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H농협은행이 5000억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하며 중장기 자산 성장의 기반을 마련한다. 보통주자본비율(CET1)만 보면 15%대로 안정권이지만, 실제 자본 규모와 대출 체급을 동시에 분석하자면 셈법이 달라진다. 원화대출금은 300조원을 넘어선 반면 보통주자본은 주요 은행보다 작은 편이어서 이번 증자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과 기업금융·글로벌 사업 확대에 필요한 자본 여력을 미리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금융지주는 자회사인 농협은행에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에 1조1709억원을 투입하면, 농협금융이 이를 은행과 증권에 배분하는 구조다. NH투자증권에도 4000억원이 배정됐다. 업계의 시선은 농협은행의 기업여신과 생산적 금융 확대를 뒷받침할 자본 여력의 확보 등에 쏠리고 있다.
자산 성장에 걸맞은 '자본 체급'
농협은행의 1분기 말 CET1 비율은 15.08%로, KB국민은행(14.88%)·신한은행(14.37%)·하나은행(16.24%)·우리은행(14.88%)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다. 문제는 자본의 절대 규모다. 1분기 말 농협은행의 보통주자본은 22조8572억원으로, KB국민은행(36조8874억원)·신한은행(34조5769억원)·하나은행(34조7226억원)·우리은행(28조4680억원)·기업은행(30조9140억원) 등에 비해 모두 밑돈다.
반면 대출 체급은 작지 않다. 원화대출금 308조9876억원은 우리은행(302조8917억원)·기업은행(317조8809억원)과 엇비슷하며, 보통주자본 대비 원화대출금 배율도 약 13.5배로 4대은행 평균을 웃돈다. 위험가중치를 반영한 공식 자본비율과는 다른 단순 비교지만, 농협은행이 자본 총량에 비해 큰 대출자산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이번 5000억원 증자는 이런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증자가 완료되면 보통주자본은 23조3000억원대로 늘지만, 생산적 금융 확대 과정에서 위험가중자산(RWA)이 함께 증가하면 자본비율 개선 효과는 상당 부분 흡수된다. 증자의 목적이 단순한 비율 개선보다 성장 여력 확보에 맞춰진 이유다.
자본 규제 강화에 대비하는 성격도 있다. 현재 농협은행의 자본비율은 안정적이지만, 은행권에는 도입이 유예된 스트레스 완충자본 규제와 단계적으로 적용 중인 위험가중자산 하한 규제 등 추가 부담 요인이 남아 있다. 대출자산이 커지는 가운데 자본 규제까지 강화되면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자본비율 관리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으며, 단계적 자본 확충이 필요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다음 시선은 '자금 용처'로…손실흡수력 키울까
농협금융은 5년간 108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 금융 공급 계획을 세웠다. 이는 농협은행 보통주자본(22조8572억원)의 4.7배이자 기업대출 잔액(116조82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108조원 전부가 은행 대출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룹 내 최대 자산과 영업망을 보유한 농협은행이 상당 부분을 기업·중소기업·농식품 기업 여신으로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여신 포트폴리오는 기업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1분기 말 기업대출은 116조82억원으로 2025년 말 대비 2조5562억원 증가한 반면, 가계대출은 145조8074억원에서 145조8027억원으로 사실상 제자리에 머물렀다.
기업대출 확대는 자본비율에 부담을 준다. 주택담보대출보다 중소기업·벤처기업·농식품 기업 대출의 위험가중치가 높아 대출 증가가 RWA 증가로, 다시 CET1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협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이 대기업 협력사와 수도권 첨단산업 중심으로 생산적 금융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농식품 기업·지역 중소기업·스마트팜·그린바이오·애그테크 등 농협 고유의 영역까지 맡아야 해 수익성과 건전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다.

글로벌 사업 확대도 자본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해외 영업망 확장과 현지 기업금융 확대는 중장기 성장 전략이지만, 초기에는 자본 투입과 위험가중자산 증가가 뒤따른다. 결국 농협은행이 생산적 금융과 기업금융, 글로벌 사업을 함께 추진하려면 자본 총량을 충분히 쌓아둘 필요가 있다.
농협금융이 중앙회 증자 자금 가운데 5000억원을 은행에 배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율상으로는 안정권이지만 자본 총량과 대출 규모를 함께 보면 추가 성장 여력이 넉넉하지 않고, 108조원 목표와 자본 규제 강화까지 감안하면 이번 자본확충은 부실 보전보다 성장에 앞서 자본 방파제를 세우는 조치에 가깝다.
관건은 증자 후 자금의 용처다. 단순히 기업대출 총량을 늘리는 데 그치면 RWA만 빠르게 커질 수 있다. 농업·농식품 밸류체인, 지역 주력산업, 중소기업 설비투자, 스마트팜, 기술기업 등 농협은행이 차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자금을 선별 배분해야 생산적 금융의 명분과 자본 효율성을 함께 잡을 수 있어서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번 자본확충은 생산적 금융 확대와 기업여신 성장에 대비해 손실흡수능력을 선제적으로 보강하는 차원"이라며 "농업·농식품 기업과 지역 중소기업 지원을 확대하면서도 자본비율과 건전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류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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