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서류도 가짜였다. 임신 8개월에 남편 유부남 사실 알았다는 탑가수

현미는 1962년 '밤안개'로 데뷔했으며, 이봉조는 현미의 데뷔곡 '밤안개'의 가사를 작사했습니다. 현미는 이후 '보고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현미는 작곡가 겸 재즈 색소폰 연주자였던 故 이봉조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습니다. 결혼 이후 현미는 남편 이봉조와 슬하에 아들 2명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현미의 큰아들은 가수 고니(이영곤), 현미의 조카는 가수 노사연, 배우 한상진이 있습니다.

가수 현미의 남편이던 이봉조는 그와 결혼 전 노전숙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슬하에 자녀들을 둔 상태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과거 한 방송에 출연했던 현미는 "그때 한국 전쟁 직후라 호적도 없었다. 내가 23살에 임신을 했고, 결혼식 날짜를 잡았는데 자꾸 연기를 했다. 그 부인이 미8군에 한복을 입고 찾아왔다. 본인이 '이봉조 부인이다'라고 했다. 딸도 둘도 있다고 했다"라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현미가 이봉조의 결혼 사실을 알게 된 당시는 이미 아들 임신 8개월 차였습니다. 또한 현미는 "이혼했다고 해서 한 줄 알았다. 이혼 서류도 보여줬다. 알고 보니 (가짜로) 만들어서 가져온 것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외에서 현미는 뒤늦게 남편 이봉조가 이혼한 것이 아니라 두 집 살림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이후에도 자녀 2명을 더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봉조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 재학 중 미 8군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서울특별시청과 토목과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미 8군 무대에서 재즈 색소폰 연주를 계속했으며, 당시 색소포니스트의 제자로 인정받아 공무원을 그만두고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현미는 다른 방송에서 “가끔 이봉조를 생각하면 눈물 난다. 쉰여섯에 한창 살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내가 매일 '미안해', '용서해'라고 한다. 내가 큰 죄인 같다"라고 눈물을 훔쳤습니다.

한편, 원로가수 현미는 2023년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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