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㊹1995년 PO 탈락…이광환호 ‘신바람야구’ 내리막길

『LG가 바랐던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1승이 모자라 OB에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를 물려주고 롯데와 플레이오프라는 관문을 거쳐야 했던 LG는 한국시리즈 2년 연속 진출이라는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1995년 10월 12일자 스포츠서울>
1995년 가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1위를 질주하던 LG는 9월말 OB에 뒤집기를 당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것도 불과 0.5게임차로 정규시즌 1위를 놓쳐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쳤다. 그런데 10월초에 열린 플레이오프에서는 뜻하지 않게 3위 롯데에 2승4패로 물리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진출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1990년대 중반 부풀어 오르던 ‘LG 왕조’의 꿈도 여기서 깨졌다. 이때부터 ‘이광환호’의 신바람 야구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44번째 주제는 KBO 사상 최초의 ‘경부선 시리즈’로 불린 1995년 플레이오프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향후 ‘신바람 야구’의 가시밭길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 LG로선 뼈아픈 순간이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광환 야구의 변곡점이 되는 지점이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준PO 없이 곧바로 LG vs 롯데 ‘7전4선승제 PO’ 돌입
1995년에는 준플레이오프(준PO)가 무산됐다. 곧바로 2위 LG와 3위 롯데가 7전4선승제의 플레이오프(PO)에 돌입하며 가을야구의 문을 열었다.
LG는 1위 OB에 0.5게임차로 뒤져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놓쳤지만, 사실 3위 롯데와는 격차가 꽤 컸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에서 롯데에 5.5게임차로 앞섰다. 그만큼 객관적인 전력 면에서는 단연 LG가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플레이오프를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LG는 정규시즌에서 OB에게는 상대전적 11승1무6패로 압도했지만, 3위 롯데엔 오히려 6승12패로 극도로 약했다. 8월초까지만 해도 롯데와 5승5패 호각세를 이뤘으나 8월말부터 9월 중순까지 8경기 맞대결에서 1승7패로 눌리면서 이런 참혹한 상대전적을 떠안았다.
막판 롯데전의 절대적 약세는 LG가 넉넉하게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다 OB에 덜미를 잡힌 결정적인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OB로선 LG를 잡아 준 롯데에 큰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해태도 직격탄을 맞았다. ‘3위와 4위가 3게임차 이상으로 벌어질 경우 준PO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 3위 롯데와 4위 해태는 4.5게임차였다. 해태가 가을야구를 치르지 못한 건 1985년 이후 10년 만이었다.
LG 입장에서 보면 여기부터 일이 꼬였다. 준PO가 사라진 건 1989년 준PO 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는 그해 가을야구의 중대한 변수로 떠올랐다.
만약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됐다면 LG로선 그 기간에 허탈해진 심신을 다소 추스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고, 투수들도 휴식을 더 취할 수 있었다. 또한 롯데나 해태가 투수력과 체력을 소모한 다음 PO에 진출한다면 LG에겐 여러모로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LG에겐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됐다.
더군다나 3위와 4위가 4.5게임차로 벌어졌다고 준PO를 없앴는데, 2위 LG는 3위 롯데에 5.5게임차로 앞서고도 곧바로 PO를 치러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규정은 규정. LG로선 이것저것 잴 여유가 없었다. 곧바로 눈앞에 다가온 PO 모드로 돌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즌 막판 부진을 거듭한 김태원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이상훈-정삼흠-김기범으로 짜인 3인 선발로테이션을 확정했다.
“플레이오프 같은 단기 승부에서 실수 하나가 경기를 그르치게 되므로 선수들에게 마음껏 하되 신중한 플레이를 당부했다.”
이광환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양 팀 전력이 엇비슷해 해볼만 하다”면서도 실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이 감독의 이 말은 마치 족집게처럼 플레이오프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포인트로 작용한다.

◆야생마 vs 고독한 황태자 1차전 선발 맞대결
하늘이 열린다는 10월 3일 개천절. 하지만 잔뜩 먹구름을 머금고 있던 잠실구장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후 2시 낮경기로 1차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홈관중 1~2위 팀의 맞대결답게 3만500명의 만원관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LG는 ‘야생마’ 이상훈, 롯데는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을 1차전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당시엔 공식적으로 선발투수 예고제가 없었다. 하지만 198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도자 연수를 한 이광환 감독은 줄곧 선발투수를 예고해 주창해 왔다.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태평양은 선발투수를 예고하지 않았지만 LG만 미리 밝히기도 했다. 그러고도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1995년 롯데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롯데의 젊은 사령탑 김용희 감독도 미국에서 야구를 배워온 뒤 이광환 감독의 선발투수 예고제에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다. 손뼉을 마주치는 사람이 생기니 프로야구도 점차 선진화하기 시작했다.
데뷔 3년생 이상훈은 그해 20승5패(다승 1위), 평균자책점 2.01(2위)을 기록한 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하지만 롯데전에 유독 약했다. 4경기에 등판해 1승2패, 평균자책점 5.31(20.1이닝 12자책점)을 기록했다.

10년차 베테랑 윤학길은 시즌 12숭8패, 평균자책점 3.28의 성적을 올렸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마지막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낸 해였다.
무엇보다 그해 LG전 4경기에 등판해 4승무패, 평균자책점 2.22를 기록할 정도로 ‘LG 킬러’의 면모를 보였다. 그래서 주형광 염종석 등 어린 후배들을 제치고 당당 1선발을 맡았다.
롯데는 ‘대도’ 전준호를 중심으로 기동력이 매우 강한 팀이었다. 팀도루 220개로 압도적 1위였다. 2위 쌍방울(131도루)보다 무려 90개 가까이나 많은 도루수를 기록했을 정도다.
팀홈런(65개)은 리그 꼴찌였지만 한방이 없는 건 아니었다. 포수 임수혁과 내야수 마해영의 ‘마림포’는 LG가 경계해야 할 대포 듀오였다.

◆롯데 강성우에게 당한 1차전…홀로 5타점+홈블로킹 3개 ‘원맨쇼’

1995년 플레이오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롯데 포수 강성우다.
LG로선 롯데 포수 강성우의 예상밖 원맨쇼에 1차전을 헌납했고, 결국은 이로 인해 플레이오프 승부의 흐름을 롯데에 내주고 말았다.
강성우는 포수로서 수비력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최고의 안방마님이었지만, 반대로 방망이가 약하기로 소문난 선수이기도 했다. 그해 타율 0.222(158타수 35안타)에 홈런은 0개였다. 타점은 12개에 불과했다.
가을야구에서는 ‘미치는 선수’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롯데에서 이 선수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페넌트레이스에 봐오던 강성우가 아니었다. 타석에서 무려 5타점을 올리면서 LG를 울렸다.
2회초 2사 1·3루. 강성우는 이상훈을 상대로 강력한 선제 좌월 3점홈런을 날렸다. 페넌트레이스 내내 홈런 하나 없던 타자였고, 1992년 롯데 입단 후 통산홈런이 3개에 불과했던 선수였다. 정규시즌 이상훈을 상대로는 5타수 무안타였다.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초구 몸쪽 높은 밋밋한 실투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3점포로 연결됐다.
6-6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1사 2·3루에서 또 강성우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이번엔 LG가 자랑하는 특급 소방수 김용수를 상대로 2타점 좌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LG가 연장 10회말 1점을 추격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스코어는 7-8. 3시간 55분에 걸친 혈전은 이렇게 LG의 패배로 마무리됐다.
강성우는 방망이로 5타점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3차례나 홈 블로킹을 하며 LG의 3득점을 지워버렸다. 사실상 홀로 8점을 뽑아낸 셈이었다.

LG의 추격전도 만만치 않았다. 0-3으로 뒤진 4회말 2점을 따라붙었다. 선두타자 김선진의 3루타와 2사 후 심재학의 중전 적시타로 1점을 추격했다. 이어 박종호의 몸에 맞는 공으로 2사 1·2루. 여기서 대타 김영직의 좌전 적시타에 2루주자 심재학이 홈을 밟았다. 2-3으로 추격했다.
그런데 이때 타자 주자 김영직이 2루를 노리다 런다운에 걸린 사이, 3루까지 달렸던 1루주자 박종호가 순간적인 재치를 발휘해 홈까지 질주했다. 하지만 홈플레이트를 깔고 앉은 강성우의 블로킹에 막히면서 태그아웃되고 말았다.
요즘엔 ‘홈충돌 방지법’이 있어 이럴 땐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비워준 채 주자를 태그를 해야 하지만, 당시엔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깔고 앉아 육탄방어를 하는 게 기본이었다. 오늘날의 야구규칙이라면 비디오판독 끝에 주루방해 선언으로 박종호가 홈에서 살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당시엔 아웃으로 선고됐다.
강성우는 이날 8회말과 9회말에도 홈을 파고드는 박종호와 김재현을 육탄방어로 막아내면서 LG의 반격을 차단했다. LG로선 3차례의 홈 객사가 통한의 장면이이 되고 말았다.
이상훈은 이날 롯데 포수 2명에게 맞은 홈런 때문에 무너졌다.
2회초 강성우에게 3점포를 맞은 뒤 3-3 동점이던 6회초에는 롯데 임수혁(공격형 포수지만 이날은 6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에게 투런홈런을 맞고 말았다. 임수혁은 이상훈의 서울고~고려대 1년 직속 선배. 학창 시절 배터리를 이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였다.
믿었던 20승 투수 이상훈이 5.1이닝 6실점을 기록한 채 강판됐다.
LG는 5-6으로 뒤진 9회말 2사 3루서 김선진이 천금의 중전 적시타를 쳐 6-6 동점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연장 10회초 강성우를 막지 못해 2실점하고 말았다.

LG는 연장 10회말 1사 1·3루에서 류지현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따라붙었지만 결국 7-8, 1점차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김용수는 0.2이닝 3안타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 MVP 2회 수상에 빛나는 김용수는 포스트시즌 12경기 만에 첫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LG는 필승카드인 이상훈과 김용수를 내고도 1차전을 1점차로 내준 점이 뼈아팠다. 험난한 플레이오프 여정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한편 공수주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하는 주전 2루수 박종호는 8회말 홈으로 쇄도하며 슬라이딩을 하다 강성우에 막히면서 왼 손목 뼈가 삐져나오는 '수관절 골절상'을 당했다. 2차전부터 결장하다 5차전 대주자로 한 번 출장했을 뿐이었다. LG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PO 2차전에서 설욕…한대화 홈런포와 정삼흠~김용수의 완벽투

2차전은 4일 오후 6시 잠실구장에서 개최됐다. LG는 베테랑 정삼흠, 롯데는 2년생 좌완 영건 주형광이 선발로 나섰다.
경기 초반은 0-0의 팽팽한 접전. 양 팀 득점란의 침묵을 깬 것은 ‘해결사’ 한대화였다. 4회말 2사 3루서 좌월 2점홈런을 터뜨려 2-0 리드를 잡았다.
1차전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됐던 한대화는 “해태 시절을 포함해 포스트시즌에서 선발출장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라며 자존심의 날을 세웠다.
그리고는 이날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노장은 살아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홈런은 포스트시즌 개인통산 7번째 홈런이었다.
롯데가 5회초 전준호의 적시타, 6회초 마해영의 솔로홈런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LG는 7회말 2사 후 노찬엽의 좌중간 2루타와 김동수의 볼넷으로 1·2루 찬스를 잡았다.

롯데 김용희 감독이 주형광을 내리고 우투수 박동희를 올리자 LG는 우타자 박준태를 좌타자 김영직으로 교체했다.
1차전에서 대타로 나와 적시타를 쳤던 '영감' 김영직은 이번에도 우전 적시타로 노찬엽을 불러들였다. 3-2 리드를 잡는 이날의 결승타였다.
LG는 8회말 2사 1루서 한대화의 우월 2루타 때 롯데 우익수 이종운의 실책까지 겹친 틈을 타 추가점을 뽑고, 노찬엽의 1타점 우월 2루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정삼흠은 변화구 위주로 피칭하던 평소의 패턴과는 달리 이날 직구 위주로 힘있는 공을 뿌리며 7.1이닝 7안타 2볼넷 9탈삼진 2실점 쾌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전날 패전투수가 됐던 김용수는 8회초 1사 1루서 등판해 완벽한 마무리로 세이브를 올렸다.
홈에서 1승1패를 거둬 다소 홀가분해진 LG는 3~4차전을 치르기 위해 경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PO 3차전의 악몽…아, 송구홍! 아직도 못 잊을 통한의 악송구

1승1패 후 맞이하는 3차전. 승부의 분수령이었다. 1992년 한국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부산에서 가을야구가 열렸다. ‘구도’답게 3만154명의 만원 관중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다.
LG 김기범과 롯데 염종석의 선발 맞대결로 시작된 3차전은 초반부터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선취 득점은 롯데의 몫이었다. 2회말 1사 만루에서 1차전의 롯데 영웅 강성우가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날렸다.
그러자 LG는 3회초 2사 2루서 류지현의 유격수 땅볼 때 1루수 마해영이 포구 실책을 범하는 사이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4회초에 1사 후 한대화와 노찬엽의 연속 2루타, 대타 최훈재의 중전 적시타로 3-1로 앞서나갔다.
롯데는 4회말 2사 후 임수혁의 솔로홈런으로 1점차로 따라붙었다. 플레이오프에 앞서 경계해야할 거포로 꼽힌 ‘마림포’가 1~3차전에서만 3개의 홈런포를 합작했다.
6회말 2사 만루서 LG 4번째 투수 차동철의 폭투로 3루주자 박정태가 홈을 밟아 3-3 동점이 됐다.
LG는 7회초 3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잡는 듯했다. ‘캐넌히터’ 김재현이 2사 3루서 우중월 2점홈런을 날린 뒤 서용빈과 한대화의 연속 2루타가 나오면서 LG는 6-3으로 치고 나갔다.
롯데는 염종석을 내리고 김경환을 투입해 급한 불을 껐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LG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7회말 LG에겐 잊을 수 없는 통한의 장면이 펼쳐지고 만다.
차동철~민원기~박철홍이 이어던졌지만 1사 만루 위기를 만나자 특급 소방수 김용수가 호출됐다.
타석에는 신인이지만 롯데 4번타자를 맡고 있는 마해영.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 급히 마운드에 오른 김용수는 볼카운트 3B-2S에서 병살타를 유도하기 위해 몸쪽으로 붙는 공을 던졌다.
마해영이 강하게 잡아당긴 타구는 3루수 정면으로 가는 땅볼. 3루수 송구홍이 베이스 옆 쪽에서 앞으로 대시하며 숏바운드로 잡은 뒤 홈으로 송구했다.
이때 3루주자 김민재가 역사에 남을 재치 있는 주루플레이를 펼쳤다. 포수 김동수가 포구를 위해 내민 미트 방향을 보고 3루 파울라인 약간 안쪽으로 달렸다.
3루수 송구홍이 던진 공은 김동수가 받기 직전 김민재의 왼쪽 어깨에 맞고 굴절돼 1루쪽 덕아웃 근처로 굴러갔다. 2루주자 전준호까지 홈을 밟으면서 스코어는 단숨에 6-5, 1점차로 좁혀졌다.
(얼마 전 작고한 김민재는 이처럼 영리한 야구를 하던 선수였다.)


김용수는 송구홍을 향해 손짓으로 ‘3루를 밟고 1루를 던져야지’라며 질책했다. 그랬다면 완벽한 더블플레이가 완성돼 이닝이 끝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구홍이 홈으로 던지기에는 3루주자와 포수 김동수가 거의 일직선에 있었기 때문에 각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수신호로 얘기했다.
계속된 1사 2·3루. LG 배터리는 여기서 컨택 능력이 뛰어난 ‘호랑나비’ 김응국을 고의볼넷으로 걸러 만루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임수혁을 3구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여기까지는 LG의 의도대로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타자 대타 조규철을 상대로 그만 허벅지 쪽에 맞는 밀어내기 사구를 허용하고 말았다. 6-6 동점.
LG는 9회초 선두타자 류지현과 3번타자 서용빈의 안타로 1사 1·2루, 2사 만루 찬스를 이어갔지만 추가점을 뽑는 데 실패했다.
결국 9회말 일이 터졌다. 1사후 김응국이 우중간 3루타가 터지자 임수혁을 고의볼넷으로 걸렀다.
여기서 김선일이 타석에 들어섰다. 롯데가 엔트리에 포함된 야수 15명 중 14명을 이미 소진해 9회초 수비에서 1루수를 맡을 선수가 없자 포수 김선일이 1루수로 나섰다.
그런데 타격이 약한 김선일이 여기서 끝내기 좌전 적시타를 때렸다. KBO 플레이오프 역사상 최초의 끝내기 안타. 롯데가 7-6으로 승리하며 2승1패로 앞서나갔다.
LG로선 땅을 칠 노릇이었다.
7회말 송구홍이 더블플레이에 성공해 무실점으로 막았더라면….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생각은 송구홍의 악송구 그 장면에 꽂혀 있었다.
이광환 감독은 경기 후 패장 인터뷰에서 “3루를 밟고 병살로 처리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송구홍의 자책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하지만 당시 역사의 현장을 함께했던 LG 선수단과 프런트, 이 경기를 지켜봤던 LG 팬들에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순간으로 남아 있다.
당사자인 송구홍은 말해 무엇할까.
“잊을 수 없죠. 아니 잊히지 않죠. 그땐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으니까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후회가 됩니다.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겠더라고요.”
현재 서울 강동구 고교야구 클럽팀 'GD 챌린저스' 감독을 맡고 있는 송구홍의 말이다.
그는 아직도 그날 생각만 하면 회환이 밀려온다고 했다.
“당시 선택지는 3가지가 있었어요. 홈으로 던져서 5(3루수)~2(포수)~3(1루수)으로 이어지는 더블플레이를 노리거나, 3루를 밟고 1루를 던져 더블플레이를 시도하는 방법, 또 5(3루수)~4(2루수)~3(1루수)으로 연결하는 더블플레이가 있었죠.”
송구홍은 마치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처럼 악몽과도 같은 그날의 상황을 천천히 복기했다.
“공을 잡고 나서(숏바운드 처리) 몸을 일으키는 순간 제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순간적으로 3루를 밟거나 2루로 송구방향을 전환하는 게 쉽지 않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강하게 홈으로 던졌죠. 김민재가 홈으로 많이 달려간 상황이었어요. 제가 홈으로 던졌지만 주자와 포수가 거의 일직선이 되다 보니 (김)동수 형이 공을 받는 각이 나오지 않았던 거죠. 그러면서 김민재 어깨에 그만 공이 맞고 말았던 겁니다. 그때 ‘5-4-3으로 연결할 걸’ 하고 후회를 했지만 소용 없었죠.”
단 한번의 송구 실책으로 리드하고 있던 3점을 단숨에 까먹었다. 팀은 끝내 역전패를 당했다.

늘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였던 송구홍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1992년 서울팀 최초 ‘20-20클럽’을 달성하고, 암흑기에 홀로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쌍둥이 군단에 등불이 돼 줬던 로보캅. 팬들은 몸을 아끼지 않는 허슬플레이어 송구홍을 보고 위안을 삼고 희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1995년 플레이오프 3차전 이 순간만큼은 LG 팬들에게 욕받이가 되고 말았다.

◆PO 4차전…이상훈 내고도 패배, 1승3패 벼랑 끝

전날 뼈아픈 역전패를 당한 LG는 4차전에 에이스 이상훈을 선발로 출격시키며 필승 각오로 나섰다.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송구홍은 일단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대신 노장 한대화가 4번타자 3루수로 선발출장했다.
다소 여유가 생긴 롯데는 2년 연속 7승을 올린 유망주 강상수를 선발카드로 내놓았다. 부산고 출신의 강상수는 이상훈의 고려대 1년 후배였다.
1회초 시작하자마자 LG가 선취점을 뽑았다. 1번타자 류지현이 롯데 2루수 박정태의 실책으로 2루까지 내달렸다. 계속된 1사 1·3루에서 '해결사' 한대화가 우전 적시타를 날리며 후배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추가점을 뽑지 못하면서 결국 반격을 허용했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이상훈이 4회말 흔들렸다. 선두타자 김종헌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더니 박정태에게 우전안타, 마해영에게 2타점 좌월 2루타를 허용했다.
여기서 김응국의 타구가 좌중간으로 날아갔다. 타구가 펜스를 맞은 뒤 김재현 주위를 맴도는 사이 발 빠른 김응국마저 홈을 파고 들었다. 포스트시즌 역사상 최초의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장내홈런)'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1-4로 벌어졌다. 이광환 감독은 허탈해 하는 이상훈을 마운드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LG는 6회말 1점, 7회말 3점을 내줬다. 사실상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
8회초 한대화가 좌월 솔로홈런을 날렸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이미 늦었다. 이 홈런은 한대화의 포스트시즌 개인통산 8호 홈런이자 자신의 커리어 마지막 가을야구 홈런이기도 했다.
LG는 결국 3-8로 대패하면서 1승3패로 벼랑 끝에 몰렸다.
이상훈은 1차전 5.1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뒤 4차전에서마저 3이닝 4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20승을 향해 전력질주를 한 탓일까. 가을야구에서 힘이 떨어졌다. 삼손답지 않았다.
[엘팬알백] 42화에서 자세히 기술한 것처럼 이상훈은 1990년 해태 선동열 이후 5년 만에 20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세웠지만, 이런 잔상의 영향 때문인지 플레이오프 직후 열린 정규시즌 MVP 투표에서 OB 김상호에게 밀리는 아픔을 겪는다.

◆PO 5차전…기사회생을 꿈꾸며 반격의 1승

5~7차전은 '중립구장'이라는 의미에서 잠실에서 치러야 했다.
롯데로서는 7경기 중 5경기를 잠실에서 해야하는 난감한 상황. 하지만 KBO는 당시 한국시리즈를 포함해 7전4선승제의 포스트시즌에서는 5~7차전을 무조건 수도 서울의 잠실야구장에서 소화하도록 했다.
하루 이동일 이후 10월 9일 오후 6시 잠실에서 5차전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 잠실구장 매표소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LG가 1승3패로 벼랑 끝에 몰리자 한국시리즈 진출이 어렵다고 판단한 팬들이 직관(직접 관람)을 포기한 탓이었을까.
실제로 KBO 출범 후 7전4선승제 포스트시즌에서 1승3패 후 3연승으로 역전한 사례는 없었다. 먼 훗날인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두산에 1승3패로 뒤지다 역전 우승을 하게 되지만, 적어도 이때까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야말로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LG였다.
LG는 정삼흠, 롯데는 윤학길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롯데가 1회초 2사 후 박정태의 우월 2루타와 마해영의 좌전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LG는 1회말 2사 2루서 4번타자 한대화의 중전 적시타로 1-1 동점을 만들며 거세게 저항했다.
롯데가 2회초 공필성의 2루타와 도루, 김민재의 투수 땅볼로 2-1로 앞서나가자, LG는 3회말 김재현의 1타점 2루타와 한대화의 우전 적시타로 3-2 역전에 성공했다.
한대화가 왜 ‘해결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는지 제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6회초 롯데가 1사 1·2루에서 공필성의 3루선상 2루타로 다시 3-3 동점을 만들었다.
LG는 정삼흠(7이닝 3실점)에 이어 8회초 김용수를 등판시켜 롯데 타선을 삼자범퇴로 막았다.

그리고는 8회말 결승점을 뽑았다. 서용빈과 김동수의 안타로 만든 1사 1·2루에서 9번타자 이종열이 롯데 3번째 투수 김경환을 상대로 좌중간 2루타를 날려 2루주자 서용빈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1991년 LG에 고졸(장충고)로 입단한 이종열은 스위치히터로 변신했지만, 매년 2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할 만큼 방망이가 약했다.
하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돋보여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1군에 자리잡았다.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도 타율 0.083(12타수 1안타)에 불과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공격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려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이어진 9회초 마지막 수비.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김용수가 아닌 ‘야생마’ 이상훈이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LG 이광환 감독의 승부수였다. 이미 경기 전부터 이상훈까지 불펜에 대기시키는 배수의 진을 쳐 놓은 상태였다.
이상훈은 선두타자 공필성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강성우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김민재를 투수 앞 땅볼로 유도해 2사 3루. 다시 전준호의 볼넷으로 2사 1·3루로 몰렸지만 대타 김종훈을 4구 만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포효했다.
LG에 ‘내일’을 선물한 이상훈은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왼주먹을 땅을 향해 두 차례 내지르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김용수는 승리투수가 됐고, 이상훈은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프로 데뷔 후 커리어 첫 세이브를 올렸다. 이날의 세이브는 이상훈이 훗날 마무리투수로 전환하는 복선이었는지 모른다.

◆PO 6차전…끝내 일어나지 않은 기적, 이광환호 KS행 실패

1승3패를 할 때만 해도 역전 드라마는 쉽지 않은 일처럼 보였지만, 막상 5차전을 이겨 2승3패를 만들고 보니 ‘6차전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3승3패면 오히려 앞서가던 롯데가 더 심리적을 쫓기는 상황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6차전은 잠실에서 열렸지만 ‘중립구장’이었기에 롯데가 말공격을 했다. 다시 말해 롯데가 흰색 유니폼을 입고 1루 덕아웃을 사용하고, LG가 검니폼(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3루 덕아웃을 이용했다.
LG 김기범, 롯데 주형광의 좌완 선발 대결이었다.
국가대표 시절 ‘일본 킬러’로 명성을 날린 김기범은 큰 경기에 강한 투수였다. 1990년과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공교롭게도 모두 3차전 승리투수가 됐고, 1995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승리투수가 되진 못했지만 5.1이닝 3실점으로 나름대로 제몫을 해냈다.

주형광은 1994년 고졸(부산고)로 입단한 뒤 4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역대 최연소 승리투수(18세 1개월 18일), 6월 8일 대구 삼성전에서 역대 최연소 완봉승(18세 3개월 7일) 등 갖가지 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다(이 기록들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기복이 있는 게 흠이지만 야구계의 은어로 ‘한번 긁히는 날’엔 그야말로 언터처블이었다.
둘 다 이날이 그날이었다. 5회까지 0-0의 팽팽한 접전. 그야말로 투수전의 백미를 보여줬다.
균형이 깨진 건 6회말. 롯데 선두타자 전준호가 우전안타를 치고 나가자 김종헌이 좌월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승부는 이 1점으로 끝났다.
LG 타자들은 신들린 듯 압도적 피칭을 펼치는 주형광에게 1점도 얻지 못했다.
아니, 안타조차 뽑기 힘들었다. 6회초 선두타자 이우수의 좌전안타가 유일한 안타였다.
주형광은 9이닝 동안 4사구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1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포스트시즌 사상 최초 무4사구 1안타 완봉승. LG로선 퍼펙트게임을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이광환 감독은 9회초 송구홍과 심재학 대타 카드를 연이어 내밀며 마지막 안간힘을 썼지만 무위로 끝났다. 이어 ‘꾀돌이’ 유지현도 우익수 플라이에 그치면서 0-1로 패했다.
LG는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시리즈 전적 2승4패로 물러나면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충격의 PO 탈락…이광환호 ‘신바람 야구’의 내리막길 시그널
LG 선수단은 6차전 마지막 타자 유지현의 타구가 롯데 우익수 전준호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모두 눈을 감았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고, 누군가는 하늘만 멍하니 바라봤다.
플레이오프 6경기 중 4경기가 1점차 승부였다. 결과를 떠나 팬들이 보기엔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하지만 LG 입장에서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표현을 하기엔 너무나 아픈 결과였다.
프런트 직원들도, 팬들도 형언할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왔다.
8월말까지만 해도 한국시리즈 직행는 기본이고, 2연패에 대한 꿈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가장 허무한 결말. 한국시리즈 진출조차 하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995년은 의미가 컸던 해였다. ‘럭키금성 그룹’이 프로야구단 LG 트윈스의 성공에 고무돼 ‘LG 그룹’으로 바뀌고, 구본무 구단주가 그룹 3대 회장에 오른 해였다. 그래서 우승에 대한 열망 또한 뜨거웠다.
구본무 회장은 3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아와모리 소주 항아리를 사서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축배를 들 꿈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LG 왕조의 꿈은 신기루처럼 저 멀리 사라졌다.

여기서 일화 하나.
LG 선수단은 부산에서 플레이오프 3차전과 4차전을 패한 뒤 김해공항으로 이동했다. 4차전이 토요일 낮경기로 치러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로 한 것. 당시로선 파격적인 조치였다. LG 구단의 지원은 이처럼 최고였다.
하지만 이날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전 김해공항 2층 출국장 구석에서 홀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4차전 패전투수가 된 이상훈이 아니었다. 바로 3차전에서 결정적인 악송구를 범했던 송구홍이었다.
이름에 ‘송구’가 들어가지만, 그 송구가 악송구가 될 줄이야. 그것 하나로 3차전에 이어 4차전까지 내주자 송구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제가 원래는 쾌활한데 그땐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도 망쳤고, 팬들한테도 너무 미안했고….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이 나더라고요. 당시 주장이었던 (노)찬엽이 형이 와서 엄청 위로를 해주셨어요. 야구를 하면서 잊지 못할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그해 플레이오프 3차전의 악송구 장면은 제 평생 악몽의 순간으로 박혀 있습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LG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OB를 꺾고 우승도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후회가 됩니다.”

송구홍의 말처럼 만약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를 예단할 순 없지만 그해 페넌트레이스에서 OB를 11승1무6패로 압도했기에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OB는 당시 'LG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LG가 2연패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LG 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을 해봤을 대목이다.
실제로 LG 트윈스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왕조에 근접했던 때가 그때였다. 당시에 못다 이룬 꿈이 2025년과 2026년 왕조 건설로 이어질지 궁금하다.
한편, 1995년 플레이오프 탈락의 후폭풍은 거셌다. LG 트윈스도, 이광환 감독도 동력을 잃었다.
신바람은 풍선 바람처럼 힘없이 빠져나가고, 1996년 힘겨운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율야구 시대’와도 작별을 고하게 된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