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는 가상화폐 3600兆 육박…탈세·외환 우회 ‘사각지대’ 여전

스테이블코인 급증에 조세·금융안정 흔들…디지털자산법 지연 속 규제 사각지대 확대
[사진=AI이미지/chat gpt]

비트코인 스테이블코인 등 국경을 넘나드는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까지 이와 관련한 관리·감독 방향조차 나오지 않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자금 이동은 은행망을 거치지 않고도 송금·결제가 가능한 구조여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그만큼 기존 조세·외환·금융안정·범죄 대응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2월로 계획됐던 디지털자산기본법안 발의마저 연기되면서 제도 공백 속 소비자 피해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기술 발전과 시장 발전 속도에 비해 정부의 감독 체계와 세제 정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규제 사각지대로 인한 각종 부작용과 문제가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이 키운 암호화자산 거래, 2.5조달러 ‘국경’ 넘어 자금이동 확대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CBCF)는 2024년 말 기준 약 2.5조달러(약 3591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2019년 이후 점진적으로 확대되다 2021년 급증했고 2022년 시장 조정으로 줄었다가 최근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무엇보다 최근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건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가상화폐가 아니라 USDT·USDC 등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가상자산의 성격이 ‘투자’ 중심에서 ‘결제·정산 수단’으로 무게중심이 바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과 투자 사이클에 크게 좌우되는 가상화폐와 달리 시장 조정 국면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가 유지되며 국경간 거래 확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실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국경간 이전은 중앙화 금융기관을 경유하는 기존 체계와 달리 분산 네트워크에서 처리돼 자본 이동의 경로·속도·중개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CBCF)는 2024년 말 기준 약 2.5조달러(약 3591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한 자금 이동의 경우 감독 부재로 인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온체인 기록은 거래 내역을 남기지만 그 자체에 소유자의 거주성이나 신원 정보가 내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래소·수탁기관 등 오프체인 정보는 AML/KYC 규정 준수를 통해 신원 정보를 포함하지만 그 범위는 제도권 사업자에 한정된다. 거래가 개인 지갑 간 전송이나 탈중앙화금융(DeFi)로 이동할수록 통계·감독·과세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 자체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가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 기존 국제결제 체계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은행 중심 결제망을 전제로 설계된 외환 및 자본거래 관리 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역시 스테이블코인 확산과 디지털 결제 인프라 변화에 대응해 외환제도의 정합성을 점검하고, 국경간 결제 효율성 제고와 유동성 관리 전략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균열 우려는 커지는데 규제는 ‘국경 안’…입법 지연 속 사각지대 여전

국경간 암호화 자산 거래가 늘어날수록 조세·외환·금융안정·범죄 대응 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세 측면에선 거래 경로가 복잡해질수록 과세당국이 자금의 출처와 이동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해외 거래소, 디파이, 개인 지갑 간 이전이 결합하면 양도차익 포착은 물론 상속·증여 등 자산 이전 과정에서 관할권 판단이 흐려질 수 있고, 국가 간 제도 차이를 활용한 규제 차익도 커질 수 있다. 단발성 탈세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세입 기반과 조세 형평을 흔드는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불법자금과 범죄 대응에서도 사각지대 논쟁은 반복되고 있다. 국내에서 적용 중인 트래블 룰, AML/KYC 같은 장치는 중앙화된 가상자산사업자(VASP)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개인 지갑과 디파이로 거래를 추적하는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수사기관의 국제 공조가 늦어지거나 국가별 증거·정보 제공 범위가 엇갈릴 경우 범죄 자금 추적이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외환과 금융안정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암호화자산을 통한 비공식적 국경간 자금 이동 확대는 외환시장 변동성과 금융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거론되고 있다. 기존 외환건전성 관리 체계가 변화된 거래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을 거치지 않는 자금 이전이 커질수록 사전 신고·사전 규율 중심의 외환관리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제적으로 결제·정산 인프라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결제은행(BIS)가 제시한 ‘통합 원장’과 ‘프로젝트 아고라’는 토큰화 예금, 도매형 CBDC, 민간 디지털 자산을 단일 결제·정산 레이어에서 상호운용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민간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중앙은행이 보장하는 지급 확정성을 결합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다.

▲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선 기존 은행 중심 관리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 위원장.[사진=연합뉴스]

만약 이런 구조가 정착되면 국경간 결제 비용과 결제 리스크가 축소될 수 있지만 동시에 외환거래가 중개은행 중심의 전통적 구조에서 네트워크 기반의 실시간 유동성 교환 구조로 일부 전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실상 외환시장 스프레드, 유동성 공급자 구성, 결제 리스크 관리 방식 등 금융시장 구조 전반에 걸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제도 대응이 ‘국경 단위’에 머무는 동안 시장은 이미 국경을 건너 조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특금법 개정과 트래블 룰, 2024년 7월 시행된 이용자 보호법 등으로 AML·투자자 보호 틀을 강화해왔지만 감독 권한이 국내 신고 사업자에 집중되는 등 구조적 한계가 여전하다.

해외 거래소나 디파이를 통한 거래는 직접 규율이 어려운데다 이 영역이 커질수록 과세·외환·불법자금 대응은 국제 공조와 정보 교환 체계에 더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여당이 디지털자산기본법안 발의를 연기한 배경에 은행 중심 컨소시엄 구조, 거래소 대주주 지분 규제 등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선 기존 은행 중심 관리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 식별과 정보 확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온체인 데이터 분석과 오프체인 고객확인(KYC) 정보를 결합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체계를 정교화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연계하는 정보 공유 메커니즘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단일 국가의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요국 간 감독 기준의 정합성 확보도 중요한 요소로 지목된다.

조세 분야에서는 과세 인프라 정비가 요구된다. 국내외 거래소에 대한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해외 플랫폼을 통한 거래까지 포괄할 수 있는 국제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자산 과세와 관련한 국제 공통 기준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자금이 규제가 느슨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의 확대는 되돌리기 어려운 흐름으로 평가되는데 기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규제는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 간 암호화자산 거래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향후 금융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고 진단했다.

글=임현범 르데스크 기자

☞ 기사 속 Q&A
Q1.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 규모는 얼마나 되나?
A. 2024년 말 기준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CBCF) 규모는 약 2.5조달러(약 3591조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2019년 이후 증가세를 보였으며, 2021년 급증했다가 2022년 시장 조정으로 감소한 뒤 다시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Q2. 최근 거래 확대를 주도한 자산은 무엇인가?
A. 최근 국경간 거래 확대는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등) 이 주도하고 있다. 2022년 이후 스테이블코인의 국경간 거래 규모가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비연동형 자산보다 크게 증가했다.

Q3. 국경간 암호화자산 거래가 기존 금융체계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A. 전통적 국제자금 이동은 은행을 통한 결제·정산망을 거친다. 반면 암호화자산은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지갑 주소 간 직접 이전이 가능해 은행망을 우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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