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는 그냥 미쳤다… 만화처럼 첫 50-50 대업 삼켰다, 오타니가 가는 길이 곧 역사다(종합)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말 그대로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누구도 해내지 못했지만, 오타니 쇼헤이(31·LA 다저스)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50홈런-5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그 과정조차 예술이자 상상하기 어려웠던 만화 같은 과정이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역사를 새로 쓰면서 왜 자신이 리그의 아이콘인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킨 하루였다.
오타니는 20일(한국시간) 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1번 지명타자로 출전, 6타수 6안타(3홈런) 2도루 10타점 4득점이라는 인생 경기를 펼치면서 팀의 20-6 대승에 일조했다. 이날 경기가 더 특별했던 것은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50홈런-50도루 클럽의 문을 연 선수가 됐다는 점이다. 오타니는 이날 경기 전까지 48홈런-49도루를 기록 중이었는데 이날 홈런 3개와 도루 2개를 한꺼번에 추가하면서 51홈런-51도루를 기록해 메이저리그 새 역사를 썼다.
근래 들어 꾸준하게 홈런과 도루를 추가하며 50-50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오타니는 이날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아홉수 따위는 없는 대기록을 만들어나갔다. 시작부터 도루가 나왔고, 홈런이 터졌고, 50-50을 달성한 이후에도 홈런포를 터뜨리며 자신의 대기록을 자축했다. 또한 다저스는 이날로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다. 자신도 웃고, 팀도 웃은 날이었다. 모든 것이 다 만화 같았다. 오타니의 스타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2위인 샌디에이고의 추격에서 아직 자유롭지 않은 다저스는 이날 포스트시즌 진출 확정을 위해 정예 멤버를 내세웠다. 전날(19일) 패배도 있어 이날 승리가 더 필요했다. 다저스는 오타니 쇼헤이(지명타자)-무키 베츠(우익수)-프레디 프리먼(1루수)-윌 스미스(포수)-토미 에드먼(유격수)-맥스 먼시(3루수)-개빈 럭스(2루수)-앙헬 파헤스(중견수)-크리스 테일러(좌익수) 순으로 타순을 짰다. 선발로는 잭 플래허티가 나갔다.
오타니를 상대해야 할 마이애미는 우완 에드워드 카브레라를 선발로 내세웠다. 9월 9일 필라델피아전에서 7이닝 3피안타 무자책점, 그리고 9월 14일 워싱턴전에서 6이닝 1피안타 무자책점으로 최근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던 터라 다저스도 긴장감이 있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오타니의 종횡무진 활약에 그 긴장감은 녹아들었고, 다저스가 시종일관 주도권을 쥔 채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타니의 대활약이 모두를 살렸고, 메이저리그 역사적인 기록으로 이어졌다.
시작부터 장타가 뿜어져 나왔다. 1회 첫 타석에 들어선 오타니는 2B-2S의 카운트에서 5구째 94.8마일(152.6㎞) 체인지업이 가운데 몰린 것을 놓치지 않고 우익수 방면으로 총알 같은 2루타를 터뜨렸다. 타구 속도는 114.6마일(184.4㎞)에 이를 정도로 빠른 타구였다. 오타니는 여유 있게 2루까지 들어갔다. 무키 베츠가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났으나 프레디 프리먼이 볼넷을 골랐고, 여기서 다저스의 작전이 나왔다. 오타니와 프리먼이 모두 스타트를 건 것이다. 2루 주자 오타니의 몫이 중요했는데 좋은 스타트를 건 오타니가 3루에 들어가면서 시즌 50번째 도루가 만들어졌다. 50-50에 일단 도루는 다 채운 셈이 됐다. 오타니는 후속 타자 윌 스미스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아 팀의 선취점을 책임졌다.
오타니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다저스는 1-0으로 앞선 2회 선두 맥스 먼시가 볼넷으로 나갔고 개빈 럭스가 안타를 쳐 1,2루를 만들었다. 이어 두 타자가 아웃된 상황으로 2사 1,2루에서 오타니의 두 번째 타석이 만들어졌다. 경기 초반 중요한 타이밍이었는데 오타니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오타니는 1B 카운트에서 카브레라의 93.5마일(150.5㎞) 체인지업이 또 가운데 떨어지는 실투로 들어오자 이를 다시 잡아 당겨 우전 적시타를 터뜨렸다.
이어진 2사 1,3루에서 오타니는 무키 베츠 타석 때 2루 도루까지 성공시키며 시즌 51번째 도루를 성공했다. 3루 주자를 체크하기 위해 오타니의 2루 도루를 마냥 신경쓰기 어려운 상황을 잘 간파하고 비교적 여유 있게 2루에 들어갔다.
마이애미가 2회 1점을 만회한 가운데 다저스는 2-1로 앞선 3회 5점을 폭발시키며 경기 초반을 장악했다. 1사 후 윌 스미스의 몸에 맞는 공, 토미 에드먼의 중전 안타, 맥스 먼시의 볼넷으로 베이스를 꽉 채운 다저스는 개빈 럭스가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1점을 추가했다. 이어진 1사 만루에서는 다시 앙헬 파헤스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4-1로 앞서 나갔다. 마이애미는 경기 초반 제구가 전혀 되지 않은 카브레라를 내리고 앤서니 베네지아노를 투입하며 승부를 걸었다.
여기서 다저스는 크리스 테일러가 희생플라이로 1점을 보탰고,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오타니가 두 명의 주자를 불러들이는 2타점 중전 적시타를 치며 7-1까지 달아났다. 좌완 베네지아노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인 오타니는 6구째 95.2마일(153.2㎞) 포심패스트볼이 자신의 히팅존으로 들어오자 정확하게 받아쳐 타구 속도 105.1마일(169.1㎞)짜리 중전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오타니의 타격감은, 이제 홈런만 나오면 되는 흐름이었다.
마이애미가 5회 2점을 추격했지만 6회 오타니의 방망이는 그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저스는 7-3으로 앞선 6회 선두 앙헬 파헤스가 안타를 치고 나갔다. 이어진 1사 1루에서 네 번째 타석을 맞이한 오타니는 드디어 대포를 가동했다. 우완 조시 소리아노의 초구 체인지업을 지켜본 오타니는 1S에서 2구째 85,4마일(137.4㎞) 슬라이더가 한가운데 몰리자 지체 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타니의 타구는 시속 111.2마일의 속도로 438피트를 날아가 우중월 스탠드에 박혔다. 다저스가 9-3으로 도망가며 승기를 잡는 순간이자, 오타니의 시즌 49번째 홈런이 나온 순간이었다. 첫 네 번의 타석에서 모두 안타를 친 오타니의 절정의 감을 고려하면 이날 50-50 대기록 수립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역사적인 50-50은 7회 나왔다. 다저스는 9-3으로 앞선 7회 1사 후 토미 에드먼의 볼넷, 맥스 먼시의 안타, 상대 폭투와 개빈 럭스의 볼넷으로 1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서 앙헬 파헤스가 2타점 적시타를 쳐 11-3으로 도망갔다. 크리스 테일러가 땅볼로 물러났지만 오타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타니는 우완 마이크 바우먼의 4구째 89.1마일 너클 커브가 가운데 몰린 것을 놓치지 않고 다시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이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오타니의 시즌 50번째 홈런이 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50-50이 달성되는 순간이었다.
론디포파크가 너나할 것 없이 뜨거워진 가운데 평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오타니도 홈런임을 확인한 순간 포효하며 대기록 달성의 기쁨을 드러냈다.
오타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승패가 기운 9회, 마이애미는 야수는 비달 브루한을 마운드에 올려 백기를 들었다. 다저스는 9회 2사 1,2루에서 오타니에게 기회를 만들어줬고, 오타니는 브루한의 3구째 높은 공을 받아쳐 다시 우중간 담장을 넘기는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이날 10타점 경기를 완성했다. 야수에게 친 홈런이라고 해도 홈런은 홈런. 오타니의 시즌 51호 홈런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6안타에 10타점을 기록, 경기가 끝난 뒤 오타니의 시즌 성적은 150경기에서 타율 0.294, 출루율 0.376, 장타율 0.629, 51홈런, 51도루, 120타점, 123득점, 176안타, OPS(출루율+장타율) 1.005까지 수직 상승했다.
이날 경기로 다저스는 91승62패(.595)를 기록, 남은 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일단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은 확정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중부지구 선두를 확정한 밀워키 브루어스에 이어 두 번째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한 팀이 됐다. 아직 지구 우승을 확정하지는 못했으나 2위 샌디에이고(87승66패)와 경기차는 4경기로 조금 더 벌어졌다. 9월 말 샌디에이고와 3연전이 기다리고 있으나 지구 우승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다저스는 이날 선발 잭 플래허티가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선전했고, 타선은 오타니의 대활약을 비롯해 장단 16안타에 10볼넷을 폭격하며 20득점을 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는 당연히 축제의 분위기였다.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오타니도 이날 하루만은 일탈(?)을 했다. 자신의 50-50은 물론, 팀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했으니 하루 정도는 기분을 내볼 법했다. 보통 이런 날은 클럽하우스에서 샴페인 파티가 벌어지곤 하는데 오타니 또한 샴페인 파티에 동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일부 동료들은 오타니의 50-50 기념 티셔츠를 입고 파티에 나와 동료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데일리스포츠’ 등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념한 건배사를 마친 뒤 오타니를 향해 “야구 역사상 아무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 나왔다”면서 오타니의 대기록을 축하했다. 오타니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유리잔의 샴페인을 모두 마셨다.
오타니는 경기 후 “샴페인 맛은 좋았다. 포스트시즌은 계속 꿈꿔왔던 무대다. 처음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굉장히 기쁘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오타니는 2018년 LA 에인절스에 입단해 에인절스에서 6년을 보냈지만, 이 기간 포스트시즌에는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해 아쉬움을 삼켰다. 다저스로 이적한 것은 꾸준히 강팀이라 큰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작용했다.
이어 50-50 달성에 대해서는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그간 많은 기록을 만들어온 선배들에게 존경심이 든다. 새로운 기록을 작성해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면서 “타석에 들어서기 전 공을 바꾸더라. 빨리 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전 타석의 기억을 지우고 그 타석에만 집중했기에 좋은 결과를 거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와 10년 총액 7억 달러에 계약하며 큰 화제를 모았던 오타니는 지난해 막판 받은 팔꿈치 수술 탓에 올해는 투수는 접고 타자에만 전념했다. 투·타 겸업을 하지 않는 오타니의 가치가 깎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타격에만 전념하는 오타니가 얼마나 좋은 성적을 낼지를 궁금해하는 시선도 있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후자의 시나리오가 더 빛났다.
오타니는 시즌 초반부터 홈런과 도루 개수를 맹렬하게 쌓아갔다. 이미 40홈런 이상 시즌을 두 번이나 한 오타니라 홈런은 이상할 게 없었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도루 개수였다. 오타니는 종전 한 시즌 최다 도루가 2021년의 26개였다. 게다가 성공률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올해는 신들린 도루까지 보여줬다. 오타니는 올해 5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면서 실패는 단 4개에 불과했다. 그렇게 일찌감치 30-30의 벽을 돌파했다.
40-40을 달성한 것도 극적이었다. 오타니는 24일(한국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와 경기에서 9회 극적인 끝내기 만루 홈런을 쳤다. 이 홈런은 오타니의 시즌 40번째 홈런이었다. 역대 6번째 40-40 클럽에 달성한 선수로 기록됐다. 오타니의 스타성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50-50 달성 경기도 그랬다.
오타니에 앞서 1988년 호세 칸세코(42홈런-40도루), 1996년 배리 본즈(42홈런-40도루), 1998년 알렉스 로드리게스(42홈런-46도루), 2006년 알폰소 소리아노(46홈런-41도루), 2023년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41홈런-73도루)까지 5명이었다. 오타니는 가장 빠른 시점에 40-40을 달성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50-50 도전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현지 언론들은 오타니가 21일부터 열리는 콜로라도와 3연전 혹은, 그 다음 열리는 샌디에이고와 3연전에서 50-50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보다 더 빠르게 축포가 터졌다. 60-60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이제는 오타니가 가는 길 그 자체가 모두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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