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시작된 뒤 원유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상장지수증권(ETN)으로 투자금이 빠르게 몰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증권의 '삼성 레버리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ETN'은 이달 들어 닷새 동안에만 가격이 두 배로 뛰었고, 거래대금도 1800억원을 넘어서며 지난달 한 달치의 7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반면 원유 가격 하락에 베팅한 인버스 ETN의 수익률은 곤두박질 쳤는데,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험으로 극심해진 국제 원유 가격 변동성이 국내 증권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11일 한국거래소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삼성증권이 운용하는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의 전날 종가는 이달 첫 거래일이었던 3일 대비 83.8% 올랐다. 같은 기간 신한투자증권의 '신한 블룸버그 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 B'(88.6%), 하나증권의 '하나 S&P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B'(84.6%)도 80%대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 가운데 삼성증권의 상품은 거래대금이 1863억원에 달해 가장 크게 주목받았다.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S&P GSCI Crude Oil 2X Leveraged TR Index를 기초지수로 삼아 WTI 선물 일간수익률을 2배로 추종한다. 원유 선물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수익률이 높아지는 구조다. 이 상품은 2017년6월 상장해 2027년6월 만기를 앞뒀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 상품의 한 달 수익률은 4.1%, 거래대금은 288억원에 그쳤다. 당시에도 중동 지역의 긴장감이 고소되면서 원유 가격이 상승 조짐을 보였지만, 미국의 이란 공습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지난달 WTI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중후반에서 70달러 초반 사이에서 움직였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시작된 뒤 국제 원유 가격은 급등락을 거듭했다. 9일 WTI는 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 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날은 80달러 대로 다시 밀리며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반면 원유 가격 하락에 베팅한 ETN은 정 반대의 수익률을 냈다. 삼성증권이 운용하는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의 수익률은 -47.1%다. 거래대금도 550억원으로 원유 가격 상승에 베팅한 상품보다 크게 적었다. 이 상품은 WTI 선물가격을 두 배 반대로 추종한다. 2017년9월 상장해 2027년9월 만기를 앞뒀다.
향후 원유 가격 안정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장기화 여부에 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기 종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공세를 퍼붓는 모순된 대응을 보여 전쟁 장기화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이란 역시 주변국을 공격하는 물귀신 작전으로 확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더욱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험도 심각하다. 이 해협이 공식적으로 봉쇄된 것은 아니지만, 이란혁명수비대가 군사 공격을 가하겠다는 엄포를 놓으면서 선박들이 통과하지 못하는 상태다.
주요 해상 통로가 막히자 러시아산 원유 수입 제재 완화, G7 국가의 비축유 방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 대응은 유가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김근아 하나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시 과거와 같은 큰 폭의 할인율이 다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설령 할인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더라도 이는 유가 상승 부담을 일부 완화하는 데 그칠 뿐,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 자체를 해소하는 요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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