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살과 병살타, 더블 플레이 그리고 더블 아웃.

저는 4월 23일, 기아와 삼성의 경기를 중계방송했습니다.
3회말, 선두타자 3번 타자 구자욱이 우익수 앞 1루타로 출루했습니다.
무사 주자는 1루, 이어지는 타석에서 4번 타자 르윈 디아즈는 기아의 선발 투수 김도현의 초구를 강하게 당겨 쳤습니다.
매우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가 기아의 1루수 패트릭 위즈덤 쪽을 향했습니다.
위즈덤은 미트로 공을 받다가 볼 스피드가 너무 강해서였을지 한 번 떨어뜨렸다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2루에 송구했습니다.
1루 주자였던 구자욱이 2루에서 포스아웃이 됐고, 유격수 박찬호는 다시 1루 위치에서 송구를 받기 위해 자리 잡고 있던 위즈덤에게 공을 던졌습니다. 투아웃. 기아 타이거즈가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낸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이렇게 콜 했습니다.

르윈 디아즈 4번 타자.
강한 타구가 라인 드라이브 처리되지 않았고,
다시 집어 들어서
2루 거쳐, 1루에.
병살타.

이 중계방송 멘트에서 틀린 점이 뭔지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그렇다면 그분은 야구기록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분일 겁니다.
제가 요즘 이 영상을 야구 관련 다양한 일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이 영상의 '멘트 중에 틀린 게 뭐가 있는지'를 물어봤을 때 제대로 대답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답을 공개하겠습니다.
'병살타'가 틀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울합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앞으로는 이런 상황을 놓고 병살타라고 말을 했을 때, 틀린 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삼성 라이온즈 르윈 디아즈 <사진 OSEN>

대구 중계방송이 끝나고, 한 팬이 제게 보내주신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제 '병살타'가 틀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에 그 메시지를 보고 저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냥 넘기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KBO 공식 기록을 검색해 봤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한눈에 요약하는 '경기 상세 정보'의 병살타에 디아즈의 이름이 없는 겁니다.
그 경기의 병살타 기록은 2회에 위즈덤이 때려냈던 게 전부였습니다.
3회 문자 중계의 디아즈 타석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정말 병살타가 아니었습니다. 병살은 맞는데 병살타는 아니었던 겁니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하고 광주에서 중계가 있었던 4월 24일 경기 전,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의 KBO 기록원실을 찾아서 KBO기록위원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상황 설명과 영상을 보여준 후 나눈 대화입니다.
"이게 병살타가 아닌가요?"
"네. 지금 디아즈의 타구는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였잖아요. 라인 드라이브나 타구는 병살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타구의 결과가 '땅볼'로 표기되는데 이게 병살타가 아니라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의 경우는 고의낙구의 가능성도 있고, 주자의 움직임도 일반적인 땅볼 때의 주루와는 달라졌을 수도 있거든요."
"그럼 타자의 타구로 병살이 됐는데, 병살타가 아니라는 건가요?"
"예. 야구 규칙이 그렇습니다. 병살타가 아닙니다."
이렇게 글로 적었을 때는 양측이 날카롭게 대립하면서 나눈 대화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 웃으면서 모르는 걸 물어보고, 몰랐던 걸 알려준 대화였습니다.

3회말 무사 주자 1루 디아즈 타석 공식 기록 <KBO STATS 화면 캡쳐>

야구 규칙을 찾아봤습니다.
'병살'의 정의는 2025 공식야구규칙, 용어의 정의 23항에 명확하게 나와있습니다.

23. DOUBLE PLAY (더블 플레이·병살)
수비팀이 연결된 동작으로 2명의 공격팀 선수를 아웃시킨 플레이를 말한다. 그러나 2명을 아웃시키는 사이 실책이 끼어 있으면 더블 플레이가 아니다.

병살의 정의로는 디아즈의 타구가 왜 병살타가 아닌지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신 이 항목에서 다른 부분보다 제가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더블 플레이=병살'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 또 하겠습니다.

디아즈의 타구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9.00 공식기록원, 9.02 공식기록지 '17항 포스 더블 플레이(force double play) 또는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reverse force double play)가 되도록 땅볼을 친 타자의 이름'의 주석 1.

[주1] (전략) 그리고 타자가 친 플라이 볼 또는 라인 드라이브를 야수가 떨어뜨리고 (고의낙구가 아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병살을 하여도 병살타로는 기록하지 않는다.

네. 너무 명확하게 제가 중계했던 바로 그 상황이더군요. 규칙이 이랬습니다.
공식야구규칙은 참 신비롭습니다. 저는 일 년에 두 번(시즌 개막 직전, 포스트시즌 시작 직전)씩 꼭 통독을 하는데도 매번 볼 때마다 모르는 게 나오고, 중계하면서도 처음 보는 것 같은 내용이 나오니까요.

규칙이 이라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억울합니다.

위 상황도 그냥 병살타로 해줬으면 좋겠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라인 드라이브 아웃에서 아웃 카운트 두 개가 올라가는 상황이 나와도 그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그냥 병살타로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위에 살짝 운을 띄웠다시피 규칙집에서 병살=더블 플레이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살이 됐으면 그 병살이 나온 타구는 병살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요?

아웃카운트가 두 개가 잡힐 때, 우리나라에서는 땅볼에 따른 병살이나 역병살이 아닌 경우 '더블 아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타자의 라인 드라이브 시, 주자가 귀루하지 못해서 아웃카운트가 두 개가 잡힐 때입니다. 더블 아웃은 잘못된 용어인데도 널리 쓰입니다.

저는 이 원인이 야구규칙에서 '병살타'의 범위를 너무 좁게 규정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병살인데 병살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병살에도 다른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선택된 용어가 재플리시(Japlish) '따블 아우토'에서 온 '더블 아웃'입니다.

그러다 보니 병살이 이뤄졌는데 어떤 상황은 더블 플레이, 어떤 상황은 더블 아웃이 됩니다.
또 병살을 만들었는데 그걸 친 누구는 병살타로 기록되고, 병살을 했는데 또 다른 누구는 병살타가 아닙니다.

당일 경기의 유일한 병살타로 기록된 1회 위즈덤의 타구도 디아즈 못지않은 빠르고 강한 라인 드라이브였습니다.
다만 타구 방향이 1루와 유격수 방면으로 타석에서 야수까지의 거리가 달랐을 뿐이고, 유격수 쪽으로 향했던 위즈덤의 타구는 바운드가 됐을 뿐이죠.

두 선수가 비슷한 품질의 타구를 때렸고 결과도 수비진의 더블 플레이라는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한 명은 병살타, 한 명은 땅볼로 기록이 된 겁니다.

위즈덤은 질 좋은 타구를 날렸지만 해당일에 병살타가 1개가 기록이 됐습니다. <사진 OSEN>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디아즈의 타구는 야구규칙상 병살타가 아닌 것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규칙(야구규칙 9.00 공식기록원, 9.02 공식기록지 '17항 포스 더블 플레이(force double play) 또는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reverse force double play)가 되도록 땅볼을 친 타자의 이름'의 주석1)이 야구의 무엇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주석 부분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중계와 기사에서는 재플리시 '더블아웃'이 여전히 쓰이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