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왜 인력거가 사라졌을까?

이 사진을 보라. 최근 ‘인력거 끄는 소녀’로 유명해진 한 여성이 도쿄 아사쿠사에서 인력거를 끌고 질주하는 모습인데 인터넷을 보니 일본에서는 꽤 많은 인력거꾼이 손님을 태우고 있다. 일제강점기 사실주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끌던 그 인력거. 근데 이게 아직도 있네? 유튜브 댓글로 ‘우리나라에는 왜 인력거가 사라지게 됐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인력거는 있다. 그러나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첨지의 인력거처럼 운송수단은 아니고 모두 관광 및 체험용 인력거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홍대, 군산, 전주 등에 몇몇 업체가 있었으나 전부 사라졌고, 현재는 종로구의 한 업체가 국내 유일의 인력거 업체다. 이 업체에 전화해서 운송용 인력거가 자취를 감추게 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OO인력거 대표
“(역사의) 뒤안길로 없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희가 자동차가 있으니 굳이 인력거를 탈 필요가 없겠죠. (인력거가) 운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자본도 없고 인건비도 싸고 골목도 많고 그러다 보니까 인력거가 좋았겠죠”

그러니까 교통수단으로서 인력거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인데, 다른 교통수단보다 인건비가 낮을 때는 인력거 사업도 성행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건비가 점차 높아지며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건비가 낮은 개발도상국에는 아직도 관광상품이 아니라 교통수단으로서의 인력거가 남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거치며 버스와 지하철 등 저렴한 대중교통이 빠르게 발달했고, 지금은 마을버스와 경전철, 택시, 대여형 모빌리티 등이 교통수단의 모세혈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인건비도 비싼 인력거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 것.

OO인력거 대표
“근데 이제 나중에 대중교통이 발전하고 전차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고 택시도 생기고 그러니까 인력거는 효용 가치가 아무래도 갈 수 있는 게 한정적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아는 일반적인 사람이 끄는 인력과는 그쯤에서 끝났을 거라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에 인력거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이유는 그래도 일본은 일상적으로 기모노나 유카타도 종종 입고, 곳곳에 신사도 있고하니, 전통을 지키려는 생각과 관련이 있는건가 싶어 한국외대 교수님께 물어봤는데 상업적 이벤트 딱 거기까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Nakamura Yae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
“전통을 지키자라는 그런 활동으로서 하는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상업적인 거 그렇게 봐요. 옛날 분위기가 나는 관광지에서 그걸 관광상품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이동하는 수단은 아니고요. 전통을 잇자는 의미보다는 이벤트성이랄까요”

그러니까 현재 일본의 인력거가 전통을 지키고 옛것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저 인력거가 관광 상품으로서의 상업적 가치가 있어서 많이 늘었다는 설명.

실제로 일본에서 인력거는 관광 상품으로서는 성공하여 그 수도 많고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30분에 9만5천원정도로 비싸며, 최근 화제가 된 일본의 인력거 소녀는 3시간 반의 일정을 마치고 3만 7천 엔을 받았다. 우리 돈으로 35만 원 정도이고, 시급으로 10만 원 정도다.(WOW) 적은 시간을 투자하는 고액 알바라는 소문이 퍼져 일본 젊은 층도 인력거꾼 라이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사실 우리나라에서 인력거가 성행한 1920년대엔 인력거꾼이 빈민을 대표하는 직업 중 하나였는데, 1925년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인력거꾼의 평균 한 달 수입은 30원으로 당시 기준으로는 쌀 2가마니 정도를 사는 금액이었고, 빈민을 나누는 월 소득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운수좋은날’의 ‘김첨지’가 하루에 3원을 벌고 운수 좋은 날이라고 했던 게 이해 가는 대목.

대중교통으로서 인력거는 사실상 사라졌지만 관광지에서라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누구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도 하고 누구는 이색적인 관광상품이라고 하고. 왱구 여러분은 인력거 타보실 생각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