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때론 망한다 … 내 돈 지키려면 쪼개고 또 쪼개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후 미국 정부가 예금 전액 보호 대책을 시행하면서 한국에서도 예금 보호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신의 예금은 안전하다"고 선언했고, 미국은 예금 보호 한도가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라고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어느 정도까지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예금보험제도'란 금융회사가 영업정지나 파산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를 대신해 예금 등을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지급 불능 사태를 방지함으로써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다.
예금보험은 '동일한 종류의 위험을 가진 사람들이 평소 기금을 적립해 사고에 대비한다'는 보험의 원리를 이용하는 제도다. 예보가 평상시에 금융회사로부터 예금보험료를 받아 예금보험기금을 적립한 후 금융회사가 예금 지급이 불가능해질 때 그 회사를 대신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원리다. 공적보험이기 때문에 예금보험료만으로는 재원이 부족할 경우 예보가 직접 채권(예금보험기금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성한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예보는 1995년 예금자보호법이 제정되고 1996년 이 법에 따라 설립됐다. 은행권 중심에서 이후 외환위기로 1998년 4월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등 관련 기금이 예보로 통합됐다. 이에 따라 예금보험제도는 업권별로 예보에 집중되는 시스템으로 재편됐다. 예보는 예금 보호 외에 금융회사 리스크 감시, 부실 금융회사 정리, 부실 관련자에 대한 부실 책임 조사와 손해배상 청구 등 업무를 하는 곳이다.
보호 대상 금융회사(부보금융회사)는 은행, 생명·손해보험사, 증권사를 비롯한 투자매매업자·투자중개업자, 종합금융회사, 상호저축은행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287개 금융회사가 해당된다. 은행 54곳, 증권사 등 금융투자사 107곳, 보험회사 45곳, 저축은행 80곳, 종금사 1곳이다. NH농협은행,Sh수협은행과 외국은행 국내 지점도 보호 대상이다.
다만 신협, 새마을금고, 지역농협·수협, 산림조합 등은 개별법에 따라 각 업권 중앙회가 예금자를 보호한다. 우체국 예금은 정부가 전액 보호해준다. 자세한 금융회사 목록은 예보 홈페이지(www.kdic.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예금 보호 한도는 관련법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보호예금 규모 등을 고려해 보험금 한도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보호 한도는 원리금(원금과 이자를 합친 돈) 기준으로 5000만원(외화예금 포함)이다. 예·적금처럼 원금 보장 성격을 가진 상품을 보호하며 운용 실적에 따라 지급액이 변동되는 펀드,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은 비보호 상품이다.
5000만원은 예금의 종류별 또는 지점별 보호 금액이 아니라 동일한 금융회사 내에서 예금자 1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총 금액이다. 여기서 예금자 1인은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대상이다. 파산한 금융회사의 예금자가 해당 회사에 대출이 있는 경우 예금에서 대출을 먼저 상환시키고 남은 액수를 기준으로 보호한다.
보호 한도 금액은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에서 정한다. 이 때문에 예보 설립 이후 몇 차례 조정이 있었다.
예금 보호 한도는 처음엔 1인당 2000만원이었다. 이후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금융거래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200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장했다. 다만 부실 금융회사가 고금리로 예금을 무리하게 유치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1998년 8월 이후 가입한 예금에 대해 원금 2000만원 이하 시 원리금 2000만원까지 보호, 원금 2000만원 초과 시 원금만 전액 보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2001년 1월부터 전액보호제도에서 부분보호제도로 환원했다. 대신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보호 한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렸고 23년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015년 예금 보호 대상 상품으로 운용되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기존 보호 한도 5000만원과 별도로 5000만원까지 보호되는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예금 보호 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001년과 비교해 2021년 기준 1인당 GDP는 2.7배, 부보예금액은 5배 증가했다는 점이 핵심 근거다. 국가별 1인당 GDP 대비 보호 한도 비율도 한국은 1.25배다. 미국 3.6배, 영국 2.56배, 독일 2.35배, 일본 2.27배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예보는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 금융업권 등과 함께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켜 예금보험제도 전반의 개편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오는 8월까지는 결과물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재훈 예보 사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보호 한도에 대해 "올려야 한다, 내려야 한다,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직 없고 TF에서 논의 중"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국회에도 예금 보호 한도 상향과 관련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시행령으로 정하는 보호 한도를 법률로 규정하고 최소 1억원 이상 범위에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았다. 신 의원은 "2001년과 비교해 1인당 GDP는 3배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5년마다 예금보험금 한도를 결정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금융당국에선 현재 법 테두리 내에서도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도가 시행령에 규정돼 있어 비상 상황 때는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한도를 제한 없이 풀 수 있는 근거가 갖춰져 있다는 의미다. 다만 당국에선 예금 전액 보호와 같은 파격적 개편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확실히 긋는 분위기다. 예금보험제도 근간을 흔들 수 있고, 도덕적 해이 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권 일각에선 미국에서 예금 전액 보호를 해준 것이 결국은 도덕적 해이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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