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금리에 여윳돈 굴릴지 대출부터 갚을지 고민한다면…
“대출금리 연 5%, 세전 금리 연 5.91% 수익상품 들어야 본전”
“대출금을 먼저 갚는 게 나을지, 예금에 넣어 더 굴리는 게 나을지 고민입니다.” 적금 만기가 도래해 2000만원가량을 손에 쥐게 된 30대 직장인 정모씨의 얘기다. 정씨는 “현재 보유 중인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5%, 최근 찾아본 예금 상품 금리가 6.1%”라며 “애초에는 부수입이 생기면 대출금을 일부라도 갚아 이자 비용을 줄일 생각이었는데, 막상 예금 이자를 챙기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 갈팡질팡하게 된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기존에 보유 중인 대출금을 상환할지, 고금리 예·적금 상품에 가입해 이자 혜택을 보는 게 나을지를 두고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보유 중인 대출 금리보다 예금 금리가 좀 더 높다고 해서 예금을 굴리는 게 낫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면서 “향후 경기 전망이나 개인의 재테크 관점에서 대출 상환을 먼저 하고, 보유 현금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2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전날 오전 기준 은행권 예금 상품의 최고 금리는 연 5.4%, 저축은행 예금 금리는 최고 연 6.1%로 나타났다. 적금의 경우 최고 금리가 13.7%로, 금리 연 10%대 상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은행이 물가 인상과 환율 불안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거듭 올린 데다 은행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예·적금 금리를 경쟁적으로 인상한 결과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바닥을 기던 예·적금 금리가 치솟자, 고금리 특판 상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예금이 주요 투자처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대출 원리금 상환 대신 예금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정점에 이르렀고 다시 금리가 내리막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만약 ‘대출금 중도 상환’과 ‘고금리 예금 가입’ 사이에서 고민 중이라면 ‘대출 상환이 먼저’라는 게 재테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윤희 신한PWM압구정중앙센터 PB팀장은 “현 장세와 향후 시장 전망을 고려하면 대출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 상환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금리 정책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올해 가파르게 금리를 올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정책 방향 전환(피봇·pivot)으로 내년 하반기에는 금리가 내릴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미국과 한국의 금리 기조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준이 시장의 피봇 기대를 경계해왔고, 금리 동결 논의조차 시기상조라고 언급해왔다”면서 “이를 감안하면 연준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을 할 뿐 이를 금리 인하로 보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고점을 찍고 나서도 바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한동안 고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연준이 5.0~5.25% 수준까지 최종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 상황이다. 씨티그룹은 “연준이 경기가 침체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밀어붙이는 ‘파월 푸시(Powell Push)’에 나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금리 인상기인 예금과 대출 금리는 연쇄적으로 오른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산정에서 저축성 수신상품 금리의 기여도가 80% 이상이기 때문에, 예금 금리를 올리면 대출 금리도 시차를 두고 상승한다.
전문가들이 금리 인상에 따라 이자가 불어나는 변동금리형 대출과 금리가 더 높은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을 우선 상환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예금담보대출 등 빚을 내 고금리 예·적금 특판 상품에 가입하는 전략도 제시되고 있으나, 이는 합리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성진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양재PB센터 PB팀장은 “대출금리 연 4%는 이자소득세율이 15.4%인 세전 4.728%의 수익 상품과 동일한 수준”이라면서 “대출금리가 5%이면 세전 금리가 5.91%, 대출금리가 6%면 세전 금리가 7.09%인 상품에 가입해야 본전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현재 차주가 보유한 대출 종류, 원리금 규모, 금리 적용 방식 등에 따라 대출금 상환의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다. 대출 중도상환수수료도 감안해야 한다.
만약 1년 전 고정금리로 4% 초반대 주택담보대출(1년 거치, 35년 만기, 5년 고정 후 변동금리로 전환)을 받아 현재 이자만 상환 중인 경우라면, 현시점에서 대출금을 상환하면 수수료를 내야 한다. 들어온 목돈을 차라리 고금리 예금에 넣은 뒤 중도 상환 수수료가 면제되는 3년이 지나 대출금을 갚는 게 셈법상 낫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도상환수수료는 고객이 빌린 돈을 만기보다 더 빨리 갚는 경우 금융사별로 요구하는 일종의 해약금이다. 은행 등 금융사가 대출 실행 시 발생한 경제적 비용을 보전하는 수단이자 수익처인데, 통상 대출 개시일로부터 기한 연장을 포함해 3년이 지난 경우 부과하지 않는다.
김윤희 신한PWM압구정중앙센터 PB팀장은 “대출 이자 부담을 낮추고 가계 부채를 줄이는 게 가장 현명한 방안”이라며 “보유 대출의 목적과 적용 금리 수준 등에 따른 개인의 금융비용을 꼼꼼히 계산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 또한 금융비용을 줄이고 안전자산인 현금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최근 미국 월가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2%가 “향후 12개월 안에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 속 물가 상승)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최근 낸 ‘2023년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가장 적절한 투자전략으로 ‘현금 보유’를 권했다. 보고서는 “내년 현금 보유로 적어도 4.5%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며 “아무런 리스크 없이 4%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주식과 채권 시장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현재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가격 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현금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들이 기회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한국은행이 오는 24일 기준금리를 현 3%에서 3.25%로, 0.25%p 인상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과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불안이 완화한 점 등을 고려하면 한은이 한 번에 0.5%p를 올리는 식의 빠른 금리 인상 필요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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