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영 “종교는 믿음보다 이해의 대상”…갈등의 시대, 종교를 다시 묻다

곽성일 기자 2026. 1. 1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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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종교학 강의’에서 ‘종교 문해력’ 강조, 표층 종교의 위험과 심층 종교의 의미 짚어
다종교·무종교 사회 한국 진단하며 배제 아닌 통합, 성숙한 종교의 조건 제시
▲ 종교학 강의 표지.연합

정교(政敎) 유착 논란이 연일 사회면을 채우는 요즘,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위안과 희망을 건네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진원지가 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종교의 역할과 의미를 다시 묻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 정면으로 답하는 책이 나왔다.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가 펴낸 신간 종교학 강의 : 더 나은 종교 이해를 위하여(북튜브)다. 성 교수는 이 책에서 종교를 "양날의 칼"에 비유하며, 종교가 개인과 사회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는 이유를 차분히 짚어낸다.

그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종교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종교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성숙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성 교수는 "종교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교를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책은 종교의 정의와 기원에서 출발해 각 종교의 역사와 사상,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강의 형식으로 풀어간다. 특히 성 교수는 '종교 문해력'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종교 문해력이란 특정 종교를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가 인간과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는 이 능력이 개인의 삶의 안정뿐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에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성 교수는 종교를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로 나눈다. 교리와 의례, 소속과 정체성에 머무는 표층 종교는 스스로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기 쉽고 타인에게 자신의 믿음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반면 심층 종교는 오히려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며 인간 내면의 변화와 성숙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 현상의 상당수는 심층으로 나아가지 못한 표층 종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며 "자기 종교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종교는 위안의 언어를 잃고 배제의 도구로 변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를 두고 성 교수는 "유례를 찾기 힘든 다종교 사회이자, 동시에 무종교인이 과반을 넘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불교·천주교·개신교가 큰 충돌 없이 공존해 왔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제도 종교에서 이탈하는 흐름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조직화된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며 "기존 종교가 표층 차원에 머무른다면 그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종교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성 교수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근원적인 질문, 혹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종교적 사유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말한다. 제도 종교는 멀어지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오히려 늘고 있으며 이는 깊은 차원의 종교성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앞으로 살아남을 종교의 조건으로 △현실을 인정하는 태도 △개인의 구체적 삶과 분리되지 않는 실천 △자율성과 지성을 존중하는 구조 △배제보다 통합을 지향하는 관점을 꼽는다. 종교가 사회의 중심이 아니라 인간 삶의 깊이를 비추는 하나의 언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뜻이다.

▲ 책 '종교학 강의' 펴낸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연합

행정고시 수석 합격 후 문화체육관광부 관료의 길을 걷다 종교학자로 전향한 성 교수의 이력은 여전히 낯설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는 이 같은 시선 자체가 종교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한다. 유신론자이지만 특정 종교의 신자는 아니라는 그는 "종교를 반지성의 산물로 폄하하지도, 맹목적으로 숭배하지도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성 교수는 "종교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라며 "이 책이 신앙의 권유가 아니라, 종교와 인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