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양산'된 국산 오픈카 7종! 몇 가지나 알고 계셨습니까? [잊혀진 국산 오픈카 이야기]ㅣ차부심 Ep.13

# 너, 나, 우리의 로망 오픈카! 근데 왜 '국산'은 없지?

차에 관심이 많든 적든, 누구나 한 번쯤은 해안도로를 따라 '오픈카'를 모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특히 저와 같이 연식이 제법 되는 MZ 초기형 모델(?)들은 오락실에서 '저 게임'을 하며 로망을 불태우신 기억이 모두 한번 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픈카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자란 수많은 아이들이 경제활동인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픈카를 길에서 찾아보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하물며 어쩌다 외제차를 본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외제차'인 경우가 태반이죠. 하물며 오픈카 중에서도 '국산 오픈카'를 만나보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 제네시스 오픈카 등장! 하지만...'최초의 국산 오픈카'는 아니다!

마치 '환상의 생물'처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국산 오픈카'! 그 와중에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X 컨버터블]의 양산이 기정 사실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공신력 있는 해외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뉴스에 의해 현대차 CCO 루크 동커볼케가 제네시스 딜러 회의에서 제네시스 엑스 컨버터블 콘셉트 양산 계획을 발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거죠. 복수의 매체와 각종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국내 최초 오픈카'가 탄생한다는 환호성이 울려퍼졌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제네시스 X 컨버터블이 '최초의 국산 오픈카' 일까요?

이미 제네시스 X보다 먼저 정식으로 양산되고 국내에 판매되었던 '국산 오픈카' 들이 존재했습니다. 흔히 '오픈카'라고 지칭하면 떠올리는 디자인을 갖춘 차량으로 한정짓더라도 3대의 '국산 오픈카'가 존재했습니다. 범위를 넓혀 차종을 가리지 않고 '오픈카'와 '국산차'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차량으로 따져본다면 무려 7종의 '국산 오픈카'가 존재했죠.

지금부터 시대를 앞서간 7대의 '국산 오픈카'의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7번째 국산 오픈카 - GM 대우 G2X : '국산 오픈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다

대한민국 역사상 7번째 '국산 오픈카'! 2007년 GM대우가 출시했던 2인승 로드스터, G2X가 그 주인공입니다. G2X는 유압 성형 공법(하이드로 포밍 공법)을 사용해 차체의 두께를 균일하게 유지하는 한편, 51:49의 균형잡힌 무게배분을 통해 2.0 터보 엔진의 출력을 살려내며 제로백 5.5초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위주의 '저렴한' 티가 나는 내장재와 더불어 수동으로 소프트탑을 열고 닫아야 하는 점 때문에 오픈카의 '갬성'을 뽐내기에는 부족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차였고, 실제로도 많은 판매량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철저한 '성능 위주'의 상품설계, 어쩐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G2X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서 '국산차'로 집계가 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GM 공장에서 생산된 '새턴 스카이'라는 차를 수입해 GM 대우의 로고를 박고 팔리던 차량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차로 말미암아 'G2X가 국산차가 맞냐'는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 하나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현행 자동차관리법상에 '국산차'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기준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죠. 이후 G2X는 '국산 스포츠카' 대우를 받으며 통계에 집계되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여론과 당사자인 GM 모두 G2X를 '수입차'로 여기는 분위기었고, 훗날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국산차]를 [국내 생산 공장을 갖추고], [국산화율 60% 이상인 차]로 정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국산차] 기준에 맞는 여섯번째 국산 오픈카는 무엇일까요?



# 6번째 국산 오픈카 - 기아 엘란 : 일본에 던진 작지만 의미있는 도전장

기아자동차가 1996년 출시한 기아 [엘란] 입니다. 엘란은 본디 영국 자동차회사 '로터스' 에서 생산하던 오픈카였습니다. 하지만 기아가 자금난에 처한 로터스로부터 생산 라인을 인수해 생산했던 차로, 당시로서는 준수했던 7초 대의 제로백과 더불어 유니크한 '팝업 헤드라이트'로 지금까지도 많은 마니아를 가지고 있는 차량입니다.

분명 독자 설계모델이 아닌 이 차량을 '국산 오픈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이유는 기아의 눈물겨운 국산화 노력 덕분입니다. 기아는 코스트다운을 위해 처절할 정도로 국산 부품을 사용했습니다. 센터페시아 부품은 물론 엔진마저도 세피아와 크레도스에 사용하는 엔진을 사용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결과 엘란은 앞서 말한 [국산차 기준]인 60%를 아득히 뛰어넘는 85%의 국산화율을 자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결사적인 코스트 다운에도 불구하고 엘란의 생산원가는 세금 등을 따져보면 4000만원이 넘는, 90년대 물가수준으로는 초월적인 가격을 자랑했습니다. 결국 기아는 애써 만든 엘란을 포기할 수 없었는지 '2750만원'이라는 제조원가도 안 나오는 가격에 파격 할인판매에 돌입했지만, 때맞춰 한국을 찾아온 IMF와 뒤따른 사치품 배격풍조에 엘란은 1000대를 간신히 넘기는 초라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단종됐습니다. 하지만 이 중 200대가 일본에 '비가토'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엘란이 세운 '일본 200대 수출'이라는 타이틀이 사뭇 초라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니셜 D'나 '완간 미드나이트'등의 일본산 공도 레이싱 만화들을 익히 알고 계실겁니다. 일본은 80년대 버블성장기를 지나며 다양한 자국산(일본산) 경형,소형 스포츠카가 연달아 출시된 상황이었고 적지 않은 '일제 오픈카'가 이른바 '명기'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죠. 거기다 90년대 자국산(일본산) 자동차 점유율이 95%가 넘어가는 '철옹성' 일본에 엘란이 200대를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은 원 제조사인 로터스의 후광에 기댔음은 분명하지만, 일본에 '기아' 라는 자동차회사의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1000대 남짓한 부진한 판매량과 함께 빠르게 단종됐지만, 그래도 엘란은 사정이 좋은 편입니다. 그나마 '네자릿수' 판매량은 기록했으니까요. 덕분에 2010년대 이후로도 시흥에 '엘란 전용 고객센터'가 운영되며 마니아 오너들의 유지관리에 한줄기 빛이 되었었죠. 하지만 다음에 소개드릴 엘란의 선배, 다섯번째 '국산 오픈카'는 그야말로 '환상의 자동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수/수출 물량을 합쳐도 전 세계적으로 단 69대만 판매되었기 때문이죠.


# 5번째 국산 오픈카 - 쌍용 칼리스타: '더블 드래곤' 금수저 자동차 덕후 두명의 환상의 콜라보

다섯번째 '국산 오픈카'의 정체는 1992년 생산된 쌍용의 '칼리스타' 입니다. 출시 이후 현재까지도 유일무이한 클래식 로드스터 스타일의 컨버터블 차량으로, 워낙 판매물량이 적었던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유명세를 얻고 있는 차량이기도 하죠. 100% 수제작 공정으로 영국의 '팬더 웨스트윈드'사에서 생산되는 차량이었지만, 쌍용이 팬더사를 인수하는데 이어 생산설비를 평택으로 이전한 덕분에, 결과론적으로 '메이드 인 평택' 제품이 되어 당대에 '국산차'로 인정받았던 차량이기도 하죠.

'오픈카'인 점을 제외하고서라도, 개성넘치는 클래식 로드스터 차량이 국내에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차는 두 명의 더블드래곤, '금수저 차덕후' 두 명의 환상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차이기 때문이죠. 김영철 전 진도그룹 부회장(사진 좌측)과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사진 우측)이 그 주인공입니다.

김영철 전 회장은 1980년 영국 출장 도중, '팬더 웨스트윈드'사의 '리마'라는 차량을 보고 팬더사를 인수했습니다. 이후 김영철 회장은 '팬더 리마'의 디자인을 다듬고 부품 상당수를 '한국산 부품'으로 교체해 비용을 절감한 '팬더 칼리스타'를 출시했지만 김영철 체제의 팬더 역시 또다시 자금난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김영철 회장에게 손을 내민 것이 평소 같이 '자동차 동호회' 활동을 하며 알고 지내던 지인, 쌍용자동차의 김석원 회장이었죠. 1987년 김석원 회장은 김영철 회장의 팬더사를 인수해 '쌍용 칼리스타' 출시를 준비해 92년 정식 판매에 나서게 됩니다. 두 [금수저 차덕후]들의 범상치 않았던 '덕력'은 아래 [차부심] 영상 버전에서 더 자세히 들어보실수 있게 준비해 두었습니다. (↓클릭 시 재생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독보적인 존재감만큼이나 독보적인 가격이었습니다. 위 사진은 MBC 드라마 '숙희'에서 재벌 영애 역으로 나오던 '심은하' 씨가 칼리스타를 모는 장면인데, 92년 가격으로 3천만원이 넘어갔던 칼리스타의 가격은 그야말로 '재벌집 영애'가 아니고서야 좀처럼 엄두를 내기 힘든 가격이었습니다. 결국 수출물량까지 포함해서 단 69대만 생산되고 단종된 칼리스타는 오히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국내외 자동차 수집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죠

그리고 이 '칼리스타' 까지가 이른바 '오픈카'라고 하면 떠오르는 디자인을 갖고 있던 '국산 오픈카' 였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는 예상하신 분들도 상당히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차종'을 떠나 지붕을 열고 '오픈 에어링'이 가능한 '국산차'(국산화율 60% 이상인 자동차)로 인식의 폭을 넓힌다면? '국산 오픈카'는 4종류나 더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는 전고가 2M에 달하면서도 합법적으로 '오픈 에어링'을 즐길수 있는 '괴물 오픈카'도 존재했죠. 그 정체는...! 조금 더 아래에 나올 '두번째 국산 오픈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순서대로 남은 국산 오픈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4번째 국산 오픈카 - 기아(아시아자동차) 록스타 : 군대 물 덜 빠진 민간인(진)

대한민국 역사상 네번째 국산 오픈카는 1990년 출시된 기아 '록스타' 였습니다. 80년대 제식 군용 지프였던 K-111을 베이스로, 기아의 자회사인 아시아자동차가 생산한 지프형 자동차였죠. 비록 스포츠카는 아니었지만 , 흔히 '호루'라고 불리는 소프트탑을 걷어내면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지프'가 베이스가 된 만큼 '지프 랭글러'와도 몇가지 유사점이 있었는데요, '지프 랭글러' 처럼 전면 윈드실드를 접어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는 진정한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자동차였습니다. 비록 고무 몰딩 마감부분의 구조 문제로, 한번 윈드실드를 접어버린 뒤에는 비가 줄줄 새는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해야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록스타는 1990년 출시된 이후, 10년 여의 시간동안 외면받으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록스타가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자동차였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록스타는 1983년 '랜드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첫 시판 예정 모델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기아자동차는 전두환 정부로부터 승용차 생산을 금지당했던 시기였고, '지프차'는 이러한 승용차 출시 금지 조치를 우회하려는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결국 그 뒤로 '록스타'는 정식 출시일을 미루고 미룬 끝에, 1990년에서야 가까스로 출시하게됩니다. 문제는 7년여 간의 숙성이 무색하게, 일반 '민간인'들이 타고 다니이겐 '군용 감성'이 너무 충만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록스타의 2열은 이 차의 '군인정신'을 표현하는 소리없는 아우성과도 같았습니다. 록스타 2열 시트는 군용 지프의 적재함 공간에 '90도 직각 시트'가 들어가있는 각 잡힌 모습을 자랑하는데요, 지금은 물론 90년대에도 경악스러운 요소였습니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군용 타이어 대신 오프로드의 멋이 느껴지는 '광폭 타이어'를 채택한 건 좋았지만,기본형 모델에는 파워스티어링조차 존재하지 않았기에 차량 조향을 위해서는 운전자의 완력이 필수적인, '강한 자만이 탈 수 있는 차' 였죠.
특히 주력 모델이었던 디젤 파워트레인은 고속주행시 엔진 실린더 헤드가 깨질 수 있더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았던 록스타는  타 경쟁사들의 동 시기 찦차(로 여겨지던 갤로퍼, 코란도 등) 과는 달리 '리즈시절'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했습니다. 그런데 '자회사'아시아자동차가 이런 오픈카(?)를 만들 동안 '모회사' 기아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 3번째 국산 오픈카 - 기아 프라이드 캔버스탑 : 80년대 등짝스매싱 소환기

'모회사' 기아 또한 오픈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세번째 국산 오픈카, 1989년 출시한 '프라이드 컨버터블' 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80년대 초, 기아는 전두환 정권의 '자동차 공업 합리화조치'로 승용차의 국내 판매가 금지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해법으로 기아는 '수출'을 위한 소형 승용차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일본 마쓰다가 설계, 기아가 생산, 미국의 포드가 판매를 맡은 3국 연합의 '1000cc미만 리터카 개발 프로젝트' 일명 '메이플 프로젝트'로 탄생한 프라이드가 그 주인공이었죠. 개발 초기부터 '내수용'이 아닌 수출을 염두에 둔 모델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해외 시장에서의 선호도가 높은 '컨버터블' 캔버스탑 모델 또한 개발되었던 겁니다. 거기다가 무려 '전동식' 캔버스탑을 채용하고 있었죠.

기아 프라이드는 해외에서는 '포드 페스티바'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고, 해외에서 캔버스탑 모델은 90년대 중반 이후로도 꾸준히 판매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 프라이드 캔버스탑 모델이 출시 초기부터 단종될때까지, 실물로 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환상의 자동차 취급을 받고 있죠. 프라이드가 '국민차' 소리를 들었던 걸 감안하면, 캔버스탑 모델도 어느 정도는 인기가 있었을 법도 한데 어째서까지 이렇게 판매가 부진했던걸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돈씨'

프라이드 출시 당시, '캔버스탑' 옵션을 장착할 수 있는 프라이드 'DM형 3도어' 트림의 가격은 438만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캔버스탑 옵션 가격이 거의 100만원에 달했다는 거죠. 자동차 값의 25% 수준이었습니다. 프라이드 DM형 3도어에 캔버스탑을 장착하면 대략 540여 만원이었는데, 그 돈에 20만원 정도만 더 보태면 그 이름도 유명한 현대의 중형차, '스텔라'를 살 수 있었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극소수 리스토어된 프라이드 소프트탑 모델이 목격되면 온갖 자동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 차를 사서 집에 들어간 남편의 등짝이 불꽃 스매싱이 작렬하는 화재현장이 되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드 캔버스탑은 출시 30년을 넘긴 지금까지도 강렬한 개성을 뽐내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작은 국산 오픈카였죠. 하지만 기아는 반대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고 2M 짜리 오픈카 또한 개발했었습니다. 흔히 '남자의 로망'이라고 불리는 G바겐 만큼이나 높은 전고를 자랑하는 '국산 오픈카'가 있었다는 얘기죠. 그 정체는...!


# 2번째 국산 오픈카 - 기아 세레스 : 정통 미드쉽 후륜구동(?) 컨버터블

정통 미드십 후륜구동 컨버터블 '트럭', 기아가 1983년 출시한 '세레스'입니다. 농촌에서의 다목적 차량으로 개발한 세레스 초기형은 사실 '오픈 에어링'을 위한 컨버터블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제조 원가'를 줄이기 위해 철판보다 싼 캔버스로 지붕을 마감한 자동차였죠. 과수원 등에서 이 차의 캔버스탑을 벗겨내 높이 달린 과일을 따서 바로 짐칸에 싣는 용도로 사용하라는 '큰 그림'이 있었다고는 합니다만, 당시 초기형 세레스는 4륜구동이 지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농가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차를 '오픈카'라고 감히 주장하게 된 것은 1열 때문이 아닌 '2열' 좌석 때문입니다. 얼핏 보면 싱글캡 구조로 보이는 세레스는 사실 무려 '6인승' 자동차입니다. 트럭 짐칸에 빗물을 막아줄 수 있는 접이식 '호루'와 함께, 3인승 보조좌석을 채택한거죠.

단, 이 당시에도 당연히 트럭 짐칸에 사람이 탑승하는 것은 불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레스는 이 보조좌석에도 '안전벨트'를 설치하면서 법적으로 '3~6인승 자동차'로 인정받았습니다.

즉, 세레스는 2열에서 합법적으로 '오픈 에어링'을 즐길 수 있었던 훌륭(?)한 컨버터블 자동차였던 겁니다. 다만 KTX 역방항처럼 승객의 절반만 '거꾸로' 오픈 에어링을 할 수 있는 차라는 한계가 존재했죠.

하지만 이 한계를 초월해서, 전 좌석 오픈 에어링이 가능한 '최초의 국산 오픈카'가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려 2000년대에도 이 '대한민국 최초 국산 오픈카'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다는 사실이죠.


# 최초의 국산 오픈카 - 쌍용 코란도 (거화 신진 지프 4기) : 부활을 꿈꾸는 원조 국산 오픈카

최초의 국산 오픈카(의 정의에 부합하는 자동차)! 1980년 출시한 3기 신진 디젤 지프, 훗날 쌍용의 '코란도' 소프트탑 모델입니다. '3기'라는 점에서 눈치채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차량은 신진이 라이센스 생산하던 미국 AMC사의 '지프'의 '3세대' 모델이었습니다. 문제는 1세대, 2세대 신진 지프는 '소프트탑'을 사용해 '지붕을 열고 닫히는' 컨버터블 자동차의 요건은 충족했지만, 부품 하나하나를 AMC가 지정하는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 말 그대로 '라이센스 복제품'이었고 국산화율이 낮아 '국산차(국산화율 60% 이상)'라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AMC와 신진자동차 사이의 갈등이 '신진 지프' 국산화의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AMC사는 기름 잡아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3800cc 가솔린 엔진을 사용할 것을 강제했는데, 워낙에 연비가 좋지 않았던 탓에 국내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며 결국 AMC사가 라이센스 갱신을 거부하자, 신진자동차는 연비가 좋은 '디젤 엔진'을 개발해 탑재한 '신진 디젤 지프'를 만들어 국산화율 80%를 돌파해 '국산차'의 기준을 맞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지프'라이센스 갱신이 거절된 상황에서, 상표권 사용 기한이 임박해오자 신진자동차는 '거화'로 사명을 변경하고 이 3기 디젤 지프의 '별칭'을 지어 판매합니다.

KOREAN CAN DO - 일명 '코란도' 였습니다.


그 뒤로 쌍용이 거화자동차를 인수한 뒤로는 본격적으로 '코란도'라는 모델명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전 좌석 오픈에어링이 가능한 소프트탑 모델, 1985년식 '쌍용 코란도 4'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소프트탑'은 오랜 시간동안 '코란도'의 정체성이었습니다.

1996년에 출시된 '뉴 코란도' 역시 소프트탑 모델을 생산하며 '대학생이 갖고 싶은 차' 1위를 차지했고, 밀레니엄 이후인 2005년까지 코란도 소프트탑 모델을 생산하며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코란도 소프트탑 모델 역시 일반 하드탑 모델보다 15% 가까이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많은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2005년을 끝으로 '코란도'는 살아남았지만, '최초의 국산 오픈카'였던 '코란도 소프트탑' 모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오픈카'인 '코란도 소프트탑'의 명맥이 계승될 가능성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KG모빌리티의 'KR-10'으로 말이죠. KG모빌리티로 사명을 변경하기 전, 쌍용자동차는 차기 전략 차종 J-100과 KR-10의 스케치 이미지를 공개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KR-10은 '소프트탑'이 그려져 있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죠. 물론 올 상반기 킨텍스에서 열렸던 '2023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공개된 KR-10의 목업 모델은 '하드탑' 모델이긴 했지만, 여전히 KR-10이 '소프트탑'을 채용할 여지는 남아있다고 봅니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이강 전 쌍용자동차 상무는 KR-10에 대해 '무조건 코란도'로 출시해야 된다고 강변했다고 전해집니다. 과거 '소프트탑'이 코란도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게 여져겼던 점과, J-100이 초기 스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으로 '토레스'로 출시된 점을 감안할 때, KR-10역시 '코란도'라는 이름과 함께 초기 스케치에 그려져 있던 '소프트탑'을 정식 채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과연 우리는 다시한번 최초의 국산 오픈카, '코란도 소프트탑'의 부활을 볼 수 있을까요? 뼛속까지 씹어먹는 자동차 이야기, 엔카매거진의 [차부심] 열세번째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국산 오픈카' 만들었던 회사들의 소름돋는 공통점...? 영상으로 전하는 못다한 이야기! '잊혀진 국산 오픈카 이야기' 풀버전, 영상으로 보러가기! (클릭하시면 재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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