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머리는 정말 마취가 어렵나요

머리카락 색깔이 빨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마취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속설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의학계에서는 20년 넘게 연구가 이어지는 주제다. 최근 연구에서도 빨간머리를 만드는 유전자와 마취제 반응 사이의 연관성이 다시 의심됐다.

빨간머리는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머리색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MC1R(멜라노코르틴1 수용체) 유전자다. 이 유전자의 특정 변이는 검은색 또는 갈색을 띠는 유멜라닌 생성을 줄이고 붉은색과 노란색 계열의 페오멜라닌 비율을 높인다.

흥미로운 것은 MC1R의 영향이 색소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MC1R 수용체는 통증과 염증에 관련된 여러 조직에서도 작용한다. 때문에 MC1R 변이가 통증을 느끼거나 마취제에 반응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빨간머리는 마취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주장을 두고 학자들은 아직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이를 직접 시험한 대표적인 연구가 2004년 국제 학술지 Anesthesiology에 발표됐다. 미국 루이빌대학교 연구팀은 자연적인 빨간머리 여성 10명과 짙은 머리색을 가진 여성 10명을 대상으로 흡입마취제 데스플루란의 효과를 비교했다.

결과는 상당히 뚜렷했다. 같은 수준의 마취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데스플루란 농도는 빨간머리 그룹이 평균 6.2%, 짙은 머리 그룹은 5.2%였다. 빨간머리 여성에게 약 19% 많은 마취제가 필요했다. 연구팀은 빨간머리 참가자 대부분에서 MC1R 변이도 확인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빨간머리에 마취제가 잘 듣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최초 연구는 참가자가 20명에 불과했고 이후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머리색에 따른 마취제 요구량이나 회복, 통증에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실제 임상에서 빨간머리라는 이유만으로 마취제 투여량을 달리해야 한다는 근거 역시 확립되지 않았다.

일부 마취제가 빨간머리에 덜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가 하면, 해당 수치가 무의미하다는 반론도 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관련 논쟁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2025년 발표된 연구는 성인 남녀 92명을 대상으로 국소마취제 리도카인과 부피바카인의 효과를 조사하고 참가자들의 MC1R 유전자형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일부 MC1R 변이가 국소마취제의 작용 시작과 지속시간 차이에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빨간머리 참가자의 경우 국소마취 효과가 상대적으로 빨리 사라지는 경향도 관찰됐다.

다만 흡입형 전신마취와 국소마취는 서로 다른 문제인 데다 연구마다 결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 가장 정확한 결론은 ‘빨간머리는 마취가 안 된다’가 아니라, ‘MC1R 변이가 통증과 특정 마취제에 대한 반응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수준이다.

20여 년 전 소규모 실험에서 시작된 빨간머리와 마취제 효과의 관계는 아직도 연구 대상이다. 머리색을 결정하는 유전자 하나가 인간의 통증과 마취 반응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려면 보다 규모가 크고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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