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점쟁이의 경고 "당신 유전자, 운명 아닌 선택지입니다"

>> 몸속 '운명'을 읽는 사람들, 유전자 상담사는 누구인가

유전자 상담사는 단순히 검사지를 읽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의학적·심리적·가족력을 종합해 특정 질환의 유전적 위험을 설명하고, 환자가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도록 돕는 전문 직업군으로 정의된다.

세계 유전상담학계에서는 유전상담을 "질병의 유전적 기여가 가져오는 의학적·심리적·가족적 영향을 이해하고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규정한다.

이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포함된다.

가족력·병력 분석을 통한 질환 발생·재발 위험 평가.

유전 형질의 유전 방식, 검사 방법·한계, 관리·예방 전략에 대한 교육.

결과를 토대로 한 환자의 가치·신념·삶의 계획에 맞는 의사결정을 돕는 비강제적 상담.

국내에서 유전상담사는 보건의료인력으로 분류돼 병원, 유전자 연구기관, 희귀질환 센터,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자 검사 기업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 "내 유전자에 암세포가?"…BRCA 변이가 말해주는 것과 말해주지 않는 것

유전자 상담실을 찾는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력이 있는데, 나도 암에 걸릴 운명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온다. 그 중심에 자주 등장하는 유전자가 바로 BRCA1·BRCA2다. 이들 유전자의 병적 변이는 유방암과 난소암 위험을 통계적으로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여성의 평생 유방암 발생 위험은 약 3~4% 수준으로 추정되며, 미국 기준으로는 약 13% 수준으로 보고된다.

반면 국내 연구에 따르면 BRCA1 또는 BRCA2 병적 변이 보유 여성의 70세까지 유방암 위험은 BRCA1이 약 72.1%, BRCA2가 약 66.3%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래프에서 보듯, BRCA 변이 보유자는 일반 여성에 비해 유방암 위험이 대폭 높아지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는 "위험이 과대평가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BRCA 변이 보유 여성의 60세까지 유방암 발생 확률이 18~23%로 추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수치가 연구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추적 연령(60세까지 vs 70·80세까지) 차이.

가족력·환경요인(비만, 호르몬, 출산력 등)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여부.

병적 변이의 종류와 동반 유전자·다인자 위험 점수 차이.

결국 BRCA 변이는 "암에 걸릴 운명"을 단정해 주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위험을 크게 올리는 요인일 뿐, 그 위험이 실제 개인에게 얼마나 발현될지는 생활습관, 환경, 다른 유전자, 조기검진 여부 등 복합 요인에 의해 달라진다.

이 간극을 설명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바로 유전자 상담사의 핵심 업무다.

>> "수술할까 말까" 결정의 장 – 안젤리나 졸리 사례가 남긴 파장

할리우드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BRCA1 변이를 근거로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선택한 일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검사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그의 선택은 "고위험군에서의 과감한 예방 전략"이라는 긍정적 메시지와 동시에, 일반 대중에게 "BRCA=곧 암"이라는 과도한 공포를 안기기도 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BRCA 변이가 확인된다고 해서 곧바로 예방적 절제술로 이어지지 않는다. 유전자 상담사는 다음과 같은 변수를 함께 검토한다.

가족 중 유방·난소암 환자의 연령, 발병 양상.

본인의 나이, 출산 계획, 동반 질환, 삶의 계획.

정기 검진(조기 MRI·초음파 등)으로 관리할지, 약물 예방(항호르몬 요법)을 고려할지, 예방 수술을 선택할지.

즉, 유전정보는 "운명을 선언하는 검사지"가 아니라 예방·감시 전략을 설계하는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 DTC 유전자검사 열풍…바이오 점쟁이인가, 소비자 권리인가

최근 몇 년 사이 '침 한 번, 타액 한 번'으로 비만, 탈모, 피부 노화, 심지어 암 위험까지 알려준다는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가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DTC 유전자검사가 주로 웰니스(건강관리) 영역에 한정돼 허용되고 있으며, 질병 진단·치료 목적의 검사는 여전히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 사회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이 맞선다.

긍정론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편다.

고위험군을 조기에 찾아내 맞춤형 검진과 예방을 가능하게 한다.

소비자가 자신의 유전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잘 설계된 검사와 적절한 상담이 결합될 경우, 오히려 의료비를 줄이고 건강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회의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다.

상업적 마케팅이 과학적 근거를 앞서면서 "운명 점치기" 수준의 과장 광고가 난무한다.

민감한 유전정보가 기업에 축적되면서 프라이버시·보험·고용 차별 등 2차 피해 우려가 크다.

검사 정확도와 해석의 질이 제각각인데도, 소비자는 이를 분별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유전자 검사 자체"가 아니라, 검사 뒤에 따라붙는 설명과 해석, 그리고 보호 장치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지점을 메워야 할 주체로 유전자 상담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 유전자 상담사가 바이오 '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한 3가지 원칙

전문가들은 유전자 상담이 '바이오 점쟁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비강제성 원칙이다.

상담자는 어느 한 선택(수술·검사·임신 중단 등)을 밀어붙여서는 안 되며, 환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결정하도록 정보를 구조화해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둘째, 불확실성의 솔직한 전달이다.

유전자의 위험 수치는 항상 통계적 범위로 제시될 뿐, 개인 운명을 확정해 주지 못한다. "위험 60%"는 "반드시 걸린다"가 아니라 "집단 평균 위험이 크게 높다"는 뜻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심리·가족 맥락까지 고려하는 통합 상담이다.

유전자 정보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형제·자녀까지 위험을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 상담은 가족 관계, 죄책감, 불안, 생식 계획 등 심리사회적 이슈를 함께 다루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때, 유전자 상담은 과학의 언어를 빌린 또 다른 '운명 점치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가 뒤따른다.

>> "검사 전에 물어보라" 유전자 상담이 꼭 필요한 사람들

모든 사람이 유전자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 가이드라인과 국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 검사 전 상담을 특히 권고한다.

1·2촌 가족에게 젊은 연령(예: 50세 미만)에 유방암·난소암·대장암 등 특정 암이 반복되는 경우.

양측성 유방암, 다발성 암, 희귀 유전질환이 한 가계에 뭉쳐 있는 경우.

이미 BRCA 등 유전성 암 관련 변이가 확인된 가족이 있는 경우.

임신 전·산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염색체 이상, 단일 유전자 질환 위험이 의심되는 경우.

DTC 유전자검사 결과를 보고 "암 위험 고위험군"이라는 문구에 충격을 받은 경우.

이때 유전자 상담사는 "검사를 받을지 말지"를 포함해, 어떤 검사가 실제로 의료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현재 보험·급여 체계상 어떤 선택지가 가능한지, 검사를 받지 않을 '권리'까지, 함께 안내하는 역할을 맡는다.

>> 데이터 시대, 유전자 상담의 미래는 '설명과 보호'

의료·헬스케어 산업계는 유전자 데이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지목하며 대규모 바이오뱅크, 유전체 빅데이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유전정보와 생활습관·건강기록을 결합해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가 곧바로 환자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전정보의 상업적 활용과 차별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데이터의 품질과 해석의 신뢰성을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

취약계층이 정보 격차로 또 한 번 소외되지 않게 할 것인지,

각국 규제당국과 전문가 사회의 숙제가 쌓여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전자 상담사의 미래 역할은 더욱 뚜렷해진다.

유전자 상담은 검사를 '권유하는 창구'가 아니라, 데이터와 인간 사이의 완충지대로 작동해야 한다. 난해한 데이터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고, 과잉 불안과 근거 없는 안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주는 일이다.

"내 유전자에 암세포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유전자 상담사가 해야 할 답은 여전히 단 하나다.

"유전자는 운명을 확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더 잘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여줄 뿐입니다."

Copyright © 저작권 보호를 받는 본 콘텐츠는 카카오의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