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팔아먹는 권력자들, 그 시작 [그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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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23일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대한제국 외부대신서리 이지용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비밀리에 한일의정서를 체결한다.
일본 공사는 위력을 앞세워 한일 간 의정서 체결을 강압했고, 대한제국 내 반일, 친러파들 때문에 이에 어려움을 겪자 일부 인사들을 아예 일본 압송하거나 감시 조치하는 한편 외부대신 이지용을 돈 1만엔으로 매수해 결국 조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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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전 보장을 목적으로 “대일본 제국 정부는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정황에 따라 차지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사실상 대한제국 영토를 일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식민지 통치를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
이 조약은 열강이 식민지화에 열을 올리던 시기 혼란한 국제정세에 대한제국 역시 휘말린 시절에 체결됐다. 청일전쟁으로 남의 나라 전쟁터가 돼 피해를 입었던 대한제국은 국외 중립을 선언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일본 해군은 러시아와의 협상에 실패하자 인천 제물포항에 있던 러시아 함선을 공격하고 인천과 서울에 주둔했다. 2월 10일에는 선전포고로 러일전쟁을 발발시키고, 러시아 공사가 서울을 빠져나가자 일본군은 서울 역시 사실상 점령하게 된다.
일본 공사는 위력을 앞세워 한일 간 의정서 체결을 강압했고, 대한제국 내 반일, 친러파들 때문에 이에 어려움을 겪자 일부 인사들을 아예 일본 압송하거나 감시 조치하는 한편 외부대신 이지용을 돈 1만엔으로 매수해 결국 조약을 체결했다.

한일의정서 체결로 돈에 매수돼 ‘나라 팔아먹는 엘리트’의 전형이 된 이지용은 이완용 등에 비하면 이름이 덜 알려졌으나 나중에는 을사오적의 일원이 된 진성 매국노였다. 그들은 내 나라 사람들의 삶을 유린하는 야만에는 눈감고 일제의 지배야말로 우리가 잘사는 길이라고 서스럼없이 말하던 말종들이었다.
100년이 훨씬 지나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이 확립됐다고 믿는 오늘날 자기네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엘리트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몇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의 경과만 보더라도, 최소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장영락 (ped1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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