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거북, '하얀 죽음'의 덫에서 나올 수 있을까
시사위크|거제=박설민 기자 2015년 코스타리카 해변가. 바다거북 한 마리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거북의 코에는 하얀색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있었다. 미국 해양생물학자 크리스틴 피게너가 대학원생 시절 공개한 영상이다. 코에서 피를 흘리는 바다거북의 모습은 온라인상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국제적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플라스틱으로 세워진 금자탑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제품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바다거북 하나만 보고 당장 플라스틱 사용량을 극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내외 어업환경만 해도 그물, 부표, 낚시용품 등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따라서 가장 위험한 플라스틱 유형부터 천천히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렇다면 어떤 플라스틱 쓰레기 유형이 바다거북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까. 또 바다거북을 포함, 해양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효율적인 플라스틱 쓰레기 감소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 한번 삼킨 플라스틱, 뱉을 수가 없다
경남 거제시 KIOST 남해연구소, 센터 내부로 들어서자 홍상희 KIOST 생태위해성연구부 책임연구원과 연구팀원들은 분주하게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연구 테이블 위에 한 가득 늘어진 쓰레기는 플라스틱과 비닐 조각이었다. 해초냄새와 더불어 강한 바다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 쓰레기들은 2021년 ‘푸른바다거북(Chelonia mydas)’과 ‘붉은바다거북(Caretta caretta)’ 두 종의 사체를 부검해 꺼낸 것들이다. 각각의 플라스틱과 비닐 조각들은 소화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인쇄된 상표, 병뚜껑 등의 모양, 색상 등은 초기 상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다거북 종에 따라 뱃속에서 나온 쓰레기 종류가 달랐다는 점이다. 초식성인 푸른바다거북의 뱃속에선 밧줄과 폐그물의 비율이 높았고, 육식성인 붉은바다거북은 커다란 스티로폼 조각과 과자봉지, 페트병 라벨 등 비닐 종류 쓰레기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홍상희 책임연구원은 “해양생물은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섭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바다거북이 가장 많은 빈도수를 차지한다”며 “바다사자나 물새, 상어류보다 바다거북은 평균 2~3배 이상 많은 플라스틱을 삼킨다”고 설명했다.
심원준 책임연구원은 “해양생물이 플라스틱을 섭취할 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자연적 먹이를 섭식할 때 인지하지 못한 채먹는 계열, 다른 하나는 먹이라고 착각하여 삼키는 계열이다”라며 “바다거북의 경우는 둘 다 해당하기 때문에 플라스틱의 섭취량이 타 생물군에 비해 훨씬 높다”고 말했다.
바다거북의 신체구조상 특성도 플라스틱 쓰레기의 치명률을 높인다. 바다거북의 식도는 날카로운 가시형태의 케라틴 돌기가 잔뜩 돋아나 있다. 바다거북은 먹이를 삼킬 때 바닷물과 함께 먹이를 섭식하는데 이 후에 바닷물만 빼내고 먹이만 남겨두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플라스틱 쓰레기나 폐그물이 식도로 들어오면 돌기에 얽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삼킬 수밖에 없다.
홍상희 책임연구원은 “바다거북은 다른 해양동물과 비교해 플라스틱 섭취량이 가장 많기도 하지만 플라스틱이 몸 안에 머무르는 시간도 매우 길다”며 “연구 결과 평균 한달에서 최대 4달까지도 플라스틱이 몸속에 머물며 물리적·화학적 피해를 입힌다”고 말했다.
심원준 책임연구원은 “플라스틱 자체 독성도 위험하지만 기도가 막히거나 장폐색이 발생하고 뾰족한 조각에 장내에 천공(구멍)이 생겨 염증 등 증상으로 바다거북이 사망할 수 있다”며 “뿐만 아니라 영양가 없고 소화되지 않는 플라스틱을 먹고 가짜 포만감으로 배부른 채 굶어 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하얗고 투명한 ‘죽음의 덫’
주목할 점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특성에 따라 바다거북에게 미치는 피해가 다르다는 것이다. KIOST 연구팀은 최근 색상과 질감에 따라 바다거북이 삼키는 빈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죽은 바다거북을 부검한 결과 소화관에서는 흰색 또는 투명한 밝은 계열의 플라스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반면 녹색, 파란색, 빨간색 등 플라스틱은 상대적으로 적게 검출됐다.
이를 확인하고자 연구팀은 살아있는 바다거북을 대상으로 색상에 대한 반응도를 조사했다. 관련 연구 내용은 국제 해양 환경 과학 학술지 ‘마린 폴루션 불레틴(Marine Pollution Bulletin)’에 3월 발표됐다.
실험에 사용된 자극제는 식용색소로 염색한 염지된 해파리조각이 사용됐다. 바다거북이 플라스틱을 삼켰을 때 위험이 발생할 것을 우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관련 아이디어는 연구팀의 노희진 연구연수원이 제공했다.
실험 결과, 바다거북이 먹이에 반응하는 정도는 △투명 73% △노란색 52% △검정색 52% △붉은색 45% △파란색 38% △녹색 35% 순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해파리 조각과 건조시켜 딱딱한 해파리 조각 중 부드러운 먹이를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문예림 연구원은 “이 쓰레기가 생산될 때부터 투명, 하얀색 계열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거북이 밝은 색 계열을 선택적으로 섭식한 것인지 알아보고자 했다”며 “실험 결과 바다거북이 실제로 밝은 색 계열의 먹이에 좀 더 반응성이 높은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먹이의 질감도 바다거북의 ‘식욕’을 촉진하는 매개체로 작용했다고 한다. KIOST 연구진은 부드러운 해파리와 건조해 질기도 딱딱하게 만든 해파리를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바다거북은 부드러운 자극제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것을 확인했다.
노희진 연수연구원은 “밝은 색, 투명 먹이에 바다거북의 반응이 높다는 연구를 진행한 후 먹이 질감에 따라 반응도의 차이가 있는지 실험을 진행했다”며 “실험 결과 질긴 먹이보단 부드러운 먹이를 섭식하는 빈도가 높다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은 바다거북의 경험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풀이된다. 바다거북의 주요 먹이인 해파리처럼 투명하거나 노란빛을 띄는 먹이에 가장 민감히 반응한 것이다. 또한 검정, 붉은색 비율이 높은 것은 같은 먹이군인 해초 색상과 가장 유사하다. 질감 역시 바다거북의 먹이는 대다수 부드럽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딱딱한 해파리냉채엔 반응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노희진 연수연구원은 “질감 실험 진행 과정을 보면 바다거북은 질기던 부드럽던 먹이라고 판단되는 물체가 있으면 일단 접촉은 한다”며 “이때 최종적으로 먹는 것까지 이어지는 것은 부드러운 먹이일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먹기가 쉬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부드러운 먹이 자체를 선호하는 것인지에 판별하기 위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봤다.
홍상희 책임연구원은 “이번 실험을 통해 바다거북이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먹이의 색상과 질감에 대한 일부 정보를 밝혀내는데 성공했다”며 “더 나아가 먹이의 후각적 특성, 먹이와의 실제 유사성 등에 관한 연구도 추진 중이고 성과를 계속해서 얻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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