짜와 액수를 적어둔 메모 등에서 확인된 숫자이다. 판결문을 보면, 이 전 부총장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을 자신의 선거비용과 다른 사람들의 정치자금 명목으로 썼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그러나 이 전 총장이 언급한 유력 정·관계 인사들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박 회장의 사업 현안도 해결되지 않았다. 2021년 4월 이후부터 박 회장은 이 전 부총장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하나 말이 지켜지는 게 없네” “나도 이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지” “금년 안에 변제금 각서 써주세요” 이 전 부총장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박 회장이 이정근 전 부총장에게 건넨 돈은 모두 박 회장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도 투자를 받거나, 빌려서 이 전 부총장에게 전달했다. 이 전 부총장은 돈을 돌려달라는 박 회장에게 받은 돈 일부를 되돌려줬지만 전부를 반환하지 못했다. 이 전 부총장은 박 회장을 만나기 전에는 세금 9600만원을 체납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박 회장의 불신은 커져갔고, 이 전 부총장은 난처해했다.

2022년 3월 박 회장은 이정근 전 부총장을 사기죄로 고소하고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이 전 부총장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과 건넨 돈과 일정을 기록한 메모를 함께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이 고소를 취하했고,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의 수사는 종결됐지만 검찰은 이미 박 회장 진정서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이 전 부총장의 개인 비리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전 부총장 1심 판결문을 보면, 박 회장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그를 압박하고자 고소하고 진정서를 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부총장과 박 회장이 고소 등으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단순 채무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서로 짜고 송사를 벌인 것으로 판단했다.

민주당을 뒤흔든 검찰의 돈봉투 살포 의혹 수사도 이정근 전 부총장 개인 비리 사건과 비슷하게 시작됐다. 이 전 부총장과 박 회장 관련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이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돈봉투 살포 정황이 담긴 전화통화 녹음을 발견했다. 이 전 부총장은 2016년부터 자동녹음 기능을 활용해 휴대전화 통화를 녹음해왔다. 일상 통화를 포함한 음성파일 개수가 3만 개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돈봉투 살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국회의원과 ‘송영길 당대표 경선캠프’ 지역본부장 등에게 흘러간 현금 액수를 9400만원으로 특정했다. 현역 의원 10~20명이 6000만원, 지역본부장과 지역상황실장 수십 명이 34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의심한다.

개인 일탈 넘어선 돈봉투 살포 의혹

이정근 전 부총장의 개인 비리와 다른 점은 그가 돈봉투 살포 의혹의 ‘주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은 돈봉투 살포의 주도적 역할을 이정근 전 부총장 1심 판결문에도 등장하는 강래구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강 위원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면, 강 위원은 2021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송영길 전 대표 지지세를 유지하기 위해 돈봉투 살포를 계획한 뒤, 지인을 통해 돈을 마련해 왔다. 이 전 부총장이 이를 전달받아 민주당 의원과 당 관계자들에게 50만~300만원씩 쪼개 전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한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5월2일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검찰은 그를 로비에서 돌려보냈다. ⓒ시사IN 박미소

강래구 상임감사위원과 이정근 전 부총장을 포함, 돈봉투 마련과 전달 과정에 깊숙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핵심 인물 9명이 피의자로 입건됐다. 윤관석 의원, 이성만 의원 등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모두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송영길 캠프 소속이었다. 검찰은 송영길 전 대표도 추가 입건했다. 검찰은 송 전 대표를 돈봉투 살포 행위 최종 수혜자인 동시에 이를 사전에 보고받고 지시·승인 등 적극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한다. 돈봉투 의혹은 이 전 부총장의 ‘개인 일탈’ ‘개인 인맥 장사’ 수준을 넘어서 있다.

검찰은 돈봉투를 마련하고 살포한 ‘공여자’를 먼저 수사하고 범위와 대상자를 넓혀갈 방침이다. 이 때문에 입건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검찰은 최근 송영길 전 대표의 후원 조직이 조성한 기부금 중 일부도 2021년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으로 흘러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불법 자금 조성 수사를 확대 중이다. 돈봉투의 종착지인 국회의원과 당 관계자들도 최종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돈봉투 금액, 살포 방식 등 의혹 전반이 이정근 전 부총장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녹음파일로부터 불거진 만큼, 녹취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과 추가 진술을 확보하는 게 검찰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혹 속 돈은 현금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달됐다. 물적 증거가 없어서 추적이 어렵다. 관련자들의 진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송영길 전 대표를 비롯한 금품 공여자 및 수수자, 청탁 대상자 등으로 지목된 정·관계 인사 전원은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는 5월2일 검찰에 자진 출두하면서 “범죄 혐의가 있다면 당연히 수사를 받아야겠지만 그것도 증거에 기초한 수사를 해야 한다. ‘인생털이’ ‘먼지떨이’와 같은 수사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인격을 살해하는 검찰 수사 형태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돈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강래구 위원에 대한 1차 구속영장은 4월21일 기각됐다. 검찰은 이후 보강 수사를 통해 강 회장과 공범들 사이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이 이뤄진 정황을 추가로 확인했다며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은 5월8일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돈봉투 수사와 별개로 이정근 전 부총장 개인 비리에서 뻗어 나가는 ‘가지 사건’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취업 청탁 의혹), 노웅래 의원(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이학영 의원(취업 청탁 의혹) 등 이 전 부총장 개인 비리 사건에서 드러난 의혹들은 수사 중이거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정근 전 부총장 1심 재판에서 확인되지 않은 청탁 실행 여부와 실제 돈이 건너갔는지를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다. 이 전 부총장 인맥의 실체와 그가 인맥을 동원해 청탁을 해결할 영향력이 있었는지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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