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이 좋아했던 카렌스는 왜 갑자기 안 팔렸을까?

2006년 북미 시카고 모터쇼에 양산형 기반의 쇼카, 'Multi-S'를 예고편으로 내놓은 기아차는 같은 해 봄, 모든 면에서 새로워진 카렌스의 2세대 모델을 출시했습니다. 지금처럼 SUV와 MPV의 구분이 명확치 않던 시절 다목적 차량, 즉 RV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분류하곤 했죠. 이후 SUV와 도심형 크로스오버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기아차는 그 인기에 편성하기 위해 이 차를 'CUV', SUV 스타일을 가미한 '도심형 크로스오버'로 내세웠는데, 아무도 관심 있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소위 봉고차 느낌을 만들어내는 미니밴 특유의 1.5박스 세미 보닛 스타일이 아닌 전작과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승용차의 2박스 스타일을 유지했구요. 17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휠과 리어 디퓨저 등 터프한 느낌으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SUV 스포티지나 쏘렌토보다는 세단 로체가 먼저 떠오르는 순둥한 얼굴에 낮은 차체로 1세대의 무난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그대로 계승했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세련미가 돋보였고 눈길을 사로잡는 유채색 컬러를 주력으로 내세워 존재감을 끌어올렸던 것도 좋은 전략이었습니다. 강렬한 보라색의 뉴 카렌스와 팝핀 현준이 출연한 이 런칭 CF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무엇보다 덩치가 더욱 커졌죠. 세피아의 소형차 플랫폼을 늘려 만들었던 선대 모델과 달리 중형차 로체에 쓰인 차세대 중형 플랫폼을 적용해 거주성과 안정성을 크게 개선하고 상품성을 끌어올렸습니다. 마치 빵빵하게 바람을 채워 넣은 듯 이번에도 주로 곡선을 사용해 차가 통통해 보이게 디자인한 것도 한 몫 했고요.

미래지향적인 느낌의 뒷모습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 봐도 어색함이 전혀 없죠. 도요타에 대한 미련이 좀 남았는지, 테일 램프 상단을 트렁크 패널에 맞게 꺾은 부분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를 연상케 했어요.

다만 컨셉트카 Multi-S의 전면부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해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수출형 모델에 반해 내수형은 마치 마우스피스를 낀 듯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전면 범퍼로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외관의 세련된 분위기는 실내에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4개의 원형 에어벤트를 포인트로 한 안정적인 좌우 대칭 레이아웃, 완만하게 휘어있는 센터페시아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어요. 그 사이 탑승객 안전 규정이 강화되어 워크스루의 중요성이 희석되면서 전작의 칼럼식 변속 레버는 다시금 플로어 타입으로 변경됐지만, 최대한 센터페시아에 가깝게 설계해 MPV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비어있던 중앙 통로에도 실용적인 콘솔 박스와 컵홀더가 들어섰죠.

여기에 6매 CD 체인저와 JBL 프리미엄 사운드, 6.5인치 DVD 내비게이션, 사이드 커튼 에어백을 옵션으로 장비하는 등 당대 중형 세단에 뒤지지 않는 고급 편의 및 안전 사양으로 무장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위모델인 GLX 등급까지 사이드 커튼도 아니고 조수석 에어백을 옵션으로 빼놓은 건 좀 치사했어요. 특히 이 시기에 애프터마켓 제품들의 기술력이 크게 좋아지면서 아예 차종별로 전용 마감재를 제작, 순정보다 더 순정 같은 애프터마켓 내비게이션을 많이들 장착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 밖에 곳곳에 마련된 수납공간, 늘어난 전고와 휠 베이스로 뒷좌석 거주성도 더욱 쾌적해졌습니다. 2열과 3열 승객을 위한 전용 에어벤트를 제공했고, 유리창의 면적이 큼직해 개방감도 훌륭했어요. 차가 커진 만큼 3열 거주성도 이전 모델에 비해 좋아졌죠. 성인이 타기엔 여전히 비좁았지만, 2열 승객이 레그룸을 조금만 양보하면 체구가 작은 여성들이나 어린아이들은 충분히 탈만한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트렁크도 더욱 넉넉해졌는데, 깔끔하게 수납되는 3열 시트만 접어놔도 웬만한 중형 suv이 부럽지 않은 짐 공간을 제공했어요. 다만 2열은 등받이를 접어도 약간의 경사가 있어 큰 짐을 자주 실거나 차박 캠핑을 즐기는 소비자들에게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고, 따로 평탄화 작업을 하시는 오너들도 있었죠. 앞좌석 등받이를 뒤로 눕혀 발을 쭉 뻗을 수 있는 기능이 있긴 하지만, 중요한 건 평탄화니까요. 다만 이는 뒷좌석 하부에 'LPG 봄베'를 넣어야 하는 내수형 LPI 모델에만 국한된 문제로 디젤 및 가솔린 사양은 전작처럼 2열의 방석을 들어올릴 수 있는 더블 폴딩 시트를 장착, 완전히 평평한 적재 공간을 연출할 수 있었습니다.

파워트레인도 신형으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중형 세단 로체와 공유하는 '4기통 2.0L 세타 LPI'와 'D 디젤' 엔진 두 가지 사양으로, 각각 5단 및 6단 수동, 4단 자동 변속기가 매칭됐습니다. 주력인 LPI 사양은 기화기 방식을 사용하던 전작과 달리 연료를 고압으로 실린더에 직접 쏘는 직분사 기술이 적용돼 출력과 반응속도는 물론 연비까지 개선됐습니다.

물론 여전히 경쾌한 주행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커진 덩치에 맞는 무난한 힘을 제공했고 무엇보다 겨울철 시동불량 같은 과거 LPG차들의 고질적인 불편이 해소됐다는 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아울러 디젤 모델 역시 VGT 기술을 적용, 출력과 토크 효율까지 이전 'X-Trek'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더 넉넉한 파워를 원했던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죠.

또 로체의 중형 플랫폼을 활용한 덕분에 그동안 높아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게 주행 안정성과 승차감 부분에서도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세단에 가까운 낮은 전고는 이 차를 그들이 원하는 CUV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비슷한 체급의 SUV에 비해 무게중심이 낮아 일상주행 시 장점으로 작용했어요. 이후 2008년 연식변경 모델부터는 디젤 사용에만 옵션으로 제공하던 전자식 자세 제어장치 VDC를 LPI 모델까지 확대 적용했죠.

2008년에는 소비자들의 지적을 수용해 전면 범퍼 디자인을 수출 사양과 동일하게 수정한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페이스 카렌스'를 출시했습니다. 범퍼에 개구기만 뺐는데도 인상이 아주 깔끔해졌죠. 이외 디자인에서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드디어 조수석 에어백을 기본 적용하고 더욱 편리한 음악 감상이 가능한 AUX 및 USB 포트를 추가하고, 과도하게 비싸던 기존의 DVD 내비게이션을 100만 원대로 저렴한 액추얼 DMB 내비게이션으로 대체하는 등 각종 사양을 보강했습니다. 여기에 파워트레인도 개선해 직전 모델 대비 출력을 소폭 끌어올렸어요.

이후 2010년형 모델부터는 강화된 배출가스 규제에 대응하지 못해 디젤 라인업을 단종 동 배기량의 세타 가솔린 모델을 대신 투입했습니다. 다만 주력인 LPI 모델과 비교해도 경제성과 파워 부분에서 나름 메리트가 있었던 디젤 모델과 달리 이 가솔린 모델은 뚜렷한 장점이 없었고, 당연하게도 판매량 역시 저조했습니다. 어차피 몇 대 안 팔릴 것 수출용 V6 엔진이라도 넣어줬으면 나름 만족스러운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이 모델부터 블랙 포인트를 더한 휠과 헤드램프에 호박색 리플렉터를 추가해 꽤나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죠. 이 시기 현대-기아차에 폭넓게 적용됐던 후방 카메라를 품은 다기능 룸미러도 신기한 아이템이었고요.

2세대 카렌스는 전작의 인기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이번에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에 탄생해 오로지 경제성에만 초점을 맞춰 주행 품질과 안전성을 기대하기 힘들었던 선대 모델에 비해 그동안 높아진 패밀리카의 기준과 발을 맞춘 눈에 띄게 좋아진 상품성이 돋보이는 모델이었죠. 여전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적당한 크기로 어느 누가 타더라도 만족스럽게 운전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물론 가성비도 확실하게 챙겼죠. 특히 주력인 LPI 사양은 연 수만 km도 거뜬한 택시에 쓰이는 안정적인 품질의 파워트레인, 이는 곧 유지관리와 정비 부분에서도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웬만한 경정비는 택시 복지 정비소에서 저렴하게 할 수 있었고, 지천에 널려있는 부품과 저렴한 부품값은 덤이었어요. 특히 현대 트라제 XG, 오랫동안 티격태격했던 GM 대우 레조가 후속없이 단종됨에 따라 한동안 이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로 경쟁차가 없는 평화를 누리기도 했죠.

하지만 2011년 나비 넥타이를 맨 이 모델이 혜성처럼 등장하면서 이 평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미 신차로서의 수명을 다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세련된 스타일과 쉐보레 브랜드의 신선함으로 무장한 올란도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그래도 기화기 방식을 쓴 올란도와 달리 LPI 방식의 장점이 돋보였고, 당시부터 LPG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대-기아차'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에 적지만 꾸준한 수요를 이어갔습니다.

해외시장에서는 '카렌스' 이름을 그대로 쓰는 유럽과 함께 북미를 비롯한 대륙시장에도 '론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시했으며 가성비 좋은 컴팩트 MPV로 호평받긴 했지만, 이 세그먼트 자체가 인기가 없다 보니 새로운 시장에서만큼은 큰 인기를 끌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2세대 모델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만 도합 42만여 대라는 준수한 성과를 달성했어요.

한편 시간이 흐르며 드러난 문제들도 있었죠. 신형이 되었어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시기 국산차들의 고질적인 차체 부식 문제, 그 중에서도 주력인 LPI 모델의 경우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LPG 봄베가 하부 철판과 함께 부식되어 심한 경우 가스가 새어 나오기도 하는 등 경우에 따라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으니 운행 중이시거나 중고 구입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은 이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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