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위나라 진군이 저평가된 책사라고?

위나라의 진군입니다.
진군은 위나라의 건국자 조비가 사망했을 당시의 고명대신이었습니다.

고명대신이란 왕의 유언을 듣는 자로,
당연하게도 왕 혹은 황제의 최측근으로 구성되며 차기 황제 정권 때 실세로 군림합니다.

조비 사망 당시
고명대신으로 4명이 있었는데
조진, 조휴, 사마의 그리고 진군이었죠.
조비 사후
조예가 위나라 2대 황제가 되었고,
진군은 위나라 내정을 총괄했답니다.

진군은 중국정치사에서 대단히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위나라를 건국했던 조비는 자신이 멸망시킨 한나라의 몰락 원인을
의식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비는 한나라 몰락 원인이
외척과 환관의 권력투쟁 때문이라고 분석하고는,
외척과 환관의 발호를 극도로 억제시켰습니다.

그리고 지방 군벌과 호족들의 힘이
너무 강력했습니다.
이거 때문에 삼국지 세계관이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진군이 발의한 정책이 구품관인법이라는 관리 임용 제도였죠.
황제가 ‘중정’이라 불리는 스카우터들을 전국에 파견합니다.

그리고 중정이 각 지방의 유력인사들을 직접 평가하거나
지방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특정 인재의 능력을 9등급으로 분류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중정에게 여러 로비들이 들어왔습니다.
결국은 지방 호족들이 로비를 통해 중앙정부로 진출했죠.

지방 호족은 억제되기는커녕 오히려 중앙정부에 진출하여
지방의 호족들이 중앙 정치인들과 하나가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지방 호족들의 독점적 인사등용제는 점차 심화되다가 신분과 특권을 세습할 수 있는 '귀족'이 되었고,
폐쇄적인 문벌까지 형성되며 '문벌귀족'을 만들었죠.

구품관인법, 혹은 구품중정제는 과거제도가 나오게 될 때까지
중국사를 관통하며 계속 시행되었고
그만큼 문벌귀족의 형성은 확고해졌죠.

문벌귀족이 사라지게 되는 건
과거제도가 강화되는 송나라 때나 되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