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셀트리온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안과질환 치료제 아일리아(성분명 애플리버셉트)의 바이오시밀러인 '아이덴젤트(CT-P42)'의 판매허가를 획득했다. 이로써 셀트리온은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세계 양대 시장에서 승인을 확보하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삼천당제약과 함께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삼파전을 이루게 됐다. 업계는 국내 제약사가 북미 안과 시장에 직접 진입할 수 있게 된 첫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동시에 셀트리온이 직판 체제를 기반으로 기존 바이오시밀러 제품군의 성장세를 재현하고 글로벌 점유율 재편의 변곡점을 만들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8.3조 미국 시장 진출 본격화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셀트리온은 최근 FDA로부터 아이덴젤트의 품목허가 승인을 받았다. 승인 제형은 아이덴젤트주사(바이알)과 아이덴젤트 프리필드시린지(PFS) 등 2개 종류다. 아이덴젤트의 오리지널 의약품인 아일리아는 블록버스터 안과질환 치료제로 꼽힌다. 아일리아 개발사인 리제네론 파마슈티컬스는 연간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아일리아의 글로벌 매출이 95억2300만달러(약 13조3322억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만 지난해 59억6800만달러(약 8조3552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의 이번 허가가 유럽에 이어 미국에서도 판매승인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한다. 셀트리온은 올해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한 바 있다. 유럽과 미국은 글로벌 안과질환 치료제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으로 꼽힌다. 두 지역 모두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국산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는 아이덴젤트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오퓨비즈(SB15)'에 이어 두 번째다. 셀트리온은 이를 통해 글로벌 상업화 기반을 실질적으로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도 셀트리온의 전략은 '직접판매(직판)'이다. 셀트리온은 파트너사에 유통을 맡기지 않고 직판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아이덴젤트도 북미 시장에서 가격·공급·브랜드 전략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했다. 이 같은 전략은 단기 매출 속도보다는 중장기 수익성과 지속 가능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업계는 셀트리온이 기존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통해 구축한 글로벌 직판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한다.
셀트리온은 아이덴젤트의 승인으로 기존 자가면역질환 중심의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를 안과질환 영역까지 확장하게 됐다. 그동안 램시마, 트룩시마, 허쥬마 등 면역·항암 분야에 집중됐던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대사·안과 치료제 영역까지 외연을 넓힌 것이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이번 허가를 계기로 글로벌 주요국에서 올해까지로 목표했던 '11종' 제품 라인업 구축에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시장 또한 셀트리온이 이미 검증된 제조·유통 인프라를 안과 분야로 확장함으로써 신규 수익원 확보와 포트폴리오 다각화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직판체계 기반 삼파전 구도 형성
업계는 셀트리온의 진입으로 글로벌 아일리아 시장이 본격적인 삼파전 체제에 돌입했다고 진단한다.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시장 구도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선제 진입으로 제도적 우위를 확보했고, 셀트리온이 후발주자로 양대 시장 진입에 성공했고, 삼천당제약이 제형 전략으로 후속을 잇는 구도로 재편됐다. 알테오젠 또한 공급 전략을 기반으로 한 잠재적 경쟁사로 거론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인터체인지어블(대체조제) 승인을 통해 제도적 선점을 유지하고 있지만, 셀트리온이 유럽·미국에서 연속 승인을 확보하면서 '양대시장 허가 보유' 두 번째 기업으로 도약하면서 경쟁구도의 새로운 균형을 맞추게 됐다.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의 차별점으로 '직판체제'보다 한 단계 확장된 통합 상업화 구조를 지목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파트너 바이오젠을 통해 유통과 마케팅을 분리한 반면 셀트리온은 연구·생산·판매를 하나의 밸류체인으로 묶어 수익 극대화 구조를 완성했다. 후발주자지만 자체 영업망을 기반으로 가격 정책과 유통 속도를 직접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마진율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다. 특히 미국 내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및 의료기기구매조직(GPO)과의 협상 과정에서도 본사 직영 체제가 작동하면 초기 점유율 확보보다 지속 가능한 시장 점유율 유지에 더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셀트리온의 직판체제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파트너십 모델이 수익성 경쟁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도 업계의 관심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3년 8월 유럽의약품청(EMA)에 이어 2024년 5월 FDA에서 오퓨비즈의 인터체인지어블 승인을 받으며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선점에 나섰다. 이는 대체조제가 가능한 제도적 지위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경쟁사 대비 확실한 우위 요소로 꼽힌다. 다만 바이오젠과의 파트너십 구조로 인해 직판체계와 비교했을 때 판매마진은 제한적이고, 유럽 입찰 중심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장기 수익성 관리가 과제로 부상한다.
이외에도 삼천당제약과 알테오젠이 잠재적 경쟁사로 언급된다. 이들은 각각 '제형 차별화'와 '공급 안정성'을 내세워 틈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먼저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로 '비젠프리(SCD411)'을 보유 중인 삼천당제약은 PFS 제형을 중심으로 유럽, 캐나다, 일본 등에서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회사는 오리지널과 동일한 제형 경쟁력을 앞세워 서유럽 시장 입찰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6년 또는 2027년부터 미국 등 기타 지역에서 판매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잠재적 경쟁사로 꼽히는 알테오젠은 자사 아일리아 바이오시밀러 '아이럭스비(ALT-L9)'의 생산 파트너로 에스티젠바이오를 낙점했다. 이 같은 공급형 모델을 기반으로 유럽에서 허가를 획득하며 위탁생산(CMO) 중심 진입 전략을 택했다.
오리지널사 특허 소송 결과 변수
업계는 셀트리온이 기존의 중장기 성장 전략이 아이덴젤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2~3년 내 안과질환 시장 내 입지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 같은 전략의 근거는 앞서 선보인 바이오시밀러 제품군이다. 실제로 셀트리온의 2분기 바이오 제품군 매출은 △2023년 3801억원 △2024년 7740억원 △2025년 8828억원 등으로 꾸준히 상승해왔다. 이 같은 상승세에 힘입어 트룩시마는 미국과 유럽에서 30% 내외의 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허쥬마도 일본에서 74%, 유럽에서 22%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램시마SC, 유플라이마, 베그젤마 등도 각각 전년동기 대비 62%, 72%, 100%의 성장률을 보이며 시장에 안착하는 양상을 띤다.
다만 해결해야 할 변수도 적지 않다. 셀트리온은 오리지널 개발사 리제네론과의 특허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미 현지 규제당국으로부터 허가는 받았지만 해당 소송의 결과에 따라 상업화 개시 시점은 법적 절차 결과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북미 진입 속도가 늦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조기 합의가 이뤄질 경우 시장 안착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앞서 셀트리온은 리제네론을 대상으로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한 바 있으나 미국 연방순회 항소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단기 매출보다는 신뢰도 중심의 시장 진입 전략을 택한 만큼 상업화 초기에는 속도보다 지속성 확보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따라 향후 과제는 가격, 포뮬러리 진입, 제형 경쟁력 확보로 요약된다. 업계는 특히 미국 내 PBM 및 GPO와의 계약이 본격화돼야 실질적인 시장 점유율 상승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오리지널 제품이 강세인 PFS 제형의 품질 경쟁력을 입증하고, 장기적으로는 인터체인지어블 승인 확보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과 동등성을 입증하는 것이 관건인데 아이덴젤트는 글로벌 임상3상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글로벌 주요국에서 허가를 이어가고 있다"며 "특히 당사는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수행 가능한 역량을 갖추고 있어 아이덴젤트를 비롯한 고품질 바이오의약품으로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허 전략과 타사 제품 대비 차별점에 관련 질의에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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