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열리는 프랑스 사르트르 서킷의 길이는 13.626km다. 이 대회는 24시간 동안 얼마나 멀리 주행했는지로 성적이 판가름 난다. 그렇다면 단순한 질문이 가능하다.
"연비가 좋은 차가 피트인을 덜 하니까 좋은 거 아닌가?" 물론이다. 연비가 좋으면 피트인 횟수가 줄어들고, 이는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평균 속력이 빠르지 않으면 더 많은 랩을 돌 수 없어 결국 우승에서는 멀어진다.
빠른 속력은 많은 연료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의 연비는 어느 정도일까?
초기의 연료 전략은 단순했다. 가능한 한 많은 연료를 싣고 교체 없이 달리는 것이 이상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차량의 속력이 빨라지고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연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승부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 그룹 C 시대에 FIA는 차량당 연료 사용량을 제한하며 연비 중심의 레이싱을 제도화했다. 이 시기 포르쉐 956과 962C는 뛰어난 공기역학과 연료 전략으로 독주했고, 연비를 잘 짠 팀이 곧 우승 후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당시 그룹 C 차량의 평균 연비는 약 1.7~2.0km/ℓ 수준이었다. 최고속력이 시속 400km에 육박하던 시절이었기에, 공기저항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라는 깨달음을 준 시기이기도 하다.
FIA는 1000km당 연료 사용량을 600ℓ로 제한했는데, 이를 환산하면 1.66km/ℓ에 해당한다. 이 정도 연비라면 우스갯소리로 연료 게이지의 바늘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흐름을 완전히 바꾼 메이커는 아우디였다. 2006년, 아우디는 디젤 엔진을 탑재한 R10 TDI로 등장했다. 내연기관 레이스의 기존 공식을 뒤흔든 이 차량은 디젤의 낮은 연료 소비량과 긴 스틴트(연속 주행 거리) 능력을 앞세워 르망을 제패했다.
R10은 배기량 5499cc의 90도 V12 엔진을 장착했다. 연비는 약 2.4km/ℓ로, 당시 경쟁자들보다 약 20%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비 외에도 디젤 엔진은 여러 면에서 획기적이었다. 낮은 회전수에서 강력한 토크를 발휘하며 전체 시스템의 안정성이 뛰어났고, 코너 탈출 가속도 좋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당시 레이스 팬들 사이에서는 기존 레이스카에 비해 심심한 배기음으로 호불호가 나뉘기도 했다.
아우디의 성공은 2000년 R8으로 다져진 운영 능력에 디젤 엔진이라는 획기적인 발상이 더해진 결과였다. 물론 이후 디젤게이트로 인해 그 의미가 다소 퇴색되긴 했지만, R10에서 R18에 이르는 아우디의 경주차들은 디젤 엔진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토요타와 포르쉐가 아우디의 뒤를 따라 하이브리드 경쟁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FIA와 ACO는 랩당 회수 에너지(MJ/lap)를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했고, 제조사들은 내연기관과 모터 사이의 에너지 밸런스를 최적화하기 위한 기술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회수 에너지는 2, 4, 6, 8MJ 등급으로 나뉘었다가 최근에는 8MJ 규정만 적용되었고, 2023년부터는 랩당 총사용 에너지, 즉 연료와 하이브리드용 전기를 포함한 총량이 909MJ 이하로 제한되고 있다.
최근의 르망 규정은 하이퍼카 클래스(LMH, LMDh)로 통합되었으며, 모든 차량은 680마력(500kW)의 총출력 제한을 받는다. 이는 연료와 전기 에너지의 합산으로 계산되며, 단순한 고출력보다는 지능적인 에너지 운용과 회생 전략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다.
또한 2022년부터는 모든 레이스 연료가 재생 가능한 바이오 기반 합성 연료로 전환되면서, '지속가능한 내연기관'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오늘날의 우승 팀은 더 이상 가장 빠른 차를 가진 팀이 아니라, 가장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운용한 팀이다.
복잡해진 규정으로 인해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6년 R10이 등장했을 때도 디젤 엔진으로 우승을 노리는 발상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내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르망 24시간에 출전한다. 현대는 어떤 아이디어를 보여줄까? 마쓰다 787B의 로터리 엔진, 아우디 R10의 디젤,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의 V4 터보처럼, 또 한 번의 신선한 충격이 등장할까? 1년을 기다리는 일이 꽤나 고통스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