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7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 트루이스트 파크.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정규시즌 경기는 2회초를 마친 뒤 폭우로 중단됐다. 서스펜디드 게임 선언, 재개는 18일이다. 하지만 이날 경기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비 때문이 아니다. 10개월 만에 같은 그라운드에 선 김하성(애틀란타)과 이정후(샌프란시스코), 극명하게 엇갈린 두 한국인의 현재 위치가 이 경기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하성과 이정후는 2024년 말 같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 1,3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며 거대한 도약대를 마련했다. 반면 김하성은 4년간 몸담았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떠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새 출발을 알렸다. 파드리스 시절 김하성의 누적 기록은 540경기, 타율 0.242, 출루율 0.326, 장타율 0.380, bWAR 15.1이다. 2023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며 수비 가치를 공식 인정받았고, 1루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포지션 능력으로 팀 내 중요한 자원으로 기능했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지난해 어깨 수술 이후 2025시즌을 사실상 통째로 날렸고, 2026시즌을 앞두고는 오른손 중지 힘줄 파열로 또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1월 수술, 재활, 뒤늦은 빅리그 합류. 스프링캠프를 정상적으로 소화하지 못한 채 시즌에 뛰어든 김하성에게 실전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다.

이정후는 반대의 경로를 걸었다. 부상 없이 풀 스프링캠프를 소화하고 개막부터 정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토니 비텔로 감독이 타격뿐 아니라 주루와 수비까지 고르게 평가하며 우익수 고정 출전 카드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자이언츠 내에서 주전 선수들의 트레이드설이 흘러나오는 상황에서도 이정후는 동요 없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선을 긋고 경기 준비에 집중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날 이정후는 5번 타자 우익수로, 김하성은 9번 타자 유격수로 각각 선발 출전했다. 타순 배치 자체가 두 선수의 현재 위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선취점은 이정후가 만들었다. 1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터뜨리며 샌프란시스코에 1-0 리드를 안겼다. 애틀란타는 1회말 즉각 반격했다. 부상 복귀한 주전 포수 드레이크 볼드윈이 선두타자로 나서 솔로 홈런을 기록해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마우리시오 두본의 적시타로 애틀란타가 2-1 역전에 성공했다.
샌프란시스코는 2회초 다시 흐름을 가져왔다. 브라이스 엘드리지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2-2)을 만든 뒤, 맷 채프먼의 희생플라이로 3-2 재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2회초 공격이 끝나자마자 빗줄기가 거세졌다. 그라운드 정비가 이어졌고, 심판진과 양 팀 감독 협의 끝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다. 경기는 샌프란시스코 3-2 리드, 애틀란타 2회말 공격부터 18일 재개된다.

김하성은 이날 경기에서 유의미한 타격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올 시즌 17경기, 56타수 5안타, 타율 0.089. 9번 타자라는 타순 배치가 현재 팀 내 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타율 0.089는 냉혹한 숫자다. 그런데 이 수치를 단순히 부진의 증거로만 읽는 것은 맥락을 절반쯤 잘라내는 일이다. 김하성이 마주한 변수들을 차례로 짚으면, 어깨 수술로 2025시즌 전체를 날렸고, 2026시즌을 앞두고 오른손 중지 힘줄 파열로 1월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스프링캠프를 건너뛴 채 빅리그 경기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메이저리그 타자가 정상적인 시즌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 과정이 통째로 빠졌다는 의미다. 타격 타이밍을 잡으려면 반복 훈련과 실전 타석 누적이 선행돼야 하고, 그 과정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월트 와이스 감독이 "타격감이 좋은 선수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균형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팀 운영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단이 아직 김하성의 회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론다 아쿠냐의 햄스트링 부상 공백으로 두본이 외야에 자주 투입되면서 유격수 자리에 출전 기회가 생기고 있다는 점은, 김하성에게 실전 타석이 계속 주어진다는 의미다. 와이스 감독이 공개석상에서 "그가 원래 모습을 되찾으면 팀 전력도 강해진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포기 선언이 나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다.

여기에 스펜서 스트라이더의 추가 부상도 이 상황과 맞물린다. 4주간 셧다운 진단을 받은 스트라이더의 공백은 애틀란타 선발진 전반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팀이 득점력에 더 의존해야 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 맥락에서 김하성의 타격 회복은 단순히 한 선수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팀 공격 뎁스의 문제와 연결된다.
반면 이정후의 이날 1회초 희생플라이는 작은 장면이지만, 1사 만루라는 압박 상황에서 타점을 만들어내는 상황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 시즌 초부터 고정된 타순과 포지션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감독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이정후의 위치는, 단순히 성적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트레이드설이 흘러나오는 팀 분위기 속에서도 감독이 타격·주루·수비 전반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선수로 평가했다는 것은, 이정후가 팀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두 선수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 이 시즌의 이정후와 김하성은 같은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서있는 출발점이 다르다. 김하성이 돌파해야 할 것은 타격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실전 감각 회복의 문제에 가깝다. 파드리스에서 4년간 쌓은 bWAR 15.1과 골드글러브로 증명한 수비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능력을 다시 보여줄 충분한 타석이 얼마나 주어지느냐다. 성적이 안 나오면 기회가 줄고, 기회가 줄면 회복이 더뎌지는 구조에서, 지금 김하성이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는 앞으로 수 주 안에 더 명확해질 것이다.
경기는 18일 재개된다. 샌프란시스코 3-2 리드, 애틀란타 2회말 공격부터다. 이 경기의 결과와 별개로, 두 한국인 선수의 시즌 궤적은 계속 갈라지고 있다. 이정후는 지금의 신뢰와 자리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김하성은 남은 타석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까. 두 선수의 2026시즌은, 아직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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