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이 고전하고 수비가 삐걱거렸다. 상대에게 리드를 두 번이나 내줬다. 그런데도 삼성 라이온즈는 이겼다. 5월 21일 포항야구장, KT 위즈와의 공동 선두 맞대결에서 8대5로 승리하며 단독 1위에 올라섰다. 흔들리는 경기를 붙잡은 건 베테랑 최형우였고, 마무리를 지은 건 KBO 역사에 새 페이지를 쓴 마무리 김재윤이었다. 이날 포항은 단순한 1승이 아닌, 삼성이라는 팀의 색깔을 다시 확인하는 밤이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경기였다.

경기 전까지 삼성과 KT는 나란히 25승 1무 17패 공동 선두였다. 지면 곧바로 2위로 밀려나는 구도, 시즌 초반 가장 뜨거운 한 판이었다. 두 팀 모두 40경기 이상을 치른 시점에서 단순한 시즌 중반 경기가 아니라, 누가 이 리그의 주도권을 가져가느냐를 가르는 심리전의 분수령이기도 했다.
삼성은 지난 몇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 단골이라는 평가 속에서도 좀처럼 정규시즌 우승권을 굳히지 못했다. 올 시즌은 달랐다. 4월부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KT와 함께 선두 경쟁을 이어왔고, 이날 포항에서의 승리로 마침내 홀로 정상에 올랐다. 박진만 감독 체제에서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강조해온 삼성이 이날만큼은 타선의 집중력 하나로 흔들린 팀을 다잡은 셈이었다.

삼성 선발 아리엘 후라도는 올 시즌 지표만 놓고 보면 억울한 투수다. 9경기 등판에 평균자책점 2.33, 매 경기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빠짐없이 달성하고도 승리는 고작 2개였다. 팀이 타선 지원을 충분히 해주지 못하거나, 불운한 실점이 겹쳐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날이 세 번째 승리를 향한 여섯 번째 도전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최강 선발'로 분류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팀을 버텨온 외국인 에이스에게도 이날 결과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포항야구장은 삼성의 제2홈구장이다. 대구 경기와 달리 관중 규모나 분위기가 다소 다르지만, 홈 이점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삼성이 이 구장에서 치르는 경기는 팬 수보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도 그랬다.
KT는 왼손 선발 오원석을 맞불로 내세웠지만 삼성 타선의 적극적인 공략에 초반부터 밀렸고, 결국 경기 중반 강판당하며 불펜에 공을 넘겼다.

초반은 KT 차지였다. 1회 김현수가 115m 우월 솔로 홈런으로 선제했고, 2회에는 이재현의 송구 실책이 빌미가 돼 권동진의 2타점 적시 2루타까지 이어지며 0대3. 후라도는 2회에만 29구를 소모했다. 좌익수 구자욱의 타구 실책, 중견수 김지찬의 잇단 판단 미스까지 겹쳐 수비 강팀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이닝이 이어졌다.
삼성 타선은 꺼지지 않았다. 3회 최형우·디아즈 연속 적시타로 2점, 4회 김지찬의 적시타로 3대3 동점. 6회 또다시 KT에 리드를 내줬지만 류지혁의 우전 적시 2루타로 즉각 균형을 맞췄다. 한 점 내줄 때마다 한 점씩 되찾는 집중력, 역전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반복됐다.

승부의 분수령은 7회였다. 김성윤·구자욱의 연속 안타로 무사 1·3루 기회를 만든 삼성에서 최형우가 역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디아즈의 2루타, 류지혁의 희생 플라이가 더해져 7대4. 8회에도 최형우가 우전 적시타를 추가하며 점수 차를 벌렸다. KT가 8회 1점을 만회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마무리 김재윤이 9회를 틀어막아 8대5 완승을 확정지었다.
후라도를 포함한 불펜 기록은 배찬승·이승민·최지광이 중간을 이어받아 김재윤에게 넘겼고, 류지혁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3타수 1안타였지만 두 개의 타점 모두 결정적인 동점과 추가점 장면에서 나왔다. 김지찬도 4타수 3안타로 출루를 책임지며 수비에서의 실수를 공격으로 메웠다.

개인 기록: 최형우 5타수 3안타 3타점, 디아즈 4타수 3안타 2타점, 김지찬 4타수 3안타 1타점, 류지혁 3타수 1안타 2타점, 김성윤 4타수 2안타.
이날 경기를 관통하는 단어는 '복원력'이다. 실책이 세 차례 나왔고, 선발이 두 번이나 리드를 허용했다. 그럼에도 삼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실점 직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타석 집중력, 그게 지금 이 팀의 가장 강한 무기다.

최형우의 세 타점은 모두 팀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왔다. 3회 추격, 7회 역전, 8회 쐐기. 세대교체론이 따라붙는 선수지만, 경험이 빚어내는 클러치 능력은 젊음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는 걸 이날도 증명했다. 삼성 팬 커뮤니티에서 "최형우는 매년 이 타이밍에 꼭 나온다"는 반응이 반복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김재윤의 7시즌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는 KBO 역사상 구대성, 손승락, 정우람, 진필중에 이어 다섯 번째 사례다. 마무리 포지션에서 7년간 흔들림 없이 자기 역할을 유지해온 증거이며, 삼성이 경기 마지막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가장 든든한 보증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 삼성을 위협하는 변수는 외국인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다. 후라도와 디아즈 모두 현재는 제 몫을 하고 있지만, 긴 시즌에서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지면 취약점이 드러날 수 있다. 반면 최형우처럼 국내 베테랑이 버팀목이 되는 경기가 이어진다면, 그 의존도를 분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KT 입장에서는 결정타 부재와 수비 불안이 2연패의 핵심 원인이었다. 허경민, 권동진 등 주전들이 분전했지만, 흐름을 가를 순간마다 삼성에 밀렸다.
삼성은 이번 승리로 26승 1무 17패, KT는 25승 1무 18패. 두 팀 앞에 70경기 이상이 남아 있다. 단독 선두란 긴 레이스에서 순간의 위치일 뿐이다. 그러나 경쟁팀을 직접 꺾고 올라선 것과 다른 결과로 올라간 것 사이에는 심리적 무게가 다르다.
선발이 흔들리고 수비가 삐걱거려도 타선이 살아 있는 팀, 뒷문에 역사를 쓰는 마무리가 있는 팀. 삼성의 단독 선두는 운이 아닌 뚝심의 결과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