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땅에 송전탑 박은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왜 그랬냐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

밀양 10년 1) 세월이 흘러도

2) 밀양을 찾는 사람들

3) 밀양을 등진 사람들

4) 또 다른 밀양

5) 밀양, 수도권의 땔감

40대 초반 젊은 경찰서장 김수환은 고성과 울음이 뒤섞이던 밀양, 아니 고향으로 향했다. 망설임은 없었다. 20여 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그가 맡은 일은 명확했다. 고향마을에 송전탑을 심는 일. 목표가 분명하니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오로지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가 밀양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지 갓 1년이 지났을 무렵, 그는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고향 주민들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마무리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밀양을 떠났다. 그렇게 고향을 등졌고 권력에 한 걸음 다가갔다.

이성한 경찰청장(왼쪽)이 2013년 9월 26일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에서 송전탑 건설 예정 위치를 가리키며 김수환(오른쪽) 밀양경찰서장에게 그 동안의 진척 상황을 묻고 있다. /연합뉴스

◇온화한 성품의 합리주의자 = 김수환(54·경찰대 9기)은 적어도 경찰 조직 내에서는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거쳐온 '직'이 그를 대변한다. 특히 그의 역량은 시위와 집회 등을 관리하는 경비 업무에서 빛을 발했다.

김수환은 밀양경찰서장 시절 행정대집행을 무사히 완수한 공을 인정받아 이후 '경비 1번지' 서울 종로경찰서장(2016년 12월 16일~2017년 12월 28일) 직을 맡았다.

종로경찰서 담당구역은 청와대부터 광화문 광장 등이다. 이곳에서 매일 같이 열리는 각종 집회·시위 관리가 주된 업무다. 그만큼 업무 강도가 높지만 경찰 조직 안에서는 승진이 빠른 요직으로 통한다. 무엇보다 그가 종로경찰서로 향한 시기는 박근혜 정부 탄핵 국면이다. 그의 종로경찰서 행은 경찰 조직이 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난 인사다.

김수환은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 그가 한 단계 한 단계 직을 높여갈 때마다 고향 마을에서는 분노 섞인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수환은 우리 동네 사람이에요. 근데 자기 고향 어르신들을 그렇게 끌어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지요. 그때 왜 그랬냐고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박은숙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주민대표는 김수환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직원들을 살뜰하게 챙기던 김수환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당시에도 직접 현장에 나가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경찰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주민들 눈에는 그런 그가 그렇게 괘씸했다.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 박정숙(72) 씨는 김수환을 뻔뻔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농성하던 할매들이 아침에 손이 시려워서 불을 피우니까 의경이지 싶어 오더니 소화기를 쏘아 뿌서 할매 손이 데인 것처럼 이상해지더라고. 한 시간 있었나. 김수환 경찰서장이 와요. 박카스 양쪽에 한통씩 들고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치안을 산속에서 하는가베. 그러면서 들고온 박카스를 팔매질해서 던져버렸지. 남은 하나는 세맨 바닥에 내리쳐서 10개 다 깨지 뿌고…."

◇법정에 세워진 주민들 = 행정대집행 이후 주민들은 몸과 마음을 회복할 새도 없이 경찰서에 불려다녔다. 경찰서랑 법원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는 이들 앞에 순식간에 피고인 딱지가 붙었다.

경찰과 검찰은 반대 주민들을 말 그대로 탈탈 털었다. 자그마한 혐의점이라도 발견되면 소환해 조사했고 무리해서라도 재판에 넘겼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주민 법률지원단이 종합한 내용을 보면 지난 10일 기준 밀양 송전탑 관련 형사사건으로 총 68명(주민 46명·연대자 22명)이 기소됐다. 그 결과 △징역형(집행유예) 14명 △벌금형 47명 △무죄 5명 △소년보호처분 1명 등의 판결이 내려졌다. 부과된 벌금은 모두 1억 1370만 원(선고유예 2490만 원 포함)이다.

무죄 선고 사건 5건 중에는 1심과 2심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도 있었다. 당시 검사가 항소를 거듭하자 주민 길들이기라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주민이 징역·벌금형을 받자 시민사회에서는 법원이 국가폭력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이 2013년 10월 6일 밀양시 단장면 85·86번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연결되는 바드리마을 입구 도로에 누워 한전과 경찰차량 출입을 막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비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수환 서장 요구에 한 할머니가

주민 법률지원단에서 간사로 활동했던 정상규(법률사무소 시대) 변호사는 "주민들이 물리력을 행사한 경우는 대부분 인정했지만, 공사 방해를 위해 진입로에 차를 세워두고 본인과 차를 쇠사슬로 묶는 행위 등은 소극적인 저항 행위라고 주장했다"며 "재판부에서는 이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검찰과 법원이 국가정책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극적 저항 행위를 이렇게까지 처벌하는 게 과연 온당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단순히 주민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식으로 종결지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이 반대한 이유는 정부가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하고자 전기도 얼마 쓰지 않는 밀양에, 그것도 거주지 인근에 송전탑을 세우겠다고 했기 때문"이라며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인데 도리어 국가는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이들 목소리를 힘으로 제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밀양을 발판 삼은 사람들 = 현재 김수환은 경찰청 차장이다. 경찰 조직 내 7명밖에 없는 치안정감이기도 하다. 현행법상 경찰청장은 치안정감 중에서만 임명할 수 있는 만큼 '경찰 조직 2인자'로 불린다. 현 윤희근 경찰청장이 2022년 경찰청 차장자리에서 청장으로 직행한 점을 고려하면 김수환은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로 꼽힌다. 경찰청장 인사는 오는 7월로 예정돼 있다.

김수환 이 외에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기점으로 승승장구한 이들은 또 있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경남경찰청장을 지낸 김종양(국민의힘·창원 의창) 국회의원이다.

김 의원은 최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당시 경찰 대응을 자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국회의원 후보자 시절 "경남경찰청장 할 때 밀양 송전탑 7년 동안 제대로 공사 진행되지 못하던 걸 제가 와서, 슬로건이 밀양 주민이 미워서도 아니고 한전이 좋아서도 아니다, 법대로 해야 한다, 경찰은 법을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 지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뜻으로 진행시켰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지난 10일 <경남도민일보>와 통화에서 "앞서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른 입장은 없다"며 "문제 되는 부분은 후임 청장 때 벌어진 일로 안다"고 밝혔다.

경찰 과잉진압 비판과 관련된 의견을 묻고자 김수환에게 수차례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밀양 주민들 가슴에 대못 같은 송전탑을 박아 넣은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일관된다. 법과 원칙에 따라 불법 행위를 엄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 주장과 정반대되는 결론을 내렸다. 2019년 6월 진상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경찰이 밀양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반대 주민에 대한 불법사찰·특별관리·회유 등으로 부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명시돼 있다. 아울러 경찰이 송전탑 공사 반대를 막기 위해 과도한 공권력을 투입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실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행정대집행 당시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현장을 지킨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당시 경찰은 주민들을 끌어내기에 앞서 현장을 증언할 연대자, 인권 감시단부터 끊어냈다"며 "경찰도 자신들 행위가 위법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밀양 행정대집행 당시 한쪽에서는 출세를 위해 국가 권력을 악용하는 세력이 있었고 반대쪽에는 미래 세대를 위해 투쟁했던 주민이 있었다"면서 "국가 폭력 책임자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고위 공직에 오르면 국가가 시민 권리를 아무렇게나 침해해도 된다는 부정적 메시지가 사회 전체에 퍼지게 될까 봐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 밀양10년기획취재팀 = 김다솜·김연수·박신·최석환·정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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