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야식의 꽃이 된 ‘한국 음식’

족발, 피난민 음식에서 야식의 강자로
족발 자료사진. / Hyung min Choi-shutterstock.com

배달 앱을 열면 상위권에 늘 있는 메뉴가 있다. 늦은 밤이면 생각나는 음식, 족발이다. 불족발처럼 자극적인 메뉴부터 담백한 냉채족발까지 선택 폭도 넓다. 술안주로, 야식으로, 회식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음식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6·25전쟁이라는 거대한 혼란 속, 고향을 등지고 내려온 실향민들의 생계수단으로 자리 잡은 음식이었다. 오늘날 서울 장충동 족발 골목의 시작도 바로 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난민촌에서 삶아 팔던 족발은 세월이 흐르며 지금의 형태로 굳어졌다. 고유의 향을 줄이고 입맛에 맞게 바뀌면서, 이제는 누구나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장충동 골목에서 시작된 족발의 역사

족발 자료사진. / leejg1991-shutterstock.com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피난민이 서울로 향했다. 그중 상당수는 평안도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고, 중구 장충동에 모여들었다. 이 지역에는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었고, 피난민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피난민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선택한 것은 음식장사였다.

평안도 출신 피난민들은 익숙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추운 지방에서 말려두고 먹던 돼지고기의 기억은, 이곳에서 삶은 돼지족이라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족발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처음엔 시장에서 삶아낸 돼지족을 팔기 시작했고, 이 음식은 조금씩 입소문을 탔다.

시간이 흐르며 장충동 족발은 점점 자리를 잡았다. 입맛에 맞게 조리법을 바꾸고, 간장을 사용해 짙은 색과 감칠맛을 더했다. 지금도 장충동에는 '평남할머니집', '평남원조족발'처럼 이북 지역 이름이 붙은 가게들이 여럿 있다. 이 지역이 족발의 원조로 불리는 이유다.

중국 장육에서 족발로… 중국 음식에서 한국 음식으로

한국 야식 대표메뉴 족발과 보쌈. / AmandaKimm-shutterstock.com

족발의 초기 형태는 중국 요리인 장육과 유사한 점이 많다. 장육은 돼지고기를 진한 간장과 팔각, 계피 같은 향신료에 조려 만든 중국 전통 요리다. 족발도 처음엔 팔각향이 강하게 나는 방식으로 조리됐다. 지금보다 훨씬 자극적인 향이 났고, 진한 색을 띠었다. 특히 1980년대까지만 해도 팔각향이 강한 족발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중국 요리에서 사용되는 노두유는 간장보다 진하고 색이 깊다. 이 간장을 사용하면 족발의 색이 어둡고 윤기가 돈다. 당시 족발은 이 노두유의 영향으로 색감이 진했고, 향신료 덕분에 향이 강했다. 이는 장육의 특징과 닮아 있다.

이북 지역은 중국과 인접해 음식 문화의 영향을 받기 쉬웠다. 족발 역시 그런 흐름 속에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입맛은 향신료에 민감했다. 시간이 지나며 향은 줄어들고, 감칠맛 중심의 간장 양념이 주가 됐다. 족발은 장육에서 시작했지만, 한국화된 방식으로 변형되며 고유의 스타일을 갖게 됐다.

족발의 진화, 불족발부터 족장피까지

냉족발 자료사진. / leejg1991-shutterstock.com

족발은 한 가지 형태로 머물지 않았다. 냉채족발, 불족발, 오향족발처럼 종류가 늘어났다. 냉채족발은 삶은 족발을 차게 식혀 겨자소스를 곁들인 방식이다. 불족발은 매운 양념에 볶아낸 형태다. 입맛이 자극적으로 바뀌면서 불족발의 인기도 높아졌다.

오향족발은 팔각, 정향, 계피, 회향, 진피 같은 향신료를 넣어 만든 방식이다. 향이 강하지만, 특정 취향을 가진 이들에겐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족발의 이 같은 다양성은 식재료 자체가 가진 가능성 때문이다. 부드러운 조직, 쫄깃한 식감, 두툼한 크기 등 조리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내기 쉽다.

최근에는 족발과 양장피를 함께 파는 곳이 늘었다. 둘 다 인기 있는 배달 음식으로, 같이 즐기기 좋은 구성이다. 이 조합은 ‘족장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신조어까지 등장한 걸 보면 족발은 여전히 변화 중이다.

배달앱의 활성화도 족발의 모습에 영향을 줬다. 빠르게 조리하고 포장하기 쉬운 음식, 다양한 양념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메뉴라는 점에서 족발은 배달문화에 잘 어울린다. 단맛을 강화하거나, 치즈를 곁들이는 등 새로운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족발과 닮은 세계 음식들

족발과 비슷한 음식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는 테비치소바라는 국물 요리가 있다. 삶은 돼지족을 국수와 함께 먹는 방식이다. 독일에는 아이스바인과 슈바인스학세가 있다. 푹 삶은 돼지족을 오븐에 구워 겉을 바삭하게 만든 요리다.

체코에는 꼴레뇨, 오스트리아에는 슈텔체, 폴란드에는 골롱카가 있다. 이들 모두 족발과 유사한 조리법을 사용한다. 아일랜드의 크루빈스는 삶은 돼지족을 튀겨낸 음식이다. 태국의 카오카무는 돼지족을 간장소스에 조려 밥과 함께 내는 요리다.

돼지족은 지방과 콜라겐이 풍부해 조리만 잘하면 어떤 식문화에도 어울리는 식재료다. 족발은 그 대표적인 예다. 한국에서는 전쟁 이후의 현실과 사람들의 기억이 이 음식을 만들었다. 이제는 밤이 되면 떠오르는 메뉴, 전국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족발은 그렇게 시대와 환경을 넘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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