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관세 반대시위 나선 프랑스 꼬냑 생산자들, 왜?
와인 기반의 브랜디를 의미하는 '꼬냑(Cognac)'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6세기부터 와인을 생산해온 이 지역에서 해외 수출 도중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증류가 시작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브랜디가 인기를 얻으면서 꼬냑이란 이름이 고급 브랜디의 대명사처럼 자리잡게 된 것.
중국산 전기차와 꼬냑의 상관관계
지난 9월 말, 브랜디를 생산하는 농민 800여 명이 바로 그 꼬냑 지역에 모여 트랙터와 농기계를 몰고 시위에 나섰다.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35%에 이르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안건을 놓고 10월 초로 예정된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투표를 연기해 달라는 요구가 핵심이었다.
"이 상황에서 프랑스 당국이 우리를 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 사업과 무관한 중국의 보복 조치에 혼자 맞서도록 놔둬서는 안 됩니다. (Faced with this development, the French authorities cannot abandon us and leave us alone to deal with Chinese retaliation that has nothing to do with us.)"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상황은 의외로 간단하다. 중국산 전기차에 무거운 추가 관세를 매기려는 유럽연합의 움직임에, 중국 역시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유럽연합을 향해 내놓을 카드 몇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카드 중 하나가 바로 유럽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브랜디에 대한 규제 조치였다.
현실로 벌어지기 시작한 '보복 관세'
그럴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나라는 프랑스다. 중국이 수입하는 브랜디의 99%가 프랑스에서 수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 브랜디 산업은 내수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산업이기에, 중국이 수입 규제를 할 경우 산업 자체의 존폐가 문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꼬냑을 생산하는 프랑스 농민들의 바람과 달리,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투표는 연기되지 않았고, 지난 10월 5일 실시된 투표 결과 중국산 전기차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되었다. 1주일도 지나지 않은 10월 11일, 중국 당국의 발표가 이어졌다. 유럽연합(EU)산 브랜디 수입업체는 수입가의 34.8~39.0%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예치해야 한다고 말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 조치가 "순수한 보복"이라며 반발했다.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과 함께 WTO 제소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어, 이거 어디서 본 풍경인데? 그렇다. 유럽연합이 중국산 전기차에 조치를 취할 때 중국이 했던 반응과 완벽하게 똑같다. 중국 정부는 유럽연합 조치를 "순수한 보복"이라 비난했고 유럽연합을 WTO에 제소했다.
과거와 완전히 뒤바뀐 입장
꼬냑과 함께 중국은 유제품을 비롯한 유럽의 낙농산업과 축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관세 부과 움직임이 시작된 직후 중국은 곧바로 꼬냑과 유제품에 대한 유럽연합의 보조금 지급 관련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중국에 수입되는 돼지고기의 23%가 스페인산이다.
중국이 만지작거리는 또다른 카드는 대형 내연기관차이다. 중국에 수입되는 대형 내연기관차 대부분이 독일에서 만들어진다. 중국산 전기차에 유럽연합이 추가 관세를 움직인다 하니, 중국은 유럽연합산 내연기관차에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통상 무역개방과 관세를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면 경제발전이 낙후한 쪽에서 농민들이 "자국 농업을 죽일 셈이냐"며 시위를 벌이고, 경제가 발전한 다른 쪽에서는 최첨단산업 제품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력을 넣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유럽연합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역분쟁 양상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중국은 최첨단 산업인 전기차 시장에 대한 관세장벽을 높이지 말라고 주장하고, 유럽연합은 자국의 내연기관차와 낙농산업·축산업 보호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유럽연합의 균열과 중국의 투 트랙 전략
여기 등장하는 나라들은 각각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선 꼬냑 생산지로 중국 보복 조치의 가장 첫 번째 타겟이 된 프랑스의 경우, 시종일관 중국산 전기차에 무거운 관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으로 만지작거리는 돼지고기 수출국 스페인은,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추가 관세에 대한 찬성 입장이었으나 10월 최종투표에서는 기권으로 돌아섰다. 마지막으로 대형 내연기관차 수출국 독일의 경우 지난 7월에는 기권 입장이었으나 최종투표에서는 반대로 돌아섰다.
즉, 중국의 보복 조치는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 특히 자동차 생산·판매를 주로 하는 나라의 입장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 가장 강한 반기를 든 프랑스에 맨 먼저 조치를 취한 뒤, 입장 변경 가능성이 있는 스페인과 독일을 겨냥해온 것이다.
특히 독일이 반대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유럽연합 차원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독일은 '기권' 표를 던지며 특별히 어느 진영에 서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유럽연합을 함께 이끌고 있는 프랑스와 다른 진영에 서기로 한 것이다.
국가에 따라 자본가들의 입장도 분열되었다. 프랑스 자동차공업협회(CCFA)는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에 찬성 입장을 밝힌 반면, 독일 자동차공업협회(VDA)는 관세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다보니 유럽연합 자동차산업협회(ACEA)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원론적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 활발해진 중국 업체의 유럽 진출
중국은 추가 관세 조치에 대한 보복 카드와 함께 일정한 회유책도 병행하고 있다. 관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럽 현지에 생산공장을 짓는 것이다. 현재 BYD(비야디), SAIC(상하이차), Geely(지리), Chery(체리), Great Wall(장성기차) 등 중국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직접 또는 자회사를 통해 유럽 현지 생산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물론 이 공장들을 짓는 데에는 2~3년이 소요된다. 따라서 추가 관세를 피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긴 하나, 이들 공장을 어느 나라에 지을 것인가를 놓고 또 추가 협상의 여지를 열어갈 수 있게 된다.
이를테면 독일·프랑스·스페인과 함께 유럽연합의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는 이탈리아인데, 중국의 수많은 완성차업체들이 이탈리아 정부를 접촉하며 현지 공장 설립 여부를 타진 중이다. 공장 하나 설립하면 일자리 수천 개에 여러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으니 이탈리아 정부 역시 중국업체 규제에 대한 입장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추가 관세와 무역전쟁의 결말은?
사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에 찬성 입장을 보였던 나라들의 내심도 비슷하다. 중국 업체들이 자국에 생산공장을 만드는 것은 환영하겠다는 것. 지난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프랑스 방문 당시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BYD 등 중국 메이커가 프랑스에 공장을 짓는 것은 언제든 환영할 일"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즉, 추가 관세에 가장 강력한 찬성 입장에 선 프랑스 역시 중국 완성차업체들의 투자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이 값비싼 브랜디(!)를 나눠마셨던 일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라 해야 할까.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유럽 진출이 확실한 해결책이 되리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중국 내수시장 자체가 포화상태에 빠졌고 이미 과잉생산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유럽 진출의 길이 열리면 중국의 과잉생산은 일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에서의 과잉생산으로 훨씬 규모가 큰 시한폭탄이 제조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과잉생산을 향해가는 글로벌 자동차산업 열차가 자동으로 멈춰설 것 같지가 않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이윤이 걸려 있기에, 모든 업체들이 너도나도 유럽 현지생산을 하겠다며 출혈경쟁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정녕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해결책은 어디에 있을까. 꼬냑 한 잔 마시다보면 생각이 떠오를까. 고교 시절 아버지가 몰래 숨겨놓은 꼬냑 한 병 훔쳐다 친구들과 홀짝홀짝 마셔본 뒤로는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꼬냑과 전기차가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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