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형 / 와인소풍 대표
세계 1위의 베스트 셀러는 성경이다.두 번째는 섹스피어이고.그렇다면 세번째 베스트 셀러는?
놀랍게도 바로 범죄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대가 영국 작가 애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1890~1976) 작품이다.그녀는 평생 주로 추리소설만을 썼는데 1920년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The Mysterious Affairs at Syles)을 시작으로 56년 동안 줄기차게 책을 써냈다.
이 중 56편이 장편소설이고 150편 이상이 단편소설 형태였는데, 이 중 상당수가 14권의 단편 소설집으로 출판됐다. 그녀는 희곡 약 20편도 집필했는데 그 중 ‘쥐덫(The Mousetrap)’은 1952년부터 지금까지도 공연 중이어서 세계 최장기 공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녀가 메리 웨스트매컷(Mary Westmacott)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로맨스 소설 6편까지 합하면 장편, 단편, 희곡, 로맨스를 모두 합쳐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남긴 셈이다.그녀의 소설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돼 판매되었는데 세계 누적 판매 부수가 20억부 이상(영어 외 번역까지 포함하면 30~40억부라고 추정되기도 한다.)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을 정도다.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잘 알고 있는 포와르 경감(Hercule Poirot)과 미스 마플(Miss Marple)이 바로 그녀가 탄생시킨 명탐정 인물들이다. 그녀는 이러한 문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데임(Dame)이라는 호칭이 부여받았다. 데임은 영국에서 남자의 Sir에 해당하는 훈장을 받은 여성에게 붙는 직함을 말한다.
그런 그녀의 작품 속에 샴페인이 종종 등장한다.
무엇으로? 요란한 파티와 상류사회의 상징으로! 여기까지는 신분 계층을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기에 다른 문학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른 문학 작품들과는 달리 그녀의 작품에서는 샴페인이 살인의 도구나 사건의 중심 요소로 등장한다. 그것도 상류사회에서의 주로 독살하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샴페인이 등장하는 그녀의 추리 소설에서 추리 소설 속에서는 샴페인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 알아보자.

그녀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서는 빛나는 청산가리로 번역된 '스파클링 청산가리'(Sparkling Cyanide)에서는 샴페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 소설은 독살된 부자 여상속인과 남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제목에서 스파클링은 두가지 의미를 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하나는 ‘반짝이는’ ‘빛나는’ 이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발포성 와인인 샴페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영어권이니 스파클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샴페인이었으니 샴페인이라고 해도 되는데 굳이 스파클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때문이다.
이 소설은 1945년 2월 미국에서 '기억된 죽음'(Remembered Death)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출판됐고, 같은 해 12월에 영국에서는 “Sparkling Cyanide”이라는 원작명으로 출판됐다.
1947년에는 프랑스판이 발행되는데 그때의 제목은 '샴페인 살인사건'(Meurtre au champagne= Murder by Champagne)이었다. 아마 프랑스니까 샴페인을 내세우는 것이 자국민의 이해를 쉽게 하고 호기심을 불러킬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소설은 1937년 한 잡지에 게재된 단편 소설 '노란 붓꽃'(Yellow Iris)의 확장판으로, 단편 소설 원작에서는 포와르 경감이 수사를 이끌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조니 레이스 대령(Colonel Johnny Race)으로 탐정역이 바뀌었다.
이 소설은 범인의 정체도 바꾸었는데, 이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각색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모티브는 그대로 가되 등장인물이나 등장인물의 직업 등을 바꾸는 식이다.

1983년, CBS는 이 이야기를 현대를 배경으로 TV 영화로 각색했는데 이 때 레이슨 대령은 삭제됐다고 하고 20년 후인 2003년에는 영국에서 다시 TV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작품 역시 현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원작을 바탕으로 한 부분은 미미했다고 한다. BBC 라디오 4는 2012년 이 이야기를 3부작으로 각색하여 방영하기도 했을 정도로 그녀의 작품은 다양하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2013년에는 프랑스에서 각색되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원본과는 다르게 독살당한 주인공의 부자 상속녀가 아니라 영화배우 스타로 각색됐다.

3개국의 책의 표지 그림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우선 영국와 미국은 샴페인 잔이 다르다.
영국은 꾸페형, 미국은 그냥 와인 잔이다. 튤립형도 아닌. 잔에 담긴 것도 레드 와인처럼 보인다. 프랑스는 역시나 샴페인 코르크 마개로 샴페인임을 확실히 드러냈다.
샴페인을 주로 수입해서 마시는 나라냐 생산국이냐의 차이도 보여주고 1945년만 해도 영국이 샴페인 문화에서는 미국보다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청산가리의 화학적 정식 명칭은 시안화 칼륨(Potassium cyanide)인데 이게 샴페인에 들어가도 투명하고 향이 강한 것도 아니라서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청산가리에서는 무슨 향이 날까? 사람들 중 40% 정도는 청산가리 향을 맡지 못하고 남성은 여성보다 더 못 맡는다고 한다.
맛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청산가리를 먹고 살아남아 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시안화 수소 형태로 향은 맡을 수 있는데 추정으로는 향긋한 향으로 달콤할 것이라고 한다.
청산가리는 일반적으로 아몬드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흔히 먹는 아몬드가 아니라 생아몬드 향이고 혹자들은 수영장 염소 소독제 비슷한 향이라고도 한다.
청산가리는 의외로 우리가 접하는 과일에 그 성분이 들어 있다. 덜익은 매실, 체리, 앵두, 살구, 복숭아, 사과 등의 씨에 들어 있는 성분이기도 하고 은행도 한번에 30~40개 이상 먹지 말라는 것도 바로 이 성분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은 포도씨에도 들어있다. 빵 속에 들어있는 앙금도 부패하면 소량의 이 성분의 화합물이 형성된다고 하니 오래된 앙금빵은 먹지 않은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는 독자가 샴페인을 단순히 축하의 음료라고 여기지 않도록 하는 한편, 긴장감과 의문을 더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즉 그녀의 작품에서 샴페인은 범죄와 미스터리를 강화하는 매개체로 빈번히 사용되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 직접적인 살인 도구가 아닌 경우도 많다. 그럴 때 샴페인은 다른 문학 작품들처럼 상류층의 일상 생활이나 주말파티나 크리스마스 파티 등 파티에 사용된다. ‘할로윈 파티'(Hallowe'en Party, 1969), ‘죽은 자의 어리석음'(The Hollow, 1946), ‘푸아르의 크리스마스'(Hercule Poirot's Christmas, 1938)에 그런 식으로 등장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읽거나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샴페인 한잔을 즐기는 것도 나른해지기 쉬운 초여름을 이겨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