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식 기자회견의 울먹임
얘기의 순서는 거꾸로다. 그의 은퇴에서 시작해야 한다.
2016년 11월의 어느 토요일이다. 히로시마 시내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 카프를 상징하는 색이다. 경찰 집계로 31만 명이었다. 인구 4명 중 1명꼴로 거리에 나온 셈이다.
모인 이유는 퍼레이드 때문이다. 25년 만의 우승(센트럴 리그)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도심을 관통한 행렬의 목적지가 있다. 그들의 홈구장 마쓰다 스타디움이다.
관중석 3만 801개의 자리는 이미 가득 찼다. ‘우승 보고회’가 열렸다. 그러나 메인 행사는 가장 마지막에 준비됐다. 구로다 히로키의 은퇴식이다. 관중들은 모두 같은 옷이다. 등번호 15번이 새겨진 카프의 붉은 유니폼이다.
주인공이 등장한다. 성큼성큼 마운드를 향해 걷는다. 직전에 멈춰 오른쪽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정지 동작은 33초나 이어졌다. 관중석에서는 3만801개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여기저기서 훌쩍임도 들린다.
은퇴식이 끝난 뒤 기자회견 자리다. 누군가 당시(무릎 꿇은) 심경을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없다. 대신 참을 수 없는 울먹임이 마이크를 타고 흐른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침묵은 1분간 깨지지 않았다. 간신히 추스른 대답이다.
“그 마운드에서 스탠드를 바라보는 게 마지막이라는 걸 느끼는 순간, 후회랄까? 뭔가 알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그가 훌쩍이며 내뱉은 말이다.

메이저리그 오퍼를 거절하고 히로시마로 복귀
41살 때였다. 은퇴라는 단어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그런데 기록은 다른 얘기를 한다.
그 해 24번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냈다. 10승 8패의 성적이다. 151.1이닝을 책임졌다. 완투 경기도 한 번 있었다. 평균자책점(ERA)도 3.09로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숙원인 우승을 선물했다. 1~2년쯤 더 하는 게 당연했다. 주변에서도 모두 말렸다. 그런데도 굳이 이별을 택했다.
그가 말하는 이유는 하나다. “항상 내 힘으로 끝낸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그는 통산 76번의 완투 경기를 해냈다. 별명이 ‘미스터 완투’였다). 그러나 더 이상 9이닝을 던질 수 없는 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좌절감을 느꼈다. 이제 떠날 때가 됐다.”
더 이상 카프를 위해서 헌신할 수 없게 됐다. 도움이 안 된다. 그런 말이다.
그가 미국 생활을 끝낼 때도 그런 심정이었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시즌(2014년)도 훌륭했다. 32경기에 등판해 11승 9패를 올렸다. 199이닝을 막아냈다. 1이닝만 더 했으면, 4년 연속 200이닝을 채울 수 있었다. 승리 기여도(fWAR)가 3.1이었다.
당연히 양키스는 붙잡았다. 1800만 달러(약 236억 원)의 연장 계약을 제안했다. 팀 리더 데릭 지터도 만류했다. 그뿐만 아니다. 다저스, 파드리스에서도 오퍼가 왔다. 경쟁이 붙으며 몸값은 2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아무도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카프를 위해서 던져야 할 때라는 생각이었다. 가난한 시민 구단이다. 돈으로는 MLB와 비교가 안 된다. 4억 엔(약 36억 원)에 흔쾌히 OK 했다. 미국의 5분의 1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의 복귀 소식에 일본 전체가 뜨거워졌다. ‘의리남’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전국에 메아리쳤다. 카프 경기 연간 회원권이 8300장이나 팔려 나갔다. 카프는 7년 동안 비워 둔 15번 유니폼을 그에게 바쳤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한 이유 “돌아가기 위해서”
작년 7월이다. 일본 매체 풀카운트의 인터뷰가 있었다. 복귀 당시에 대한 회고가 곁들여졌다.
“처음 떠날 때 각오가 있었다. ‘실패하면 돌아와야 한다.’ 그런 마음 자체를 아예 지워버렸다. 그러니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복귀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퇴로를 아예 차단한 것이 도움이 됐다. 물론 그것 때문에 괴롭고, 힘들기도 했지만….”
얘기는 이어진다.
“복귀를 결심했을 때 불안감이 컸다. 과연 내가 카프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선발다운 성적을 남길 수 있을까. 나이나 체력적인 부담감은 물론이다. 7년 사이에 달라진 일본 야구에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움으로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히로시마로 돌아가려 했나. 그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으로 떠날 때(2007년)다. 팬들과 약속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래서 카프를 위해서 다시 던지겠다.’ 그런데 그냥 복귀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힘이 남아 있을 때, 그래서 팀에 도움이 될 때’라는 분명한 전제였다.”
MLB의 좋은 제안을 마다한 이유도 설명했다.
“메이저에서의 생활은 너무 치열하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다. 뉴욕에 살 때는 아파트 베란다에도 나가질 못했다. 충동적으로 뛰어내릴까 겁이 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그걸 버티고 이겨낸 이유가 있다. 떳떳하게 돌아가고 싶어서다. 1경기, 1경기,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래야 많은 오퍼를 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복귀하는 게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약속을 지킨 것이기 때문이다.”

구로다 히로키가 생각나는 요즘
그는 카프 복귀 후 2시즌을 뛰었다. 2015년 11승 8패 ERA 2.55, 2016년10승 8패 ERA 3.09를 기록했다. 은퇴를 말리는 팬들에게는 “나는 여기까지다. 더 이상 내년을 기대하지 마시라. 이제 제발 용서해달라.”
마운드를 떠난 뒤 비로소 평안을 찾았다. 현장 복귀 얘기가 나온 적도 있다. 카프의 감독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자 손사래를 친다. “전혀 아니다. 야구에 진지하게 몰입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현재는 방송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한편으로는 카프의 어드바이저 직함을 갖고 있다. 감독이 된 친구 아라이 다카히로를 뒤에서 돕는다는 차원이다.

구로다 히로키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인물이 있다. 만년 꼴찌 팀의 에이스,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성과, 그리고 복귀를 손꼽아 기다리는 팬들….
99번이 언제 돌아올지는 모른다. 올해가 될 수도 있고, 내년 이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약속을 남겼다. “경쟁력이 있을 때 복귀하겠다. 그래서 마지막은 한화를 위해서 던지겠다.” 그때까지 이글스는 그를 위한 라커 한자리를 비워놓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