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고속 안정감은 동급 최고..쉐보레 트래버스 3.6


소형 트레일블레이저부터 초대형 타호까지, SUV 풀 라인업을 완성한 쉐보레. 주요 SUV 4인방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 팀은 그중, 탄탄한 주행질감으로 무장한 막내 ‘트블’과 부분변경 치른 대형 SUV 트래버스를 시승했다.

글 강준기 기자
사진 한국지엠

요즘 쉐보레의 라인업 구성을 보면, RV 전문 제조사 색채가 짙다. 대형 SUV 시장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트래버스와, 국내 유일의 수입 중형 픽업트럭 콜로라도가 라인업을 이끌고 있다. 특히 콜로라도는 강인한 골격과 실용성, 합리적인 가격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 베스트셀링 탑10 리스트에 들 정도로 수요가 높다.

이번 시승은 서울 용산에서 출발해 경기도 양평 인근 산길에서 주행한 뒤, 다소 서울로 올라오는 코스로 구성했다. 우리 팀은 ‘트블’의 운전대를 먼저 잡았다. 최근 기아, 쌍용차 등에서 2천만~3천만 원대 SUV 신차가 연이어 등장했다. 그래서 비슷한 가격대 갖춘 트레일블레이저의 실력이 궁금했다. 동급 소형 SUV 중 가장 넉넉한 실내를 지녔고, 탄탄한 주행질감 역시 ‘트블’의 강점 중 하나니까. 쟁쟁한 신차 사이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


약 2년 만에 다시 타본 트레일블레이저. 역시 고속주행 안정감만큼은 같은 체급에서 가장 뛰어났다. 강건한 골격을 바탕으로 고속에서도 묵직하게 달리는 맛이 좋다. 쿠션이 조금 불편한 2열 시트와 조금 높게 자리한 1열 암레스트 등 몇 가지 단점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있지만, 달리고‧돌리고‧서는 주행감각은 정말 깔끔하다. 스티어링 휠의 끈끈한 답력도 포인트. 무엇보다 9단 자동변속기 덕분에 고속에서 엔진회전수를 낮게 쓰는 점도 좋다.

트레일블레이저의 상품성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입증 받았다. 최근엔 미국 J.D. 파워 신차품질조사(IQS)에서, 같은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쓰는 형제 차 뷰익 앙코르GX가 소형 SUV 부문 1위를 차지했다. J.D. 파워의 신차품질조사는 자동차 구입 후 3개월이 지닌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제 소비자가 느낀 불만을 230여 개 항목으로 체크해 ‘100대 당 불만 건수’로 점수를 매긴다.

단점 메운 대형 SUV, 트래버스

3040 젊은 아빠로 구성된 이날 시승회 참가 멤버들의 진짜 관심은 신형 트래버스에 쏠렸다. 아마 이 체급 SUV 혹은 미니밴 구입을 고민 중인 사람은 현대 팰리세이드, 포드 익스플로러, 기아 카니발 등과 많이 비교할 듯하다. 공교롭게 우리 팀은 최근 부분변경 치른 신형 팰리세이드와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시승했기 때문에, 트래버스와의 상대적 차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우선 장비 보강이다. 기존 트래버스의 주행 안정감이 동급에서 가장 좋다는 건 모두 공감하겠지만, 다소 부족한 편의장비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로 인해 구입을 망설이는 분들이 많았다. 튼튼한 골격만으로 시장에서 승부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 페이스리프트 신 모델로 거듭난 트래버스는 기존의 단점을 깔끔히 메웠다. 4.2인치 작은 모니터를 썼던 계기판은 8인치 디스플레이로 교체했다. 센터페시아 중앙 모니터는 무선 카플레이를 지원한다. 성능 떨어지는 순정 내비게이션 대신, 스마트폰 티맵을 손쉽게 띄울 수 있어 만족감이 높다. 이외에 스마트폰 무선충전 패드와 앞좌석 3단계 통풍시트 등, 화려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기능은 대부분 갖췄다. 단, 천장까지 검은색 소재로 감싸, 실내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건 아쉽다.

기존에 없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챙겼다. 앞 차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원하는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이다. 전방충돌 경고와 자동 긴급제동 보조 등 ‘옥의 티’였던 ADAS를 보강하면서, 신형 트래버스는 제법 높은 완성도의 대형 SUV로 거듭났다.

트래버스의 핵심은 넉넉한 2~3열 및 트렁크 공간이다. 5,230㎜의 차체 길이와 3,073㎜의 휠베이스 덕분에,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충분한 공간이 나온다.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얹었지만, 바닥이 굴곡 없이 평평해 중앙 통로로 이동하기도 쉽다. 트렁크 용량은 3열 시트를 펼치고도 651L. 접으면 1,636L, 2열까지 접으면 최대 2,780L까지 늘어난다. 4인 가족이 부모님 모시고 여행가는 데도 부족함 없다.

기존보다 안정감이 더 좋다

시승하면서 가장 의외였던 부분은 주행성능의 변화다. 기존 트래버스는 주행 안정감은 좋지만, 다소 부드럽게 세팅한 서스펜션 때문에 이따금씩 보트처럼 ‘출렁대는’ 움직임이 있었다. 강건한 차체와 느슨한 하체의 조화는, 쭉 뻗은 고속도로에선 편안했지만 도심에선 뒤뚱거렸다.

반면, 이번 부분변경 모델의 하체는 비교적 단단하게 조였다. 대형 보트처럼 위아래로 하느작거리던 차체가 소폭 탄탄하게 거듭났다. 덕분에 기존에도 좋았지만, 고속주행 안정감이 더 올라갔다. 속도를 높일수록 차체를 바닥에 눌러 불이며 달리는 감각은 경쟁 모델에서 찾을 수 없는 능력이다. 물론 전자제어 서스펜션 품은 프리미엄 브랜드 대형 SUV만큼은 아니지만, 편안한 승차감과 탄탄한 성능을 적절히 양립시킨 세팅 능력에 감탄했다.

주행하면서 반전 매력을 주는 부위는 다름 아닌 엔진이었다. 트래버스의 V6 3.6L 가솔린 엔진은 SUV로서는 이례적으로 고회전을 좋아하는 심장이다. 9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36.8㎏‧m를 뿜는다. 저회전 토크는 풍성하게 살리고, 고회전에선 힘이 풀리는 여느 SUV의 세팅과 달리, 트래버스의 V6 엔진은 회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느낌이 의외로 좋다.

이유가 있었다. 트래버스 엔진의 보어와 스트토크는 각각 94×85.6㎜. 고회전 지향의 전형적인 숏 스트로크 엔진이다. 그래서 고속에서 시원하게 달릴 때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6기통 엔진 특유의 짜릿한 고회전 사운드는 덤이다. 대신 저속에서 부족할 수 있는 힘은 9단 변속기의 촘촘한 기어비가 보완한다.

그러나 호쾌한 주행의 대가는 확실하다. 5.2m의 거구를 ‘살살’ 다스려도, 공인연비(8.3㎞/L) 이상의 효율을 달성하는 건 힘들었다. 고속도로 위주의 주행에선 1L 당 10㎞/L 대 초반까지 높일 수 있었지만, 출퇴근 환경까지 감안하면 경제적인 SUV는 아니다. 단, 최근 가솔린 가격이 경유보다 100원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상대적 부담은 덜하다. 주행 상황에 따라 실린더 2개의 작동을 멈추는 콜로라도의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기술을 트래버스에도 적용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연료비 지출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트래버스는 가치 있는 SUV 임이 분명하다. 남다른 고속주행 안정감은 물론 ‘통뼈’ 같은 튼튼한 뼈대가 전하는 심리적 안정감이 좋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공신력 있는 신차 충돌테스트 기관인 IIHS(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는 전방 충돌, 측면 충돌, 스몰 오버랩 테스트뿐 아니라 지붕 강도 테스트로 진행한다.

주요 대형 SUV의 강도 수치를 확인해봤다. 지붕이 버틸 수 있는 최대 힘은 트래버스가 24,360lbs(약 11,049㎏), 포드 익스플로러가 24,237lbs(약 10,993㎏), 현대 팰리세이드가 19,634lbs(약 8,905㎏), 혼다 파일럿이 22,025lbs(약 9,990㎏)이다. 트래버스와 비슷한 11t(톤) 대 수치를 갖춘 차는 BMW X5(25,368lbs, 약 11,506㎏), 메르세데스-벤츠 GLE(24,944lbs, 약 11,314㎏) 등 프리미엄 브랜드 중대형 SUV. 즉, 트래버스는 대중 브랜드 SUV지만, 뼈대의 강건함은 가격이 훨씬 비싼 럭셔리 모델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장점만 가득한 차는 아니다. 시승하면서 느낀 가장 큰 불만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사악한 운전석 사이드 미러의 시야. 평면 거울을 쓴 결과, 5.2m 넘는 차체를 도심에서 민첩하게 다루는 게 꽤 힘들었다. 애프터마켓 사이드 미러로 반드시 교체해야 할 듯하다. 두 번째는 다소 떨어지는 모니터 해상도와 후방 카메라 화질. 이 두 가지 단점만 제외하면, 신형 트래버스의 상품성은 확실히 부분변경 이전보다 눈에 띄게 올라갔다.

<제원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