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에 도대체 무슨 죄가 있나요' 끊임없는 단종 소문 K9 시승하고 든 생각
The 2024 K9 시승기
자동차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차알못'을 위한 자동차 시승기를 연재합니다. 그간의 시승기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내용을 보완하고, 실구매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립니다. 차를 사야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어려운 용어는 지양합니다.
기아가 지난 4월 출시한 K9 연식 변경 모델 'The 2024 K9(K9)'을 주말 이틀간 시승했다. 최근 K8의 상품성이 대거 개선되면서 또다시 단종 소문에 시달리는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시승한 차의 트림(사양)은 마스터즈+베스트셀렉션Ⅱ다. 가격표에서 안내한 차량 가격은 8210만원. 3.8리터 가솔린 엔진과 사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했다. 최고급 세단이 주는 품격은 무엇인지 중심으로 살펴봤다.
· 위엄이 느껴지는 외부
주차된 K9을 봤을 때 드는 생각은 ‘길다’였다. 양쪽에 주차돼있는 다른 세단 차량보다 앞머리가 삐죽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전장이 5140㎜으로 경쟁차종 제네시스 G80보다 135mm 길다. 전면부 그릴은 기존에 V자 패턴에서 수평형으로 바뀌었다. 전조등은 날카롭게 끝부분이 살짝 올라갔다. LED 턴 시그널 램프로 순차점등이 돼서 역동성이 느껴졌다.
그간 SUV나 디자인에서 포인트를 준 차를 많이 봐서 그런지 K9에서 눈여겨 볼 만한 디자인은 없었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다는 단점은 달리 보면,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무난한 생김새라는 뜻이다. 튀지 않는 정숙함과 고급스러움이 K9의 캐릭터다.
K9의 트렁크 용량은 국내 세단 트렁크 용량의 기준이 된다. 흔히 골프 가방이 몇 개 들어가는지를 두고 가늠한다. K9의 경우 골프 가방을 가로로 4개 쌓아도 공간이 남는다. 470L 용량이라 가능한 일이다. 뒷좌석과 연결된 구멍(스키쓰루)이 있어서 스키 장비 싣는 데다 무리가 없다.
K9 후미등은 항간에서 ‘생선뼈’라고 놀림을 받았는데, 막상 실제로 보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타이어는 19인치 다크 스퍼터링 휠로, 뼈대까지 검다. 검은색 차체와 이어지는 모양새가 무게감을 더해준다.
· 아날로그와 촌스러움 그 경계에서
내장재 색은 미스틱 그레이다. 좌석에 퀼팅 나파가죽시트를 썼고, 곳곳에 나무 소재(리얼우드)로 포인트를 줬다. 이는 베스트셀렉션 II 트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이전에 색 있는 시트는 스포츠카나 외제차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새 국산차 어디에서나 흔해졌다.
연한 회색에 차가운 갈색, 나무 소재로 이뤄진 색 배치가 세련된 인상을 줬다. 손잡이나 조작 버튼부, 연결 부, 마감 등은 은색 크롬으로 마무리해서 깔끔했다.
신형 차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스틱 기어가 반가웠다. 최고급 차에는 다 있다는 아날로그 시계는 그대로였다. 스위스 명품 시계 모리스 라크로라고 한다. 처음 아날로그 시계를 보면 ‘굳이 있어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누구나 스마트폰이 있고, 내비게이션에도 시계가 표시된 요즘 같은 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운전할 때 의외로 편리하다. 한 번 위치를 인지하면, 시간을 확인할 때 꼭 아날로그 시계를 보게 된다.
디스플레이는 다소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그동안 계기판에서 쭉 이어져 안쪽으로 굽어진 형태를 많이 봐서 그런지 옛날 디스플레이 같았다. 각종 공조 장치는 물리 버튼으로 돼있어 조작하는 맛이 살아 있었다.
헤드레스트(머리받이)와 운전대 높이가 전동으로 조절된다. 운전대는 전동 방식을 가끔 봤는데, 헤드레스트도 버튼을 이용해 높이 조절이 되니 편리했다.
· 사장님 심기 불편하지 않게 하는 디테일
뒷좌석에도 편의성을 높이는 기능이 많았다. 상석인 조수석 뒤쪽에 앉을 회장님이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일 테다. 2열 가운데 공조 장치 조작 버튼이 있어 에어컨 바람 세기, 음악 크기 등 조절할 수 있다.
중요한 회의 전 얼굴과 옷매무새를 점검하기 위한 화장 거울도 뒷좌석에 마련돼있다. 차 안으로 들이치는 햇빛을 막는 선스크린이 수동이라는 점은 아쉽다. 뒤쪽 선스크린은 자동인데, 뒷좌석 양 옆에 있는 선스크린은 손으로 당겨 올려야 한다.
차 문이 잘 안 닫힌다. 힘껏 당기거나 밀어야 문이 닫힌다. 어렵게 문을 여닫는 만큼 소리가 거의 안 난다. 트렁크 문소리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니 ‘소프트클로징’ 기능 덕분이다. 문에 두꺼운 고무 패킹이 돼있어 반발력이 강해 충격이나 소음이 거의 없다.
최신형 차에는 대부분 있는 ISG(Idle Stop & Go) 기능이 없다. ISG는 주행 중이던 차가 잠시 멈췄을 때 자동으로 시동이 꺼졌다, 출발할 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시동이 걸리는 기능이다. 불필요한 공회전을 없애 연비 효율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시동이 다시 걸리는 느낌이 싫다는 차주가 있어 대개 ‘호불호 갈리는 옵션’으로 통한다. K9에 ISG 기능이 없는 이유는 뭘까. 시동이 꺼졌다가 다시 걸리면서 부릉- 하고 울리는 소리로 회장님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제일 가격이 낮은 기본 사양에도 쏠쏠한 기능이 들어 있다. 에어컨 냄새를 잡는 애프터 블로우, 운전석 에르고 모션 시트가 대표적이다. C형 USB 단자가 앞, 뒤 콘솔 내부에 모두 있어 편리하다. 올해 12월부터 5인승 이상 차종에 비치 의무가 있는 차량용 소화기도 K9에 기본적으로 들어 있다.
· 묵직한 덩치가 주는 안정적 주행
‘K9’ 하면 당연히 안정적인 주행 질감을 기대하게 된다. 가속 페달을 밟았더니 3778㏄ 배기량의 K9이 묵직한 덩치를 이끌고 힘차게 질주한다. 최근 SUV 차량을 연달아 시승해서 그런지 확실히 바닥에 낮게 깔려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고속화 도로에 접어들어 시속을 120km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차체가 흔들리거나 창을 때리는 소음 없이 고요했다. 기본사양에도 들어 있는 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큰 도움이 됐다. 차선을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운전대가 울리면서 차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앞뒤로 차가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경고를 해줬다. 과속 단속 카메라를 알아서 감지해서 스스로 속도를 맞춰주니 신기했다.
연비 효율도 괜찮았다. 기아는 가격표에서 3.8 가솔린 AWD(사륜구동) K9의 복합 연비를 8.2~8.4㎞/ℓ로 밝혔다. 실제 운전해보니 연비는 8.8㎞/ℓ로 나왔다. 공차 중량 2톤, 전장 5미터가 넘는 K9의 크기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연비다.
· 심장을 때리는 오디오
요즘 신형차에는 웬만한 고급 스피커가 내장돼있어서 K9도 어떨지 기대가 됐다. 아니나 다를까 심장을 때리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소음을 차단하는 유리창 덕분인지 고요한 공간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K9에는 하만 계열사 렉시콘의 스피커가 장착돼있다. 뒷좌석에서도 소리가 풍부하게 들렸다. 지금까지 시승했던 여러 SUV 차량보다도 스피커 성능이 좋았다. 이 스피커를 달려면 추가금 138만원을 내야 한다. 마스터즈 베스트셀렉션 Ⅱ에서는 기본으로 포함돼있다.
/이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