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넌도 찾았던 도쿄 동네 다방, 깃사텐을 아시나요
일본식 찻집+서양식 커피하우스
100년 넘게 이어온 문화 공간
레트로 열풍에 젊은층에서 인기
국내에 깃사텐 표방한 곳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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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한번쯤 한적한 골목 어귀에 있는 오래된 찻집 앞을 지나간 적이 있을 것이다.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카페’와는 다르게 망설여지는 곳이다. 하지만 곧 두꺼운 나무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따뜻한 조명과 은은한 음악, 향긋한 커피 향이 궁금해진다. 바로 ‘깃사텐’(킷사텐)이다.
그대로 읽으면 ‘끽다점’(喫茶店)이다. 차를 즐기는 곳인 깃사텐은 일본 특유의 문화 공간이다. 1888년 영국에서 돌아온 일본인 외교관이 일본에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일본식 찻집이 서양식 커피하우스를 만나 20세기를 통과하면서 구축된 문화다. 모든 게 빠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지금, 100년이 넘는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갖고 있는 깃사텐이 최근 한국 젊은 층에 ‘새로운 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연간 900만명을 넘는 등 일본 여행이 보편화된 지금, 깃사텐을 방문하는 ‘깃사텐 투어’가 젊은 층에 새 여행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깃사텐은 한국의 ‘다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방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식사 메뉴가 있다는 것이다. 깃사텐은 토스트와 커피 등으로 구성된 아침 식사와 샌드위치를 비롯해 스파게티, 오므라이스 등의 메뉴가 많다. 푸딩이나 케이크 등 디저트 메뉴도 갖추고 있다. 어린이부터 노년층까지 편하게 찾는, 지역 주민들의 일상 공간에 가깝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음악과 분위기다. 다방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면 깃사텐은 세심하게 선곡된 음악을 배경 삼아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거나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동네 골목 한적한 자리를 지키며 잊힐 위기였던 깃사텐이 세상의 관심을 받게 된 데는 일본 젊은 층 사이에 분 레트로 열풍의 공이 크다. 20세기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싶은 일본 젊은 층은 독특한 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깃사텐 투어에 열광했다. ‘레트로 순회 붐’이라고 불렸다. 젊은 층은 깃사텐을 찾아 그곳에 쌓인 시간을 즐겼다. 깃사텐을 소재로 한 책도 여러권 출간됐고, 여러 매체가 다루며 다양한 형태의 깃사텐이 소개됐다.
지난 1월 한국에 번역 출간된 ‘도쿄 킷사텐 도감’(알에이치코리아 펴냄)도 일본 깃사텐 투어 기록이다. 일본의 건축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엔야 호나미는 도쿄 및 근교의 깃사텐 18곳을 세심하게 기록해 그림으로 그렸다. 엔야 호나미가 기록한 여러 깃사텐 그림과 글은 하나의 풍경으로 남았다. 책에 소개된 깃사텐 중 도쿄에 위치한 ‘솔레유’(소레이유)는 2대에 걸쳐 가족이 운영하는 깃사텐이다. 가게 음식을 ‘집의 연장’이라고 하는 2대 점장의 설명처럼 가족들의 손길이 잔뜩 남아 있는 데다.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메이쿄쿠킷사 라이온’은 1926년에 문을 열어 올해 100주년이 됐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깃사텐인 만큼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 따라 스피커 위치를 선정하는 등 오로지 음악과 마주하는 공간이다.


‘도쿄 킷사텐 도감’ 외에도 국내 작가들이 쓴 깃사텐 책들이 최근 잇달아 발간되고 있다. 일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최민지 작가가 펴낸 ‘도쿄 킷사텐 여행’(남해의봄날 펴냄)은 깃사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상세한 안내서다. 최초의 깃사텐이 있었던 도쿄 우에노에서 시작해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존 레넌 등 예술가들이 찾던 살롱으로서의 깃사텐까지 그 역사를 쭉 따라간다. 일본 문학 등 다른 영역의 문화와 깃사텐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다면, 또 시간의 흔적이 더 선명한 공간으로서의 깃사텐이 궁금하다면 읽어볼 만하다.
최 작가는 깃사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인 시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에 찾았던 깃사텐에 제가 아이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어요. 3대가 함께 찾을 수 있는 곳이 깃사텐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꼈죠. 코로나 때는 영업이 어려워진 깃사텐이 혹시 문을 닫을까 걱정해 동네 주민들이 모금을 해서 지원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지역 사회에 소중한 공간이죠. 많은 깃사텐이 노포지만 다 그렇진 않아요. 최근에는 지나간 시간과 새로운 시간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는 깃사텐도 많아요.”
오사카에 위치한 ‘깃사 스이게이’는 5년 전에 문을 열었다. 젊은 주인은 폐업한 소도시 깃사텐의 물건과 인테리어, 나무 자재까지 그대로 오사카로 가져와 자신만의 깃사텐을 열었다. 그렇게 오래된 깃사텐이 간직한 손님들의 흔적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이어졌다. 도쿄에 있는 ‘아타락시아’는 클래식 음악 중심의 깃사텐을 여는 게 오랜 꿈이었던 주인이 정년퇴직을 하고 뒤늦게 꿈을 이뤄낸 공간이다. 깃사텐에는 이렇듯 사람 이야기가 함께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게 깃사텐만의 매력이다.

깃사텐을 즐기기 위해 꼭 일본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내에도 깃사텐을 표방한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깃사텐이라는 이름을 건 곳도 있고 깃사텐의 분위기를 가져온 곳들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킷사고구마’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깃사텐이다. 작은 공간이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깃사텐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크림소다와 파르페, 푸딩 등의 메뉴도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깃사텐의 음식으로 충분하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 위치한 ‘니지가하라’는 서울에 몇 없는 ‘재즈 깃사’다.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곳은 1년6개월 전에 문을 열었다. 재즈 깃사는 깃사텐에서 음악을 듣는 문화가 뻗어 나가 ‘재즈 음악을 듣는 깃사텐’이라는 독립적인 카테고리를 갖게 됐다. 그러나 이 설명만으로는 재즈 깃사에 대한 궁금증이 다 해소되진 않는다.
니지가하라를 운영하는 장도현씨는 재즈 깃사가 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일반 깃사텐보다는 재즈 음악을 듣는다는 목적이 더 분명한 곳입니다. 저녁 시간에 재즈를 들으며 술을 마시는 공간인 재즈 클럽이나 재즈 바와도 달라요. 낮에도 차나 커피를 마시며 재즈를 들을 수 있죠.” 재즈 깃사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아니 들을수록 여전히 모호하지만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이 오히려 재즈 깃사의 매력이다.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대학가와 주택가에 있는 재즈 깃사에 가보고 관심을 갖게 됐어요. 번화가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 주인장인 ‘마스터’와 함께 음악을 듣는 취향 중심의 공간이라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소박하고 차분하며 평화로운 일본의 재즈 깃사의 성격을 빌려왔죠.” 아직 재즈 깃사에 대해 낯설어하는 손님들이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조용히 앉아 같이 재즈를 듣는 손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깃사텐뿐만 아니라 재즈 깃사에 가보는 건 어떨까. 니지가하라의 장도현씨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 ‘마스터’가 운영하는 ‘나르시스’를 추천한다.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번화가에 숨겨진 귀한 공간인 이곳에서는 영국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즐길 수 있다.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재즈 깃사의 취지를 지키고 있는 신주쿠의 ‘이글’은 고급스럽고 깔끔한 분위기의 재즈 깃사다.

깃사텐에서 사진만 찍고 나오기엔 아쉽다. 사진이 깃사텐에 머문 시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그럴 땐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도쿄 킷사텐 도감’의 저자 엔야 호나미처럼 그릇부터 카펫, 의자, 조명 등 세세한 부분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해볼 수도 있다. 일본 문학사를 따라가는 ‘도쿄 킷사텐 여행’의 최민지 작가처럼 하나의 주제를 정해 탐방하듯 찾아가볼 수도 있다. 소설가, 음악가 등 좋아하는 작가를 따라가며 그 인물이 깃사텐에 앉았을 때 보았을 풍경을 느껴보는 것도 방법이다. 최 작가는 깃사텐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으로 ‘소리 채집’을 추천한다.
“깃사텐에서 소리를 녹음해본 적이 있어요. 음악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낮게 뒤섞이는 깃사텐 특유의 조용한 공간감과 찻잔 달그락대는 소리, 사람들의 발소리가 그대로 녹음되어 있더라고요. 때론 사진을 볼 때보다 소리를 들을 때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더 선명하게 간직할 수 있잖아요.”
안인용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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