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의 여행

여행이 끝난 뒤 문득 떠오르는 식사가 있다. 그날의 분위기, 식탁 위에서의 대화가 하나의 장면처럼 각인되는 경우가 그렇다. 이번 타이베이 여행에서는 Logy가 그런 곳이었다. 대만의 미쉐린 투스타라는 타이틀보다 분위기, 사람, 그리고 대화의 장면으로 남은 식사.

<셩트래블>은 그런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채널이다. 어디가 왜 유명한지 어떤 게 맛있는지 나열하기보다는 여행지에서의 식사가 내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를 기록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타이베이의 Logy는 <셩트래블>의 첫 번째 미식 기록으로 적절한 곳이었다.

여행의 근사한 마무리

이번 타이베이 여행은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한 첫 번째 효도여행이었다. (첫 번째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시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일정을 정하는 것도, 식당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여러 조건을 생각해야 했다. 여행지와 식당의 동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여행의 흐름을 깨지 않아야만 했다. 여행의 마무리를 가장 잘할 수 있도록 '타이베이라는 도시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근사한 곳에서 또렷한 기억으로 남겨줄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곳이 Logy였다.

Logy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파인다이닝이란 이름에서 풍겨오는 긴장감보다는 편안하게 식사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좋은(Fine) 식사(Dining)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곳, 그게 Logy로부터 내가 받은 첫인상이었다.
이름 대신 재료로 말하는 메뉴판

이곳에서의 메뉴는 음식의 이름이 아니라 재료의 나열로만 구성돼 있다. 고객은 메뉴에 적힌 재료의 이름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 맛을 상상할 수 있다. 설명을 듣기 전에 먼저 추측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메뉴판이었다.
좋은 식사는 사람을 말하게 한다

코스는 천천히 이어졌다. 하나의 요리가 끝나면 그다음 요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간혹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빠르진 않은지’ 묻기도 했다. 맛은 하나하나 섬세했고, 전혀 어렵지 않았다. 설명을 이해해야만 즐길 수 있는 요리가 아니라 입에 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맛이었다.

식사 마무리까지 대략 두 시간 정도 소요됐다. Logy가 유독 인상에 남았던 건 식사가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고급 재료로 만드는 파인다이닝에서는 종종 음식이 중심이 되고, 사람은 그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하지만 Logy는 그 반대였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의 음식이 대화의 문을 열어줬다. 각자의 접시를 보며 감상을 나누고, 같은 요리에서도 조금씩 다른 인상을 이야기했다. 좋은 식사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아니라 열게 만든다는 걸, 비로소 다시 느꼈다.

여행의 방향을 잡아준 한 끼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보통 ‘일정 중 하나’로 소비된다. 관광객에게 유명하다, 평이 좋다, 한 번쯤은 가봐야 된다는 이유로 여행 중 끼니를 해결하러 가는 것이다. 이번 대만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는 목적지에 가까웠다. 4박 5일의 마지막 저녁 식사로 대만 여행이 정리가 되어주었고, 자연스레 여행의 밀도는 올라갔다.

나는 타이베이를 떠올릴 때 내가 갔던 여행 관광지보다 Logy를 먼저 기억한다. 이 식당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여행의 방향을 잡아준 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여행에서의 한 끼가 때로는 어떤 여행 전체를 대표할 수도 있다는 걸, Logy에서의 식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셩트래블>의 미식 시리즈는 앞으로도 인생이란 여행에서 마주한 식사를 기록할 예정이다. 별점이나 순위가 아닌, 여행 속에서 어떤 음식이 어떤 장면으로 남았는지에 대해 기록한다. 어쩌면 셩트래블의 시작으로 Logy는 가장 자연스러운 첫 페이지다.
글·사진 셩
ⓒ 셩트래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