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⑰1990년 LG 트윈스 시대의 장엄한 첫발

“승률 5할로 3~4위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8년간의 MBC 청룡 시대가 저물고, 1990년 마침내 LG 트윈스 시대의 막이 올랐다. 럭키금성 그룹이 MBC 청룡 선수단을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초대 사령탑이 된 백인천 감독은 1990년 개막을 앞두고 “반드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8년과 1989년 2년 연속 가까스로 꼴찌를 면할 정도로 허약했던 팀. 그랬기에 LG 트윈스가 7개 팀 중 4위 이내에 들어 포스트시즌 진출하기만 해도 성공적인 첫 시즌이라 볼 수 있었다. MBC 청룡 시절 8년 동안 단 한 번(1983년 한국시리즈)밖에 없었던 가을야구. 그런데 LG는 첫해부터 모두가 놀라게 되는 ‘우승’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17번째 주제는 1990년 LG 트윈스 시대 개막 이야기다. 역사적 첫걸음, LG 트윈스 구단 최초의 경기, 최초의 승리와 1호 기록들을 찾아가 본다.

◆새롭게 출항하는 LG 트윈스호, 시범경기 2승3패 예열
LG 트윈스 선수단은 약 한 달 동안 진행한 첫 대만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3월 4일 귀국했다.
KBO 시범경기 개막은 3월 10일(태평양 돌핀스-롯데 자이언츠 1경기). 하지만 LG 트윈스의 창단식은 3월 15일로 예정돼 있었다. KBO는 LG가 창단식을 한 뒤 3월 17일 마산구장에서 첫 시범경기를 치르도록 일정을 짰다.
첫 상대팀은 공교롭게도 잠실 라이벌 OB 베어스였다. 잠실구장 개보수 관계로 이날 경기는 날씨가 따뜻한 남쪽 마산구장에서 소화했다. OB는 페넌트레이스 개막 2연전 상대팀이기도 해서 탐색전의 의미도 있었다.
아무튼 이날은 비록 시범경기지만 LG 줄무의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KBO 첫 공식경기였다. LG는 이날 3-3 동점이던 9회말 2사 1·2루에서 김상훈의 끝내기 안타(상대투수 김동현)로 극적인 4-3 승리를 거두고 팬들에게 화끈한 첫 인사를 했다.

시범경기는 어디까지나 페넌트레이스를 대비해 마지막 점검을 하는 자리이기에 승패가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LG 트윈스로서는 첫 KBO 공식경기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이날 창원공단 내 럭키금성 그룹과 계열사 임직원 3500여 명이 통근버스 100대에 나눠 타고 마산구장에 집결해 열띤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LG는 1990년 시범경기에서 2승3패를 기록하면서 예열을 마쳤다.


◆간판타자 이광은 충격의 교통사고 이탈…개막전 앞두고 악재
LG와 OB는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4월 3일 오전 10시 잠실구장에서 선수단의 안녕과 건투를 비는 합동 고사를 지냈다. ‘한 지붕 두 가족’인 양 팀은 잠실 라이벌이기도 하지만 선의의 경쟁을 펼쳐야 하는 동업자. 그래서 예년과 달리 합동으로 고사를 준비했다.
이날 고사에는 LG 트윈스 조광식 단장, 백인천 감독, 주장 김상훈, OB 베어스 경창호 단장, 이광환 감독, 주장 김광수가 참여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선전을 다짐했다.

하지만 무사안녕을 기원한 뒤 12시간쯤 지났을까. 이날 밤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LG 간판스타인 이광은이 오후 10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강변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 이광은은 중앙선을 침범한 채 마주오던 승용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급히 꺾는 바람에 보도블록을 들이받았고, 이로 인해 왼쪽 갈비뼈에 금이 가고 이마가 4㎝가량 찢어지는 등 전치 3~4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로써 이광은은 개막전은 물론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해졌다. 그나마 중상은 아니어서 다행. 이를 두고 ‘액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을 다짐하던 구단 입장에선 대형 악재가 터진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LG 선수단은 교통사고라면 이미 치가 떨릴 만큼 악몽을 경험했던 터였다. MBC 청룡 시절이던 1986년 외야수 김정수가 예비군 훈련을 하고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1987년엔 에이스 김건우가 교통사고로 투수생명의 치명타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간판타자 이광은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 1990년 개막전…LG 트윈스 최초 라인업
1990년 KBO 개막전은 당초 4월 7일(토요일) 열릴 예정이었다. LG 트윈스는 잠실에서 OB 베어스와 역사적인 첫 개막전(원정)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전국적으로 봄비가 내리면서 잠실뿐만 아니라 인천(삼성-태평양), 광주(빙그레-해태) 개막전까지 3경기 모두 우천으로 인해 9일(월요일)로 순연됐다. 3경기 모두 우천순연된 것은 KBO 개막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4월 8일 경기가 1990년 개막전이 된 셈이다. 이날 잠실경기는 OB 홈경기로 잡혀 있었기에 LG 트윈스 선수단은 일명 ‘검니폼(검정색 유니폼)’으로 불리는 원정 유니폼을 착용했다. 세상에 없던 검정색 상의와 줄무늬 흰색 하의 유니폼은 곧바로 LG 트윈스를 상징하는 시그니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LG 백인천 감독과 OB 이광환 감독의 맞대결. 백 감독은 1982년 MBC 청룡 원년 감독으로 1983년 시즌 중반 팀을 떠난 뒤 7년 만에 복귀해 LG 초대 사령탑을 맡게 됐다. 이광환 감독은 1982년 OB 베어스 코치로 출발해 2년간의 해외 연수(1986년 일본 세이부 라이언스, 1987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제외하면 줄곧 OB 유니폼을 입은 인물이었다. 1989년 OB 베어스 지휘봉을 잡고 자율야구를 이식하려고 했으나 시행착오를 겪으며 5위에 머물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두 감독은 1990년(백인천)과 1994년(이광환) 4년 간격으로 LG 트윈스의 V1와 V2를 지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에 벌어진 일. 이날 경기만큼은 서로를 넘어서야 하는 적장일 뿐이었다.
LG 트윈스와 OB 베어스가 치른 역사적인 페넌트레이스 첫 경기의 선발 라인업은 다음과 같았다.


LG 백인천 감독은 이날 선발투수로 OB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최일언을 낙점했다. 거포 유망주 김상호를 내주고 영입한 재일교포 투수로, 구위 면에서는 분명 내리막길이었다. 하지만 1986년 19승을 비롯해 KBO 6년간 65승을 기록한 관록의 투수라는 점을 믿었다.
OB 이광환 감독은 장호연을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전년도에 MBC 청룡의 루키 김기범의 역투에 밀리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개막전 패배(5승1패)를 당했지만, 자타공인 ‘개막전의 사나이’였다.
OB 라인업에서는 최일언과 맞바꾼 김상호를 4번타자로 과감히 선발출장시킨 점이 눈길을 끌었다.

◆ 개막 2연패로 시작한 트윈스의 첫발
“아무래도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새롭게 출발하는 경기이다 보니 MBC 청룡 시절의 개막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매년 돌아오는 개막전이고, 상대팀도 개막전에서 자주 맞붙었던 OB였지만 저도 모르게 그해 개막전엔 많이 긴장되더라고요.”
LG 트윈스의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한 ‘그라운드의 여우’ 김재박의 회상이다.
“MBC 청룡은 사실상 공영방송이 운영하는 구단이다 보니 야구단에 애정을 쏟는 오너가 없었잖아요. 홍보 차원에서 야구단을 운영했죠. 하지만 대기업인 럭키금성이 야구단을 인수하고 나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으셨던 구본무 부회장께서 수시로 야구단을 찾아 주셨고, 회식도 많이 했어요. 그룹이나 구단 직원들이 야구단에 신경을 쓰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게 피부로 느껴졌죠. 그동안 줄곧 MBC 청룡 유니폼을 입고 개막전을 치러 왔지만 새로운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니까 기분이 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베테랑인 저도 긴장을 했던 거죠.”

OB가 마련한 개막전 행사들이 모두 끝나고 오후 2시 황석중 주심의 “플레이볼” 선언으로 새로운 시대의 첫 경기가 시작됐다.
선두타자 김재박은 침착했다. 볼카운트 2B-2S에서 파울을 하나 친 뒤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나갔다. 이어 2번타자 최훈재 타석. OB 장호연과 조범현 배터리가 신경을 썼지만 김재박은 초구에 과감하게 2루로 내달려 도루에 성공했다. LG 트윈스 역사상 최초의 출루와 도루는 이렇게 기록됐다.
최훈재가 3루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지명타자로 나선 김영직이 좌전 적시타를 날렸다. 발 빠른 김재박이 곧바로 홈까지 파고들어 선취 득점을 올렸다. 공이 홈으로 중계되는 사이 김영직은 2루로 내달렸다. LG 트윈스 1호 득점과 1호 타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김상훈의 2루 땅볼로 2사 3루. 여기서 ‘검객’ 노찬엽이 좌중간을 뚫은 2루타를 날리면서 김영직을 불러들였다. 세상을 향해 LG 트윈스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려는 듯 너무나도 쉽게 2점을 선취했다.

그러나 야구라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걸 깨닫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정팀 타자를 상대로 1회말을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틀어막은 최일언이 2회말 실점을 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트레이드 맞상대인 선두타자 김상호를 볼넷으로 내보낸 게 화근이었다.
신경식의 우전안타로 무사 1·3루, 김형석의 땅볼을 1루수 김상훈이 잡아 홈으로 던졌지만 3루주자가 귀루하면서 무사 만루가 됐다. 여기서 이명수의 6-4-3(유격수-2루수-1루수) 병살타 때 3루주자가 홈을 밟았다.
LG로선 1점을 주긴 했지만 실점을 최소화한 데 만족해야 했다.
LG가 5회초까지 추가 점수를 뽑지 못하자 5회말 다시 반격을 당했다. 4회까지 1안타 2볼넷 1실점으로 호투하던 최일언이 5회말 제구 난조에 빠지면서 연속 볼넷으로 2사 1·2루로 몰렸고, 김광림에게 좌중간 안타를 내주면서 2-2 동점을 허용했다.
LG 백인천 감독은 5이닝 2실점으로 나름대로 선방한 최일언을 내리고 6회말 좌완 유종겸을 호출했다. 좌타자 신경식부터 시작하는 타순이기 때문. 하지만 유종겸은 신경식에게 2구 만에 우익선상 2루타를 맞고 곧바로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런데 이어 나온 5년차 우완투수 예병준이 OB 타선의 불길을 잡지 못하고 빅이닝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1사 3루에서 이명수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하며 2-3 역전을 당했고, 2사 1·2루에서 양세종의 좌전적시타, 김광림의 좌중월 2타점 2루타가 이어졌다. 6회에만 4실점. 그러면서 전세는 2-6으로 뒤집어졌다.
7회말엔 OB 선두타자 김상호가 좌전안타 후 2루도루를 했고, 신경식의 2루수 앞 땅볼 때 3루까지 진출했다. 대타 박노준의 우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2-7로 벌어졌다.
잠실구장을 찾은 OB 팬들은 신이 났고, 새로운 기대에 가득 찼던 LG 팬들은 실망감에 풀이 죽었다.
OB 선발투수 장호연은 1회 잠시 흔들리며 2실점했을 뿐, 9회까지 허허실실 투구로 무실점으로 버텨냈다. 투구수 134개로 완투승을 올리며 개막전에서만 6승(1패)째를 기록했다.
반면 LG 유종겸은 1982년 3월 27일 MBC 청룡이 KBO 최초로 승리를 거둘 때 구원등판해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던 인물. MBC 원년 투수 중 유일하게 LG 트윈스 시대까지 현역 선수로 선수생명을 이어간 투수였다. 그러나 MBC 청룡 시대 최초의 승리투수는 1990년 LG 트윈스 시대 최초의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LG는 이튿날인 4월 9일에도 OB에 4-5로 패하면서 개막 2연패를 당했다.
선발투수 정삼흠이 8이닝 동안 144구를 던지며 완투를 했지만 구동우~김진규~윤석환이 이어 던진 OB에 1점차로 패했다.
1회말 3점을 내주며 끌려가던 LG는 3회초 8번타자(중견수)로 선발출장한 조필현이 볼넷으로 골라나가며 찬스를 만들었다. 조필현은 서울고 출신의 외야수로 백인천 감독이 유난히 총애하던 고졸 루키였다.
곧바로 나웅의 중월 3루타, 김재박의 중견수 희생플라이가 이어지면서 2-3으로 추격했다. 4회초 2점을 다시 내준 뒤 8회초 김상훈과 서효인의 적시타로 2점을 따라붙었지만 끝내 1점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개막 2연패를 당하고 잠실구장 대회 본부 쪽을 지나가는데 대학(성균관대) 선배이신 OB 경창호 단장님과 마주쳤어요. 경 단장님이 ‘야구 어렵데이’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저는 당시 LG 기획부장이었는데 ‘우리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죠.”
훗날 LG 트윈스 단장에 오르는 최종준 전 기획부장의 말이다.
LG 트윈스호가 출항하자마자 연패에 빠지면서 구단이나 선수단에는 큰 낭패감이 몰려왔다. 쉽지 않은 한 시즌을 예고하는 듯했다.

◆연장14회 4시간23분 혈투…‘천신만고’ LG 트윈스 첫승의 순간
“OB에 2연패를 하고 태평양을 만났는데 무조건 이겨야 했어요. 홈 개막전이기도 했고…. 당시 백인천 감독님이 저를 아들처럼 많이 예뻐해 주셨거든요. 그래서 제 별명이 ‘백경삼’이었죠(웃음). 개막 이후 초반에 계속 선발출장했던 걸로 기억해요.”
민경삼 전 SSG 대표이사는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1990년 4월 10일 잠실 태평양전을 잊지 못한다. 그의 말처럼 개막 이후 3경기 연속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발 빠르고 수비가 탄탄하며 희생번트와 히트앤드런 등 작전수행 능력을 갖춘 선수를 선호하는 백인천 감독은 주전 3루수로 민경삼을 선택했다. 고졸 외야수 조필현과 함께 백 감독이 총애하는 선수였다. 그러면서 민경삼은 개막전에서는 8번타자, 이후 2번타자로 연속 선발출장하게 됐다.

1990년 4월 10일. 이날은 화요일이었지만 3개 구장 모두 오후 2시에 경기가 시작됐다. 당시엔 4월 말까지는 날씨가 쌀쌀하다는 이유로 개막 이후 한동안 주중에도 낮경기를 소화했다.
대구에서는 삼성 라이온즈(vs 롯데 자이언츠), 대전에서는 빙그레 이글스(vs OB 베어스), 잠실에서는 LG 트윈스(vs 태평양 돌핀스)가 홈 개막전을 치르는 날이었다.
LG는 역사적인 첫 홈경기이기에 대대적인 이벤트와 행사를 준비했다. 당시 이벤트 중에 눈에 띄는 것은 LG는 ‘트윈스’라는 팀 명칭에 착안해 쌍둥이 어린이들을 무표입장시켰다는 점이었다. LG는 이날 특별 제작한 책받침 1만 개와 사인볼 400개를 입장 관중에게 선물하면서 MBC 청룡에서 LG 트윈스로 넘어온 서울 홈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LG 선발투수는 김태원. 배재고-성균관대 출신의 김태원은 1986년 1차지명을 받고 입단했지만 잠재력을 터뜨리지 못한 미완의 대기였다.
불펜에서는 시속 150㎞대 강속구를 던져 “불펜의 선동열”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실전에서는 그런 공을 던지지 못해 ‘새가슴’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투수였다. 1986년 2승, 1989년 2승 등 프로 데뷔 후 4승에 그치고 있던 투수였지만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백인천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태평양 김성근 감독은 LG에서 1월말 트레이드로 영입한 오영일을 선발카드로 내세워 전의를 불태우게 만들었다.


김태원은 1회 시작하자마자 선두타자 김일권을 삼진으로 잡아낸 뒤 삼자범퇴로 깔끔한 출발을 했다.
그리고는 5회까지 볼넷 2개만 내줬을 뿐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치며 1990년의 반란(18승 투수로 도약)을 예고했다.
LG 타선도 반드시 첫 승을 신고하려는 듯 시작부터 집중력을 발휘했다. 전년도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었던 오영일을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였다.
선두타자 김재박이 중전안타로 출루한 뒤 2사 2루서 4번타자 김상훈의 중월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이어 5번타자로 나선 포수 서효인의 좌전 적시타로 2-0으로 앞서나갔다.
오영일은 여기서 신완근에게 마운드를 물려주고 강판했다.
LG는 4회말 선두타자 윤덕규의 볼넷으로 다시 찬스를 잡았다. 1사 2루서 9번타자 김동재의 좌월 2루타, 2사 후 민경삼의 중월 3루타로 4-0으로 달아났다. 이때 민경삼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그라운드 홈런)’을 노리며 홈까지 달리다 아웃됐지만 값진 타점을 올리면서 이날의 영웅이 되기 위한 복선을 깔았다.
그런데 5회까지 노히트로 역투하던 김태원의 구위가 6회 들어 갑자기 떨어졌다. 선두타자인 8번 이광길부터 3번타자 이선웅까지 5연속 안타를 맞았고, 1사 후 5번타자 슈퍼루키 김경기에 좌월 2루타를 내줘 순식간에 4-4 동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자 백인천 감독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 투수 김용수를 호출해야만 했다. 이날마저 역전패 당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용수는 6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해 일단 급한 불을 껐다.
LG는 7회말 선두타자 김재박의 2루수 쪽 내야안타와 민경삼의 희생번트로 만든 1사 2루에서 3번타자 노찬엽의 우전 적시타로 다시 5-4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8회초 김용수가 1사 후 4번타자 김동기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김경기에게 좌월 2루타를 맞으면서 5-5 동점을 허용했다.
이후부터는 또 다시 팽팽한 투수전. 소방수 김용수가 9회를 넘어 연장 10회, 11회, 12회, 13회, 14회초까지 역투를 펼쳤다.
태평양 마운드에는 6회부터 등판한 좌완 양상문이 김용수 못지 않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피칭으로 맞서고 있었다. 7회말 1실점을 했지만 연장 13회까지 LG 타선을 막아냈다.
운명의 14회말. LG 선두타자 윤덕규가 좌전안타로 포문을 열었다. 양상문의 팔 힘도 떨어지고 있었다. 조필현의 볼넷으로 무사 1·2루. 여기서 김동재의 희생번트를 잡은 태평양 1루수 김경기가 2루에 악송구를 하면서 LG는 무사 만루 황금찬스를 잡았다.
그런데 1번타자 김재박이 포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묘한 긴장감이 휘몰아쳤다. 이 찬스에서 점수를 못 내면 연장 15회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때 난세의 영웅이 탄생했다. 2번타자 민경삼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놓친 뒤 2구째를 공략해 유격수 쪽 강습 내야안타를 뽑아냈다. 3루주자 윤덕규가 만세를 부르며 결승득점을 올렸고, LG 선수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가 민경삼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오후 2시에 시작했던 경기는 오후 6시23분이 돼서야 끝났다. 장장 4시간 23분의 혈투. LG 트윈스라는 간판을 달고 신장개업한 뒤 최초로 승리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뽑아낸 첫 승이었다.

8.2이닝 동안 127구 3안타 5볼넷 7탈삼진 1실점으로 역투한 김용수는 LG 트윈스 시대 최초의 승리투수가 됐다.
어쩌면 이날의 투구는 ‘특급 소방수’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김용수가 1990시즌 도중 선발로 전향하고, 선발 정삼흠이 마무리를 맡게 되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는지 모른다.
백인천 감독의 뇌리에 김용수가 완투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 각인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한편 신일고-고려대 출신으로 1986년 1차지명을 받고 MBC 청룡에 입단한 민경삼은 역사적인 LG 트윈스 시대 최초의 결승타의 주인공이 됐다. 그것도 LG 트윈스 최초 끝내기 안타였다.
따지고 보면 1982년 MBC 청룡 최초의 경기에서 이종도의 연장 10회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이겼는데, 1990년 LG 트윈스 시대에도 연장 14회말 민경삼의 끝내기 안타로 첫 승을 거뒀으니 일맥상통하는 스토리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유격수 쪽으로 결승타를 치고 엄청난 환영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날 데일리 베스트로 뽑혔는데 LG 트윈스 첫 승리라 상금도 두둑하게 받았어요. 100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돈이었죠. 아무튼 LG 최초 수훈선수 상금을 받은 주인공은 저였습니다. 하하.”
민경삼 전 SSG 사장은 자신의 프로야구 선수인생의 모태가 된 LG 트윈스 선수 시절, 그래도 역사 하나를 남긴 데 대해 추억과 자부심을 안고 있었다.
한편 LG는 이날의 극적인 끝내기 승리 여세를 몰아 개막 2연패 후 5연승을 달리며 공동 1위로 치고 나간다. LG 트윈스 시대 앞으로 일곱 색깔 무지개가 펼쳐지는 듯했다.
[엘팬알백] ⑱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