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사고 766 건 , 인정은 0건?…자동차 급발진 존재할까

김미래 기자 2024. 10.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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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L-E 제공

2024년 7월 1일 저녁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길가에 서 있던 행인들을 덮치면서 1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운전자가 차량의 급발진을 주장하며 논란은 빠르게 번졌다. 한 달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고령이었던 운전자의 오인 조작을 사고 원인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자동차 급발진은 존재하는가.

내 차가 어느 날 갑자기 제멋대로 질주한다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더 무서운 건 이런 급발진은 과학기술로 규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에서 보고된 급발진 의심 사고는 무려 766건에 이르지만 그중 급발진이라고 인정된 사례는 0건이다. 왜 급발진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할까. 급발진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 기계적 결함 vs. 전자적 결함

급발진은 차량이 운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가속하는 현상으로 기계적 또는 전자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기계적 결함은 말 그대로 부품이 기계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다. 과거 구형 차량들의 경우 스로틀 밸브가 가속 페달과 케이블로 연결돼 있었다. 

이 케이블이 노후화되면 가속 페달이 제대로 복구되지 않아 엔진 출력이 원치 않게 증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급발진 발생의 원인이었다. 페달 설계 결함으로 페달이 눌러진 상태로 고정되는 경우에도 급가속이 발생할 수 있다. 페달 설계 결함은 2010년 일본의 자동차 회사 토요타가 약 8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회수)한 주요 이유였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 대두되는 급발진 사고의 원인으로는 주로 기계적 결함이 아닌 전자적 결함이 언급된다. 전자적 결함은 엔진, 가속 페달, 브레이크 등 차량의 다양한 부품을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ECU) 문제로 급발진이 일어나는 경우다.

그런데 아직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중에서 전자적 결함이 급발진을 야기했다고 인정된 사례는 없다. 

8월 6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방문해 촬영한 급발진 의심 사고 차량. 차량의 엔진룸 내 제동 시스템을 검사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 급발진 감정하는 10단계 검사 

8월 6일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에서 만난 김종혁 교통과 차량안전실장은 "급발진 주장 사고를 감정하기 위해선 10단계의 검사가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검사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고가 발생한 순간의 데이터를 기록하는 사고기록장치(EDR)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EDR은 비행기 사고 조사에서도 사용하는 결정적 증거로 사고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이전 5초, 이후 0.3초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이때 기록되는 데이터는 자동차 속도, 엔진 회전수, 가속 페달 밟음량,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 등 총 67가지다.

김 실장은 "EDR 데이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가속 페달 밟음량과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라고 말했다. 가속 페달밟음량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얼마나 밟았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다. 99%일 경우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는 의미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은 자신이 가속 페달이 아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EDR 기록에서는 가속 페달 밟음량이 0%지만 브레이크 페달 밟음 여부는 'on'으로 기록돼야 한다.

하지만 "국과수에서 분석한 수많은 사고 중에서 차량이 완전히 파손돼 분석 자체가 불가능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이러한 기록이 나타난 사례는 없었다"는 게 김 실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시청역 사고의 EDR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사고 당시 가속하는 동안 가속 페달이 밟힌 상태였고 그동안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EDR 데이터, 믿을 수 있을까

EDR 기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7월 30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복잡한 ECU에 문제가 발생하면 EDR 기록 또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EDR 데이터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과수의 김 실장은 "잘못된 데이터가 기록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반박했다. "국과수는 EDR 기록뿐만 아니라 차량의 ECU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도 함께 검사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도 "EDR에 기록되는 여러 자료 중 한 개가 오류가 날 가능성도 희박한데 모든 자료가 급발진이 아님을 지목하도록 오류가 날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EDR 기록의 신뢰성과 관련해 논란이 가장 많은 부분은 브레이크 페달의 작동 여부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들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량이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빨리 달렸다고 증언한다. 김 교수는 "전자 제어 시스템이 고장 나면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박이 따른다. 김 실장은 "자동차 제작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안전 규칙인 ISO 26262를 따른다"며 "이 규칙에 따르면 가속 페달 입력값보다 브레이크 페달 입력값이 최우선으로 처리되도록 설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브레이크 페달은 가속 페달과 달리 ECU와 독립적인 구조로 작동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제동 시스템은 우리가 밟는 힘이 가장 기본이고 그리고 그 힘을 증폭시키는 배력 장치, 급하게 정지할 수 있도록 제동력을 높여주는 긴급 제동 장치 등의 전자 장치로 이뤄져 있다"며 "만약 전자 제어 장치에 결함이 생기더라도 배력 장치나 긴급 제동 장치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어도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고기록장치(EDR)에 가속 데이터가 기록되는 과정. 게티이미지뱅크, 과학동아 제공

● 음향 스펙트로그램으로 분석 신뢰도 높여

국과수는 급발진 현상이 발생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EDR 분석 외에도 다양한 과학적 수사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2019년 국내 특허를 받은 음향 스펙트로그램 분석이다.

전우정 국과수 교통과 과장은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에 기록된 소리를 분석해 차량의 엔진 회전수를 추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엔진 회전수를 분석하면 급발진 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굉음이 가속 페달을 밟아서 발생한 엔진 소리인지 차량의 다른 결함으로 생긴 소리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 중요한 증거가 된다. 

또한 음향 스펙트로그램 분석 데이터를 이용하면 시간에 따른 차량의 속도 변화와 충돌 시점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러한 데이터는 실제 사고 현장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 실장은 "음향 스펙트로그램 분석 자료를 EDR 데이터와 비교함으로써 엔진 제어기와 제동 제어기의 데이터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급발진 의심 차량의 사고 정황을 분석하는 방법 중에는 음향 스펙트로그램이 있다. 이 방법을 통해 차량 엔진 회전수와 굉음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 김종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교통과 차량안전실장이 음향 스펙트로그램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 중이다. 과학동아 제공

● 그럼에도 우리는 왜 믿지 못할까

7월 시청역 앞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최종적으로 급발진이 아닌 고령 운전자의 오인 조작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확정됐다.

국과수는 사건이 발생한 지 약 2주일 만에 EDR 기록과 브레이크 후미등 등 여러 데이터를 반영한 감정 결과를 발표했지만 운전자는 급발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사건을 마무리한 결정적 증거는 운전자의 신발 밑창에 남은 가속페달 흔적이었다. 

김 실장은 "급발진 의심 사고 중 가속 페달이 부러지거나 신발 밑창에 가속 페달 흔적이 남은 경우가 더러 있다"며 "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생각하며 강하게 눌렀지만 사실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일각에는 여전히 사고의 원인이 급발진이 아니라는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전자 제어 시스템 결함이 급발진으로 반드시 이어진다는 결론도,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론도 없기 때문" 이라고 추측했다. 

급발진 사고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2010년 토요타 리콜 사태만 보더라도 급발진이 전자 제어 시스템 결함 때문에 발생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몇몇 실험에서 급가속 현상이 발생했지만 이 경우에도 브레이크를 밟으면 정상적으로 차가 멈췄다. 당시 재판부가 자동차 회사에 배상 판결을 내린 주된 이유는 가속 페달의 기계적 결함과 바닥 매트의 문제였다.

자동차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어 그 내부에서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이 교수는 "급발진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다"면서도 "그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답했다. 김 실장은 "전자 제어 시스템 결함으로 이상 가속이 발생할 순 있지만 제동은 가능하기 때문에 막연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벽히 배제할 수 없는 가능성은 마음속에 불안함을 낳는다. 이런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는 계속된다. 전자 제어 솔루션 기업 현대케피코는 급발진의 원인인 비정상적 연료 발화 통제 불능을 막기 위한 제어 시스템을 개발했고 한국교통안전공단은 비정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을 시 차량에 공급되는 전원을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공포감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학적 증거보다 대중의 관심을 원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포감이니까요." 이 교수는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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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10월호, [현장취재] 의심사고 766 건 , 인정은 0건? 자동차 급발진 존재할까?

[김미래 기자 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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