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제국 만드는 빈살만 … 격투기도 접수
격투기 1위 UFC와 '맞짱'
축구·골프·테니스 이어
e스포츠 월드컵도 개최
중동 맹주로 '스포츠 굴기'
"인권탄압 희석 노려" 지적도
천문학적 오일 머니를 장전한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대회 유치를 싹쓸이하고 인기 스포츠에 잇달아 진출하고 있다. 중동 맹주로 전 세계에 '스포츠 굴기'를 과시하는 한편, 인권 탄압국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스포츠 워싱' 효과도 노리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굵직한 스포츠 대회가 앞으로는 모두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지원하는 격투기 단체가 미국 '벨라토르'를 인수하고 세계 1위 종합격투기(MMA) 단체인 UFC와 경쟁한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가 자본을 투자한 프로격투리그(PFL)는 최근 미국 패러마운트 소유의 격투 단체 벨라토르를 인수했다. FT는 패러마운트가 소수 지분을 남겨둔 채 PFL에 벨라토르를 매각했으며, PFL과 패러마운트가 연합해 UFC에 도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블룸버그는 PFL의 기업가치가 5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돈 데이비스 PFL 창업자는 "이번 인수·합병(M&A)은 하루아침에 MMA 시장을 바꿀 것"이라며 "PFL과 벨라토르가 합쳐지면 전 세계 25위권 선수의 30%를 확보하고, 이는 UFC의 선수 비중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에 경쟁사 UFC의 데이나 화이트 회장은 "(사우디가) 현금을 불태우고 있다"고 조롱했다. UFC는 지난해 11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인기를 끌고 있지만, 선수들과의 임금 문제로 소송을 하는 등 내홍에 휘말린 상황이다.
2017년 창립된 PFL은 신생 격투 단체지만 지난 8월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1억달러를 투자하면서 주목받았다. FT는 "사우디는 축구와 골프, 테니스에 이어 모든 스포츠에서 세계적인 존재감을 강화하기를 바란다"며 "중동에서는 금융과 물류 중심지인 아랍에미리트(UAE)와 경쟁하며 최근 UFC가 UAE에서 개최되는 것을 주시해왔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대형 스포츠 행사 유치권을 독차지하면서 세계 스포츠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으로 최근 유치한 굵직한 대회만 네 개다. 2027년 AFC 아시안컵,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2034년 하계아시안게임, 2034년 FIFA 월드컵이 모두 사우디에서 열릴 예정이다.
석유 공룡 아람코의 후원을 받는 포뮬러원(F1)도 지난해부터 그랑프리 레이스 개최지에 사우디 '제다'를 포함시켰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는 지난해 출범하며 막대한 자금력으로 스타 골퍼를 영입했으며, 올해에는 업계 1위인 미국프로골프(PGA)를 합병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림 벤제마 등 축구스타를 사우디 프로 리그가 영입하는 방식으로 세계 10대 프로축구 리그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FT에 따르면 사우디는 유명 테니스 선수가 하나도 없지만 자금력을 앞세워 테니스 대회까지 유치하고 있다.
스포츠 업계 신흥 시장인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해 40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내년부터 리야드에서 'e스포츠 월드컵'을 매년 개최한다.
지난달 29일 리야드에서 열린 복싱 이벤트도 상징적인 사건이다.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타이슨 퓨리와 PFL 소속 종합격투기 선수 프랜시스 은가누 간 경기가 복싱 메카인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리야드에서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와 인터뷰한 퓨리는 "그들(사우디)이 경기를 장악하고 있다"며 "앞으로 5년, 10년 안에 글로벌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모두 사우디에서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WP는 "중동에서 유입된 자금이 세계 스포츠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며 "다만 자금 출처를 놓고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상존하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우디가 어두운 현실 대신 스포츠로 눈을 돌리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사우디 경제의 석유 의존도를 줄일 방침이다. 빈살만 왕세자가 투자에 역점을 두고 있는 스포츠는 역내 경쟁자인 UAE를 넘어 관광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진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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