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 역전 불가 점수서 5점 연속… 고열 속 안세영, 싱가포르 3번째 제패

3세트 16-19. 두 점만 내주면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 안세영(24·삼성생명)은 다섯 점을 내리 뽑아냈다.

세계 랭킹 1위 안세영이 5월 31일 싱가포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6 BWF 월드투어 싱가포르 오픈(슈퍼 750)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 3위 야마구치 아카네(일본)를 2-1(21-11, 17-21, 21-19)로 제압하며 이 대회 통산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23년, 2024년에 이어 세 번 정상에 오른 것이다. 경기 시간은 1시간 5분. 숫자만 보면 그리 길지 않지만, 파이널 게임의 밀도는 수치 이상이었다. 특히 3세트 후반부의 5점 연속 역전 장면은 이 선수가 왜 현재 세계 배드민턴의 정점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결승전을 이해하려면 하루 전 준결승으로 돌아가야 한다.

30일 준결승에서 안세영은 중국의 천위페이(4위)와 맞붙었다. 경기 도중 심각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코트 위에서 잠시 경기를 중단하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그 상태에서도 2-1(20-22, 21-12, 21-15) 역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결승 직전까지 안세영은 심한 두통과 고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컨디션 이슈는 결승 코트 위에서도 눈에 띄었다. 경기 초반 안세영의 몸은 무거웠다. 야마구치에게 주도권을 내준 채 2-5까지 뒤지며 불안한 출발을 했고, 코트 바닥에 누운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도 카메라에 잡혔다. 2세트에서는 누적 피로와 고열의 영향인지 서브 미스까지 범했다.

그런데도 상대는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야마구치 아카네는 이번 결승 이전까지 안세영과의 맞대결에서 15승 17패를 기록하고 있던 이름값 있는 실력자다. 두 선수는 총 32번 맞붙었으며, 안세영 쪽에서 최근 3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수원 코리아 오픈 결승에서 안세영이 0-2(18-21, 13-21)로 완패한 게 현재 연패의 시작점이었다. 야마구치 입장에서는 그 이후의 설욕전이기도 했다.

시즌 흐름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안세영은 올해 1월 말레이시아 오픈과 인도 오픈을 잇달아 제패했고, 지난달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에 이어 우버컵(단체전) 정상에도 섰다. 이번 싱가포르 오픈은 시즌 다섯 번째 국제대회 정상이자, 개인전 기준으로는 네 번째 우승이다. 유일한 패배는 3월 전영오픈으로, 세계 2위 왕즈이(중국)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문 것이 전부다.

1세트는 안세영의 압도적인 페이스였다. 초반 2-5로 밀리던 흐름을 뒤집어 21-11로 마무리했다. 상대의 실책을 영리하게 유도한 덕분이었다.

2세트는 달랐다. 안세영이 백핸드 드롭샷으로 7-2까지 치고 나가며 41회 랠리 끝에 8-2로 달아날 때만 해도 이 게임도 쉽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야마구치는 차분하게 따라붙었다. 코트 구석을 찌르는 언더 클리어 포인트로 12-12 동점을 만든 야마구치는 포핸드 드롭샷으로 16-15 역전에 성공하더니 결국 2세트를 21-17로 가져갔다. 스코어는 1-1.

파이널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흐름이었다. 야마구치의 백핸드 푸시로 4-3, 안세영의 3구 스매싱으로 9-9, 안세영이 먼저 인터벌을 11-10으로 챙겼지만 야마구치는 다시 뒤집었다. 점프 스매싱으로 15-14, 이후 안세영의 실수까지 더해 16-14로 달아났다. 야마구치의 백핸드 크로스 포인트로 19-16. 승부는 야마구치 쪽으로 기울어 보였다.

안세영은 네트 위 연속 공격으로 17-19로 따라붙은 뒤, 반 박자 빠른 점프 스매싱으로 18-19, 포핸드 크로스 포인트로 19-19 동점을 만들었다. 곧바로 원 스텝 점프 스매싱으로 20-19 매치 포인트를 만들었고, 34회 랠리 끝에 야마구치의 범실을 유도하며 21-19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16-19에서 21-19, 다섯 점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동안 야마구치는 점수 하나를 더하지 못했다.

신체 한계를 안고 치른 역전이었다는 사실이 이 결과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지만, 더 주목할 지점은 따로 있다.

안세영이 세트 막판 5연속 득점을 가능하게 한 것은 체력이나 기술만이 아니었다. 19-16으로 뒤진 시점부터 그의 선택은 일관되게 '반 박자 빠른 공격'이었다. 야마구치가 수비 위치를 잡기 전에 먼저 셔틀콕을 떨어뜨리거나, 길어지는 랠리를 자신에게 유리한 각도로 끊어내는 방식이었다. 고열과 두통이 있는 선수가 장기 랠리보다 빠른 공격을 선택한 것은 컨디션에 맞춘 현실적 판단이기도 했다.

야마구치 입장에서 보면, 서브 2점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점수를 하나도 추가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심리적 경직의 결과다. 오히려 앞서는 상황이 흐름을 끊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매치 포인트를 앞두고 찬스를 지키려는 쪽과, 더 잃을 것이 없는 쪽의 심리 차이가 스코어에 반영된 셈이다.

시즌 전체 맥락에서 보면, 안세영의 2026년은 현재까지 거의 흠결이 없다. 개인전 5번 출전에 4승 1준우승. 그 1패도 중국의 왕즈이에게 내준 것으로, 유일하게 현재 세계 랭킹 상위권에서 위협적인 선수로 꼽히는 상대다. BWF 월드투어 기준으로 이번이 슈퍼 750 시리즈 두 번째 우승이며, 앞서 슈퍼 1000 시리즈 우승도 한 차례 있다. 배드민턴 팬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경기 이후 "역대 배드민턴 여제와의 비교" 논의가 다시 떠오를 분위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결승 무대에서 역전 우승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단순한 투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경기 전략을 어떻게 조정하는지, 클러치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안세영이 체계적으로 훈련해왔다는 근거로 읽힌다.

싱가포르 우승을 확정 지은 안세영은 곧바로 자카르타로 이동한다. 6월 2일 개막하는 인도네시아 오픈은 슈퍼 1000 시리즈다. 싱가포르 오픈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대회인 만큼 포인트와 상금 모두 더 크고, 출전 선수의 수준도 높아진다. 올해 전영오픈에서 패한 왕즈이, 결승 상대였던 야마구치, 준결승에서 물리친 천위페이 등이 모두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고열과 두통을 안고 65분을 뛴 직후 이틀 만에 슈퍼 1000 무대에 서야 한다는 점은 체력 관리 측면에서 분명한 변수다. 2주 연속 우승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체력 부담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지는 안세영 본인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