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곳이 없는 것일까? 일할 생각이 없는 것일까?

[이완의 대한민국 청년보고서]
천안시 인구 70만명의 청년 실업
놀고 싶어서, 일하기 싫어서 노는 걸까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의 기회 격차 탓
태어난 후에도 빈곤의 스트레스 쌓여
더 담대한 기회 재분배 대책 마련돼야

왜 이렇게 나태해졌나

올해 7월 한 달 동안 만 20세에서 39세 청년 70만 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아이를 기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일하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닌데, 천안시 인구보다 많은 청년이 어떤 경제활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중 태반은 아예 일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나태(?)할까.

이처럼 쉬는 청년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7월 수치는 2010년 7월 수치보다 28만 명 많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 7월보다 15만 명 많다. 그 사이에 청년 인구는 꾸준히 줄었으니, 비율로 따지면 증가폭이 더 뚜렷할 것이다. 방역을 위한 봉쇄는 진작 끝났지만, 수십만 청년이 노동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자료= 통계청

경쟁보다 더 무서운 장벽 '기회 격차'

흔히 사태가 이렇게 된 원인으로 '경쟁'을 지목한다. 경쟁 사회가 청년들을 지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쟁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경쟁률이 높아도 기어코 도전했을 것이다. 의대 입시가 보여주듯, 경쟁률이 높아도 지원자가 줄지 않는 사례는 분명 있다.

청년들을 지치게 하고 돌아오지 않게 한 것은 경쟁보다는 '기회 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8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가정은 지방보다 교육비를 1.8배 더 많이 지출한다. 서울 안에서 고소득층은 저소득층에 비해 2.3배 더 많이 지출한다. 이런 교육비 격차가 자녀 학력의 70% 이상을 결정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강남 3구 졸업생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의 4%에 불과하지만, 서울대 진학생의 12%를 차지한다. 교육받을 기회의 격차가 학력 차로 대물림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모든 것이 유료이고, 기회도 마찬가지다. 자연히 소득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회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 사회정책이 필요하지만, 한국은행 보고서가 보여주듯, 우리나라는 효과적인 사회정책을 마련하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 상당수는 주변의 높은 기대에 떠밀려, 쉬지 않고 공부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아동, 청소년의 행복 지수는 항상 하위권이다. 그렇게 공부했어도 평생 들인 교육비를 회수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

2022년에 미래에셋이 발표한 미래에셋 투자와 연금 리포트 제54호에 따르면, 이제 정년에 맞춰 은퇴하는 직장인은 10%도 되지 않는다. 직장인은 한 직장에서 평균 12년 정도 일하고 은퇴하거나 이직한다. 요즘 직장인은 서른에 입사해서 마흔에 퇴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하는 동안 먹고살만한 소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다수는 교육비로 얼마를 쓰든 중소기업에 취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소기업 직원 태반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월급만 받는다.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30대 초반 대기업 직원들의 중위소득은 월 455만 원인데, 같은 나이대 중소기업 직원들의 중위소득은 269만 원이다. 한 기업에서 중년까지 잘 버틴다고 해도, 중소기업 직원의 절반은 한 달에 300만 원을 받지 못한다.

한 쪽 저울에는 평생 소모한 교육비와 어린시절을 올려야 하는데, 반대쪽 저울에는 월급도, 전망도 불안정한 일자리들이 올려져 있다. 이제 취업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 된 것이다. 노력에서 보람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은 탈진의 주 원인으로 통한다. 따라서 청년은 원해서 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어쩌면 탈진 팬데믹에 휘말린 것일지도 모른다.

만 20~39세의 청년 실업자가 올해 7월 기준으로 70만명이 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들은 장기적으로는 빈곤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회 격차'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대학 등록금을 억제하고 국가장학금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서 비용을 낮추는 데에 주력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행 보고서는 "주요 대학이 지역별 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수험생을 대상으로 삼는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기회 격차의 출발선은 엄마 뱃속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발달심리학자 대니얼 키팅은 "우리 몸에는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유전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엄마가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뱃속 아이에게도 흘러가고, 이 때 아이의 스트레스 조절 유전자는 엄마의 스트레스 탓에 기능을 멈춰버릴 수 있다. 그 결과, 아이는 스트레스에 잔뜩 예민해진 채로 태어나서 학습 능력을 제대로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가진 채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태어난 후의 스트레스

아이가 태어난 후라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어릴 때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도 스트레스 조절 유전자가 기능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가 되기도 전에 학대를 당하거나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면, 망가진 유전자 탓에 꽤나 험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할 수있다. 이 때 적절하게 치료받지 않으면, 이후에는 망가진 유전자를 회복하기란 극도로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무어는 "사회적 지위의 흔적이 유전자에 남는다"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가정폭력이나 빈곤을 겪으면, 아이의 출발선은 태어나기 전부터 뒤로 밀려난다. 태어난 후에 받은 스트레스도 위험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산모와 아동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았다. 특히 상대적인 빈곤감과 학업 스트레스 사이에 끼이도록 방치했다. 따라서 요즘 세대가 나약하다면, 의지력이 아니라 위험한 양육 환경 탓일 가능성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의욕을 타고난다. 능력을 길러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심리학에서 인간의 기본 욕구로 통한다. 그래서 70만이나 되는 청년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의욕을 억누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 문제의 핵심은 기회 격차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높은 교육비와 지나치게 불평등한 소득이 만나서 기회 격차를 낳았다. 그 영향은 유전자에도 남았다.

이제는 어린시절부터 보호하는, 더 담대한 기회 재분배가 필요하다. 이미 성인이 된 청년을 위해 무상교육과 근로장려금 등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미래의 청년을 위해 가정폭력과 빈곤을 근절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의도치 않은 휴식이 계속될 것이다. 그 손해는 결국 사회 전체의 몫이다.


이완은 여러 정치 사상을 소개해서, 인물 중심 정치를 생각 중심 정치로 바꾸고 싶어한다. 의심의 힘을 믿는 회의주의자, 경제를 최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하게 재조직하고 싶은 사회주의자다. <더 칼럼니스트> 창간 1주년 기념 칼럼 공모전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