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패션을 위한 추천 아이템 5

안녕! 객원필자 김정년이다. 이번 내돈내산 리뷰는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이다. 군복 느낌 물씬 나는 옷에 2년 동안 약 300만 원을 썼다. 나는 왜 이토록 밀리터리 패션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일단 원본을 향유한다는 점이 끌렸다. 이게 무슨 말이냐. 전쟁이 끝나면 옷이 남는다. 옷에 얽힌 기록도 남는다. 어느 나라에서,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있다. 전문가의 ‘아카이브북’이나 ‘패션 히스토리북’도 풍부하다. 특정 시대의 디테일한 복식 정보를 공부하면서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2년간의 밀리터리 패션 소비는 단순한 쇼핑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미학적인 취미생활이랄까. 행거에는 옷만 쌓이는 게 아니라 ‘옷을 사는 기준’도 나란히 쌓였다. 패션에 대한 미적 판단을 바꿨던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 5종을 소개한다.


[1]
퍼티그 팬츠

[출처 : 무신사 스탠다드]

퍼티그 팬츠는 나를 밀리터리 패션으로 인도한 입문 아이템이다. 탄탄한 원단과 직선적인 실루엣이 특징. 선 굵은 솔기, 네모난 포켓은 조형적으로 울퉁불퉁한 하체에 날렵한 인상을 더한다. 퍼티그 팬츠 덕분에 체형 보정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편이다.

[출처 :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의 기원은 명확하다. 1960년대 미군이 즐겨 입었던 작업복. 많은 패션 브랜드가 60년 전의 원형을 미묘하게 비틀며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퍼티그 팬츠 유행은 무신사 스탠다드의 힘이 크다. 4만 원대 제품을 출시했다. 앞서 말한 디테일이 잘 구현된 제품으로, 입어보면 퍼티그 팬츠 특유의 까끌까끌한 촉감이 만족스럽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하기 때문에 퍼티그 팬츠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선택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파고들고 싶다면? 복각에 몰두하는 패션 브랜드를 찾자. 주로 일본에 많다. 일본 브랜드는 특정 의류에 대한 정확한 고증을 추구한다. 시대별 복식을 재현하기 위해 당시에 쓰던 구형 재봉틀을 모으고, 바느질 쓰는 법까지 공부한다. 디자인 제1원칙은 ‘그땐 그랬으니까’.

밑단이 길면? ‘그 시대는 그랬으니까’ 바지통이 넓으면? ‘그 나라는 그랬으니까.’ ‘바지 여밀 때 쓰는 건 지퍼가 아니라 그때 쓴 단추다.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여미자.’ 이런 식으로 현대적 개량보다 오리지널 복원에 힘쓴다.

[출처 : 오어슬로우]

이런 작은 디테일이 모여 멋을 만든다. 투박한 20세기 군용품의 아우라를 소환시키는 것. 복각 전문 밀리터리 패션 브랜드의 매력이다. 이런 노력에 기꺼이 값어치를 지불하는 사람들은 퍼티그 팬츠의 경우, 오어슬로우(orSlow)를 높게 산다. 국내 편집샵에서 매긴 가격은 평균 20만 원대 후반. 국내 패션 커뮤니티를 살피면 ‘가격은 세지만 두고두고 오래 입기 좋은 바지’로 손꼽힌다. 세탁 후 원단수축과 물빠짐이 거듭될수록 진가를 드러낸다는 게 오어슬로우 마니아의 공통 증언이다.

먼저 색감이 남다른 오어슬로우의 올리브 컬러 모델을 확보하고, 기회가 될 때 마음에 드는 색으로 여러 벌을 무탠다드에서 구입하자. 번갈아 입다보면 깨닫는다. 형태는 같지만 두 옷은 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질 좋은 옷을 여러벌 갖춰놓고 돌려 입는 일은 질 좋은 옷을 싸게 사는 일만큼 즐겁다. 퍼티그 팬츠로부터 얻은 교훈이다.

  • 오늘의 매치 아이템 : 1세대 데님 재킷
  • 이 옷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bit.ly/3TTgxbt)로. 참고할 만한 일본 직원들의 착장 등 다양한 스타일링 콘텐츠가 있다.

[2]
덱파카

[출처 : 파라마운트]

육군 바지를 소개했으니 이번엔 해군 외투를 소개한다. 해군에서 유래된 옷은 넥카라, 포켓, 단추 따위의 겉모습이 독특한 편이다. 해군의 옷을 입고 싶다면 덱(DECK)이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게 좋다. 옷 이름에 ‘덱’이 들어가면, 군함 승무원을 위한 디자인이 다수 발견된다.

[출처 : 모드맨]

서울 서교동에 본점을 둔 패션편집샵 모드맨(modemanstore)에서 흥미로운 해군 의류를 발견했다. 제품명은 Royal Navy 50s Deck Smock Parka. 영국 해군 덱파카를 고증한 동계용 아우터다. 오리지널은 아노락 디자인인데, 투웨이 지퍼를 넣은 집업 파카로 재탄생했다. 모드맨에서만 판다.

항공모함의 오퍼레이터가 입은 옷이라 흥미롭다. 영화 ‘탑 건 시리즈’ 오프닝에서 파일럿과 이착륙 수신호를 주고받던 승무원의 옷을 떠올리면 된다. 전투기 파일럿보다 항공모함 승무원이 더 궁금했던 ‘탑건 시리즈’ 팬에게 강력 추천한다.

[출처 : 파라마운트]

여기서 잠시 <탑건 : 매버릭>의 ‘혼도 준위’를 떠올려 보자. 그는 작전 수행 중에 헤드폰을 차고 있다. 바꿔 말하면 파일럿의 항공모함 이착륙을 돕는 오퍼레이터의 옷에는 헤드폰 디테일이 존재한다는 뜻. 이런 기능적인 요소를 오늘날 패션 브랜드가 어떤 식으로 재해석했는지 살피는 것. 현행 패션 브랜드 아이템을 살피는 재미다.

[출처 : 모드맨]

모드맨 덱파카의 경우 헤드폰 라인 수납을 위해 쓰였던 체스트 포켓이 눈에 띈다. 통신용 케이블을 고정하는 용도였던 가로 플랩 포켓은 여권 한 장이 쏙 들어가는 포켓으로 개량. 실제로 입어보면 카드 지갑과 에어팟이 쏙 들어가는 사이즈라 실용성이 일품이다. 헤드폰을 수납했던 후드는 불필요한 디테일을 덜어내 어깨와 목을 예쁘게 감싼다.

정가는 69만 8,000원. 솔직히 선뜻 지갑을 열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고민되는 옷을 만나면 제작 과정을 확인하는 편이다. 제품 상세 페이지과 브랜드 공식 계정에서 이런저런 사연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납득가는 디자인 스토리는 지갑을 열게 만든다.

패션 세계엔 ‘익스클루시브’라는 개념이 있다. 오너가 특정 패션 브랜드에 주문제작을 맡겨서 자사몰 단독 판매에 나선 한정판 의류를 뜻한다. 모드맨의 덱파카도 마찬가지다. 편집샵 사장님이 갖고 싶어 만들었을 옷. 그런 옷이라면 옷장에 한 벌쯤 들여도 괜찮을 것 같다.

  • 오늘의 매치 아이템 : M65 카고팬츠
  • 이 옷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bit.ly/3TUNXqu)로.원본 빈티지 아이템 리뷰를 읽고 현행 의류와 객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3]
MK3 재킷

[출처 : 이스트로그]

이제 공군 의류가 남았다. 하늘은 땅보다 차다. 그런 곳을 누비는 사람의 옷은 필연적으로 방한과 방풍에 특화된 옷으로 진화한다. 따뜻한 안감을 옷에 덧댄다거나 세로로 펼친 옷깃을 목에 묶어 바람막이 기능을 유도하는 디테일이 눈에 띈다.

이스트로그(eastlogue)에서 재밌는 공군 의상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디자인과 생산 모두 한국에서 진행 중인 패션 브랜드로 남성복식사에 뿌리를 둔 패션 아이템을 디자인한다. 패션마니아 사이에서는 F/W시즌 아우터가 고평가받는다.

[출처 : 이스트로그]

내가 인상 깊게 본 이스트로그 의류의 특징은 ‘디자인 고정, 원단 교체’다. 일부 인기 제품은 디자인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온갖 소재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영국 공군 파일럿이 입은 MK3 재킷이 대표적이다. 립스탑, 코튼, 무통, 울, 데님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다. 브랜드명과 의류명을 중고거래 플랫폼에 검색하면 다양한 매물을 구경할 수 있다.

[출처 : 이스트로그]

이스트로그에서 단 하나의 MK3 재킷을 구매해야 한다면, 가죽으로 된 제품을 추천하고 싶다. 잘 만든 가죽잠바는 광택과 촉감이 만족스럽다. 특히 몸에 착 감겨드는 기분이 만족스럽다. 필자는 올가을 배지터블 램스킨을 사용한 이스트로그 MK3 재킷을 입수했다. 수년간 발매된 MK3 재킷 중 유일하게 리오더가 이뤄졌던 제품. 정가 89만 8,000원.

사다리꼴 모양의 호주머니도 자세히 보면 남다르다. 주머니 안에 또 주머니. 덮개를 열어 소지품을 담고, 옆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이중구조 포켓은 이스트로그가 즐겨 쓰는 패션 디자인. 여러 번 입어보니 짧은 기장감이 인상적이다. 이런 외투는 경험상 색감 있는 옷을 여러 벌 껴입고 맨 마지막에 걸칠 때, 가장 멋스럽다.

[출처 : 유니폼 브릿지]

만약 이스트로그 mk3 래더 재킷의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유니폼 브릿지(uniform bridge)의 23fw mk3 래더재킷이 합리적인 대안이다. 정가 499,000원. 이쪽은 염소 가죽이다. 배우 변요한이 나온 룩북이 인상적이다. 만약 옷을 사지 않더라도 가죽자켓을 입는 사람에게 좋은 스타일링이 된다.

  • 오늘의 매치 아이템 : 샴브레이 셔츠
  • 이 옷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bit.ly/48GJ7Ry)로. 이스트로그 디렉터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 창작자의 태도를 알면 덕질이 훨씬 즐겁다.

[4]
M-65 파카

[출처 : (주)디스테이션]

미군이 1965년에 보급한 이후,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의 상징이 된 M-65 파카. 군복을 모르는 사람도 ‘야상’이나 ‘개파카’는 들어봤을 것이다. 아울렛이나 대형마트에서 M-65 파카 입은 손님이 돌아다니는 모습. 한국의 흔한 겨울철 풍경이다. 환절기에 스웨트 팬츠나 후디와 매칭하면 이만한 원마일룩이 없다. 내피와 외피를 분리해 다양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 제대로 만든 옷을 한 벌 사두면, 옷장이 든든하다.

[출처 : waiper.inc]

정말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M-65 파카 디자인으로 신제품을 출시한다. 복각 제품 생산도 활발하며 신제품은 물론 수십 년 전 군납품 오리지널 빈티지 매물까지 골고루 인기가 높다. 대체 M-65 파카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임자가 있다. 단골 빈티지숍에 조언을 구했다.

[출처 : @day.dreaming_store]

카이아크만부터 엔지니어드 가먼츠까지 두루 섭렵했다는 인천 구월동 데이드리밍스토어 사장님은 오리지널과 현행 제품의 가장 큰 차이를 ‘핏(fit) 차이’라 말한다. 내피를 결합하지 않은 오리지널 M-65 파카는 ‘무식하게 큰 몸통’과 ‘뚱뚱한 팔통을 지녔다’는 것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오리지널 재현에 도전하고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잘 안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회가 된다면 상태 좋은 오리지널 매물을 구하는 것도 좋겠으나. S급 매물 구하는 데 쏟는 노력과 가격을 생각하면 난감하다. 새것을 사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가격도 적합하면서 오리지널과 가장 유사한 M-65 파카. 어떤 브랜드를 고르면 좋을까?

[출처: 프릭스 스토어]

프릭스 스토어(FREAK’S STORE)의 M-65 파카를 추천한다. 일본 패션 편집샵의 단독발매품으로 ‘무식하게 큰 몸통’과 ‘뚱뚱한 팔통을 지녔다’는 기준으로 고를 때, 오리지널의 아우라를 따라잡는다. 구매를 결정했다면 다운사이즈를 추천. 필자는 평소에 XL 사이즈를 입는데, 이 외투만큼은 L사이즈를 입어도 오버핏이 나온다.

프릭스 스토어를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 역대급 엔저 현상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가장 인기가 좋은 M-65 Mods Coat Liner Set의 정가는 ¥14,960. 2023년 국내 환율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13만 원.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일본여행 시 현지구매를 노려보자. 프릭스 스토어는 일본의 전국구 패션 편집샵이다. 어느 도시를 가건, 관광지 인근 대형백화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 오늘의 매치 아이템 : 파운드 페더 3way 바라클라바
  • 이 옷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bit.ly/3NVCeUI)로. 유익한 패션 저널이다. 키워드를 검색하면 옷의 기원에 대한 물음은 대부분 해소된다.

[5]
N-3B와 헤비아우터

[출처 : 이스트로그]

한때 N-3B라는 공군 의류에 푹 빠졌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무렵 보급된 미 공군 헤비아우터로 20세기 중반,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전투기를 몰았던 파일럿의 방한복 디테일을 즐길 수 있다. 조형적으로 상의 앞섶을 여미는 단추와 둥근 고리. 지퍼 위를 또 덮는 플랩 디테일이 눈에 띈다. 독특하면서도 고유한 겉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토이즈 맥코이 N-3B
[출처 : 아이앰샵 ]

리얼 맥코이 N-3B
[출처 : 스컬프 스토어]

출시된 지 70년이 넘은 디자인이다. 다양한 브랜드가 판매 중이다. MA-1 재킷으로 유명한 알파 인터스트리(ALPHA INDUSRIES)의 디자인은 중고장터 매물이 눈에 띈다. 세이지 그린 컬러가 예쁜데 나일론의 쨍한 광택이 매력 있다. 한국의 올리브드랩서비스(ODS)는 에어크루맨 파카라는 이름으로 후드를 제거한 N-3B를 선보였다. 이런 현대적 개량도 좋다.

복각 브랜드는 만듦새가 눈에 띈다. 리얼 맥코이(THE REAL MCCOY’S)나 토이즈 맥코이(TOYS McCOY’S)같은 복각 브랜드의 200만 원대 재킷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증이 미쳤다.

개인적으로 N-3B 파카는 목에 달린 모피가 거슬렸다. 이것만큼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테일이 좋았다. 캐주얼한 디자인을 탐색하다 보니 앞서 소개한 이스트로그의 N-3B를 두 점 소장 중이다. 한겨울에 단벌착용해도 땀이 펄펄 나는 구스다운파카와 겉감이 북실북실한 플리스. 원하는 디테일만 들어차있어서 수년째 매년 겨울이 돌아오면 즐겁게 입는 중이다.

이제 나에게도 취향이란 게 생겼나 보다. 20세기의 멋을 21세기 디자이너가 재해석한 옷을 좋아한다. 바뀐 디테일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직접 입어보면 느낄 수 있다. 잘 만든 옷의 미묘한 디자인을 경험하는 게 참 즐겁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여러분도 나만의 기준을 갖고 옷을 사 모으시는지. 밀리터리 패션 아이템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듣고 싶다.

필자는 이번 시즌도 여러 헤비아우터를 탐색하고, 직접 입어보기도 하며 구매 여부를 고민할 듯하다. 이번 겨울은 무스탕이 끌린다.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러브 하츠코이> 영향이다. 남주인공 하루미치는 드라마 최종화 클라이막스에서 따뜻한 무통 파카를 입고 여주인공 야에를 바라본다. 엔딩 쿠키영상이 끝나자마자 검색창을 열어 그들이 입은 어떤 헤비아우터인지 검색했다. (B-3 군용 재킷으로 짐작된다.) 패션을 사랑하기에 시작된 취미이자, 겨울철 스타일링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여러분도 이 놀이에 푹 빠져보시길 바란다.

  • 오늘의 매치 아이템 : 캐피탈 센추리 데님
  • 이 옷을 더 알고 싶다면 여기(https://bit.ly/3TXdyin)로. 항공점퍼의 계보를 가장 흥미롭게 전하는 영상 콘텐츠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