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대장 오승환의 20년... 이제는 마무리할 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라는 자리가 얼마나 값진 역할인지, 오승환이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세이브를 많이 올린 투수가 아니다. 한국, 일본, 미국을 모두 경험하며 ‘종착역을 책임지는 투수’의 의미를 새로 썼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록과 장면을 남겼다. 2025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은 그의 은퇴는 한 시대의 마침표이자,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조용한 숙제처럼 느껴진다. “끝판대장”이라는 별명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지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날마다 확인했다.

그의 길은 삼성 라이온즈에서 시작됐다. 2005년 2차 1라운드 5순위로 입단한 스무 살의 투수는 첫해부터 놀라운 집중력과 배짱으로 경기 끝을 지켰다. 데뷔 시즌에만 10승‧11홀드‧16세이브, 이른바 ‘트리플 더블’을 해내며 팀의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이후 삼성의 황금기와 함께 오승환의 이름은 더 굵고 선명해졌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다섯 번 끼웠고(2005, 2006, 2011, 2012, 2013), 단일 시즌 최다 47세이브를 두 번이나 찍었다. 28연속 세이브, 6회 구원왕, 사상 최초 3연속 구원왕 같은 숫자들은 어느새 ‘오승환 표준’을 만들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그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카드였다. 역대 최다 13세이브, 한국시리즈 최다 11세이브는 한국 야구가 긴장감 최고조로 치닫는 순간마다 ‘21번’에게 기대를 걸었음을 말해준다.

오승환의 무기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돌직구’를 떠올릴 것이다. 빠르고 무거운 직구, 코너를 칼같이 찌르는 제구, 그리고 표정조차 흔들리지 않는 멘탈. 그래서 붙은 별명이 ‘돌부처’다. 사실 야구는 마음이 흔들리는 경기다. 마지막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수만 명의 눈앞에 서면 누구든 긴장한다. 오승환은 그 순간조차 숨을 고르고 같은 투구폼, 같은 루틴으로 공을 꽂았다. 그 일관성이야말로 그의 진짜 재능이었다. 승리를 지키는 일은 화려한 삼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볼넷을 내준 뒤에도, 실책이 나와도, 카운트가 불리해져도 흐름을 되찾아야 한다. 오승환은 그 ‘되찾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의 무대는 한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본행을 선택한 그는 한신 타이거스에서 2년 연속 세이브왕을 차지했고, NPB 통산 80세이브를 쌓았다. 낯선 환경, 다른 스트라이크존, 다른 타자 유형 속에서도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이어 미국으로 건너가 세인트루이스, 토론토, 콜로라도에서 4시즌 활약하며 42세이브, 45홀드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첫해 103탈삼진과 평균자책 1.92라는 선명한 숫자는, 그가 어느 리그에 가도 ‘마지막 문’ 앞에서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한‧미‧일 합산 549세이브, KBO 427세이브라는 아시아 최다 기록은 이제 누가 쉽게 넘보기 어려운 벽이 되었다.

기록만큼이나 오래 남을 장면도 많다. KBO 최초 300세이브를 올리던 2021년 4월의 순간, 대구구장은 커다란 박수로 흔들렸다. 그해 그는 최고령 40세이브, 최고령 구원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나이가 쌓이면 구속이 줄고 반응이 느려지기 마련인데, 그는 루틴과 자기 관리로 그 벽을 넘어섰다. 그리고 2025년,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방법마저 투수답게 준비했다. 8월에 직접 은퇴를 발표했고, 인천 원정을 시작으로 각 구단이 마련한 은퇴 투어를 차분히 걸었다. 잠실, 대전, 수원, 인천, 그리고 대구. 경기 전후로 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고, 상대 구단이 준비한 기념패와 액자를 받을 때에도 늘 같은 표정과 목소리였다.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야구가 개인 종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개인적인 자리에서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은퇴 투어는 기록의 잔치이면서도 마음의 자리였다. 두산전에서 팬 50명과 사인회를 열고, 한화전에서는 특별 타월과 티셔츠를 선물하며 작별을 나눴다. 각 구단이 한글자씩 마음을 보태 만든 헌정품은 그가 한국 야구 전체로부터 받은 존경의 크기를 보여줬다. 삼성 홈 최종전은 말할 것도 없다. 오승환의 21번은 구단 네 번째 영구 결번으로 대구 하늘에 걸렸다(앞서 이만수 22, 양준혁 10, 이승엽 36). 라이온즈파크를 찾는 어린 팬들은 앞으로도 21번을 보며 ‘마무리’라는 단어의 무게를 배울 것이다.

팬들이 기억하는 오승환의 얼굴은 두 가지다. 마운드 위 ‘돌부처’와, 펜스 너머 ‘착한 형’. 경기 중에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경기 밖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히 팬을 만났다. 구단 행사에서, 즉석에서, 드라이브 스루 사인회에서도 정해진 시간을 조금 넘겨서라도 하나라도 더 사인을 해주려 했다는 이야기는 현장 후기로 널리 퍼져 있다. 마무리 투수에게 팬의 신뢰는 그 어떤 찬사보다 중요하다. 9회말, 한 점 차, 2사 만루에서 포수 미트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 그 뒤에는 팬이 보내는 믿음의 공기가 있다. 오승환은 그 믿음을 한 번도 헛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한국 야구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불펜의 가치’다. 예전엔 선발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오승환의 시대를 지나며 구단들은 불펜에 투자했고, 마무리라는 직책의 전문성이 확립됐다. 8회 셋업, 9회 마무리라는 분업은 더 정교해졌고, 어린 투수들은 “나는 마지막을 지키는 투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자연스레 꾸게 됐다. KBO 리그의 경기 운영이 지금처럼 촘촘해진 데는, 마지막 문을 책임지는 투수의 위상이 한 단계 올라간 영향이 크다. 오승환은 그 변화를 상징하는 얼굴이었고, 그 변화의 속도를 앞당긴 사람이다.

숫자도 끝내준다. KBO 통산 737경기, 427세이브, 44승 33패, 평균자책 2.32. 단일 시즌 47세이브 두 번, 28연속 세이브, 6회 구원왕, 최초 3연속 구원왕, 포스트시즌 최다 13세이브, 한국시리즈 최다 11세이브. 여기에 NPB 80세이브, MLB 42세이브 45홀드가 더해져 한‧미‧일 549세이브라는 거대한 탑이 완성됐다. 이 많은 숫자 가운데 그가 가장 소중하다고 꼽는 건 아마 ‘세이브 하나마다 지켜낸 팀의 1승’일 것이다. 마무리는 매일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더 어렵다. 오승환은 실패의 다음 날에도 같은 길로 걸어 나왔다. 그 끈기와 반복이 결국 전설을 만들었다.

은퇴를 발표한 2025년, 그는 일구대상까지 받으며 야구계의 존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야구는 끝났지만, 야구와의 인연은 끝나지 않는다.” 그가 남긴 이 말에는 많은 계획과 의지가 숨어 있다. 지도자로서, 어드바이저로서, 혹은 방송을 통해서라도 그는 분명 한국 야구의 곁을 지킬 것이다. 후배들이 “롤모델”로 그를 부르는 이유가 단지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몸을 지키는 법, 위기에서 호흡을 고르는 법, 팀이 원하는 순간에 자신을 던지는 법을 몸으로 보여준 선배. 이런 선배는 많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시간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해외와 국내를 오가며 환경이 바뀔 때마다 몸 상태를 맞춰야 했고, 때로는 부상과 구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변명 대신 결과로 답했다. 재활에 매달렸고, 돌아오면 다시 똑같이 9회를 지켰다. 그 과정을 지켜본 팬들은 알 것이다. 기록 뒤에 있는 땀과 일상,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아침의 웨이트와, 반복되는 불펜 세션과, 루틴 점검이 어떤 의미인지. 그래서 그의 마지막 등판이 아니어도, 마지막 세이브가 아니어도, 우리는 그의 커리어 전체에 박수를 보낸다.

삼성의 21번이 천장으로 올라간 날, 대구의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아 보였다. 경기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응원가와 박수 소리, 선수들과 팬들이 나눠 가진 침묵의 몇 초, 그리고 끝내 올라간 ‘21’이라는 숫자. 이 모든 장면은 아마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우리에게 오승환은 단순히 ‘좋은 마무리’가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가 세계 무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가장 상징적인 얼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끝까지 예의 있게 해냈고, 그 방식으로 한 시대를 대표했다.

이제 오승환은 유니폼 대신 다른 형태로 야구를 만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의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끝을 책임져 본 사람만이 시작의 자세를 안다. 수많은 밤, 9회를 지키며 배운 침착함과 집중력은 이제 후배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대구의 어린 투수가 21번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할 것이다.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서겠다.” 그 약속들이 쌓이면, 또 다른 ‘끝판대장’이 태어난다. 그게 바로 오승환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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