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마을에 발전기금 500만원 냈는데.." 이장이 또 손을 벌리길래 결단했다

낯선 곳에 새로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누구나 몸을 낮추게 됩니다. 이웃과 잘 지내고 싶어 조금 손해를 봐도 웃으며 넘어가고, 부당하다 싶어도 꾹 참습니다. 그런데 그 낮춘 몸을 만만하게 보고 끝없이 손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전북 순창에 사는 이정희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30년 동안 민원 업무를 보다 퇴직했습니다. 교사로 정년을 맞은 남편과 함께 3년 전 순창의 작은 산골 마을로 귀농해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부부는 오래전부터 은퇴하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퇴직금과 서울 아파트를 정리한 돈으로 마을 끝자락의 밭 딸린 집을 샀습니다. 처음 마을에 들어서던 날, 부부는 손을 맞잡고 새 출발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이사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마을 이장인 박 씨가 찾아왔습니다. 일흔을 앞둔 박 이장은 마을에서 오래 이장을 맡아 온 사람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오는 집은 다 마을 발전기금을 냅니다. 500만 원이오. 그래야 마을 사람들이 식구로 받아 줍니다."

정희 씨는 큰돈이라 망설였지만, 남편은 "처음부터 얼굴 붉히지 말자"며 돈을 건넸습니다. 박 이장은 영수증도 없이 봉투를 챙겨 갔습니다. 부부는 그 돈으로 이웃이 되는 셈 치자며 서로를 달랬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다며 찬조금 50만 원, 경로당 보일러를 고친다며 30만 원, 마을 버스 정류장을 새로 짓는다며 10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부부는 그때마다 군말 없이 돈을 냈습니다.

그사이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애썼습니다. 블루베리를 처음 딴 날에는 집집마다 한 상자씩 돌렸고, 남편은 경로당 할머니들께 휴대전화 쓰는 법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할머니들은 "서울 선생님 부부가 들어오니 마을이 환해졌다"며 반겼습니다.

올봄, 박 이장이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부부의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 길이 사실 마을 땅이오. 계속 쓰려면 해마다 사용료로 300만 원을 내시오. 안 내면 길을 막을 수밖에 없소."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군에서 귀농인에게 지원하는 저온 창고 보조금을 신청하려면 이장의 확인이 필요했는데, 박 이장은 사용료를 내기 전에는 도장을 찍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정희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시끄럽게 하지 말고 그냥 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희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계속 내니까 계속 달라는 거예요. 30년 동안 민원 창구에서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봤어요. 이번엔 제대로 확인하고 갑시다."

다음 날 정희 씨는 군청을 찾아갔습니다. 먼저 지적과에서 집 앞 진입로의 지적도를 떼어 보았습니다. 그 길은 마을 땅도, 박 이장의 땅도 아닌 군이 관리하는 도로였습니다. 누구도 사용료를 받을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정희 씨는 귀농귀촌 지원센터에도 들렀습니다. 담당자는 마을 발전기금은 법으로 정해진 돈이 아니라 마을이 자율로 걷는 기부금이라 강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보조금 신청에 이장의 도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안내도 받았습니다.

정희 씨는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낸 돈을 날짜별로 정리했습니다. 발전기금 500만 원, 찬조금과 공사비까지 모두 합쳐 680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경로당 할머니들께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르신들도 마을 발전기금을 내셨어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던 정희 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정해진 발전기금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할머니는 경로당 보일러 공사를 한 적이 없다고 했고, 버스 정류장은 군에서 지어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마을 회계 장부였습니다. 정희 씨가 마을 총무에게 장부를 보여 달라고 하자, 지난 3년 동안 부부가 낸 돈은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680만 원은 마을이 아니라 고스란히 박 이장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장부를 덮은 총무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장님이 새로 온 집 돈은 따로 관리한다고 하셨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정희 씨는 마을 총무와 노인회장을 찾아가 마을 총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총회 날,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 앞에서 군청에서 떼어 온 지적도와 그동안 돈을 건넨 날짜를 적은 표를 차분하게 펼쳐 놓았습니다.

"저희는 이 마을의 식구가 되고 싶어서 3년 동안 달라는 대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마을 장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 앞길은 군이 관리하는 도로라 사용료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회관 안이 술렁였고, 박 이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습니다.

박 이장은 "서울 사람이 시골 인심을 모른다"며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때 경로당 할머니 한 분이 일어섰습니다. "인심을 모르는 건 이장이지. 우리 마을에 이런 사람들이 들어온 게 복인데, 그 복을 쫓아내려고 하나."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총회에서 주민들은 박 이장의 해임을 결정했습니다. 박 이장은 일주일 뒤 680만 원이 든 봉투를 들고 정희 씨 집을 찾아왔습니다. "내가 욕심이 과했소. 새로 들어온 사람들한테는 늘 이렇게 받아 왔소." 정희 씨는 돈을 받은 뒤 조용히 말했습니다. "앞으로 이 마을에 들어오는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마세요."

정희 씨는 돌려받은 돈 가운데 500만 원을 정식으로 마을 장부에 올려 경로당 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처음 드릴 때도 마을을 위해 드린 돈이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마을에 쓰이게 하고 싶어요." 할머니들은 정희 씨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새 이장은 저온 창고 보조금 신청서에 바로 확인 서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마을 총회에서는 정희 씨에게 마을 총무를 맡아 달라는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정희 씨는 마을 장부를 한 달에 한 번 회관 게시판에 붙이겠다는 약속과 함께 총무 일을 맡았습니다.

올여름, 정희 씨는 마을 할머니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순창 고추장을 풀어 끓인 청국장 한 냄비에 텃밭에서 뜯은 나물 몇 가지가 전부인 소박한 밥상이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밥을 크게 한술 뜨며 말했습니다. "이제야 진짜 우리 마을 사람이 됐네." 정희 씨는 웃으며 할머니 그릇에 청국장을 한 국자 더 떠 드렸습니다.

심훈의 『상록수』에서 주인공들은 농촌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과 함께 땀 흘리며 마을을 바꾸어 갑니다. 마을을 지키는 힘은 한 사람의 권세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옵니다.

새로운 곳에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무엇이든 참고 넘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요구 앞에서는 감정 대신 서류와 기록으로 차분하게 확인하는 것이 나와 이웃 모두를 지키는 길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다면 먼저 관공서에 가서 사실부터 확인해 보세요.

올가을 정희 씨는 남편과 함께 강천산 계곡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나무마다 단풍이 붉게 타올랐고, 맑은 물 위로 오후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두 사람은 출렁다리 위에 나란히 서서 해가 기울 때까지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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