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에 이르러, 더 선명해진 재난의 정서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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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이전의 일본인들은 '일본 사회가 이대로 계속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오고 가는 행동'이나 '너무 늦어버린 기차' 같은 설정 말이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에 풍부한 의미를 더하려 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이후 그러한 전제는 무너졌다( 〈허핑턴포스트 재팬〉, 2017년 1월)."
"〈언어의 정원〉(2013)을 만들 때만 해도 장마가 '계절의 정서'를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재해의 징후'가 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비의 쓰임새가 달라졌다"라고 말하는 인터뷰를 그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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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신카이 마코토
목소리 출연:하라 나노카, 마쓰무라 호쿠토, 후카쓰 에리
“동일본 대지진 이전의 일본인들은 ‘일본 사회가 이대로 계속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내 작품에서도 변하지 않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오고 가는 행동’이나 ‘너무 늦어버린 기차’ 같은 설정 말이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에 풍부한 의미를 더하려 했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이후 그러한 전제는 무너졌다( 〈허핑턴포스트 재팬〉, 2017년 1월).”
〈너의 이름은〉(2016)이 크게 흥행한 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인터뷰. 그제야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늘 ‘초속 5㎝’의 속도로 ‘언어의 정원’을 서성이던 그의 주인공들이 전과 달리 서로를 찾아 뛰고 또 뛰는 이유, 포기하고 돌아서는 게 익숙했던 그의 주인공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잡은 손을 쉽게 놓지 않는 까닭, 그 인터뷰 덕분에 비로소 알아챌 수 있었다.
〈날씨의 아이〉(2019)에서도 재난의 감각은 이어졌다. 그의 시그니처라 할 만한 구름과 비의 표현도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언어의 정원〉(2013)을 만들 때만 해도 장마가 ‘계절의 정서’를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재해의 징후’가 되어버렸다. 자연스럽게 비의 쓰임새가 달라졌다”라고 말하는 인터뷰를 그때 보았다.
새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 이르러 재난의 정서는 더 선명해졌다. 혜성으로, 날씨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이번에는 직접, 제대로, 분명하게 동일본 대지진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야기의 출발점은 도호쿠가 아니라 규슈. 엄마 없이 이모랑 사는 열일곱 살 소녀 스즈메(하라 나노카 목소리).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 등굣길에 여느 때와 다른 만남이 생긴다.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낯선 청년 소타(마쓰무라 호쿠토 목소리)의 질문과 함께 스즈메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들이 찾아가는 폐허마다 문이 있다. 열린 문틈으로 재난의 기운이 새어 들어온다. 규슈, 시코쿠, 고베, 도쿄… 일본 전역을 돌아 다니며 필사적으로 문을 닫는 이야기.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이야기. 아직 닫지 못한, 끝내 닫힐 수 없는, 어떤 이들의 슬픈 문 앞으로 관객을 데려가는 영화.
“다녀오겠습니다.” 이 말을 현관에 남겨두고 사람들은 문을 열고 나간다. “다녀왔습니다.” 이 말을 집 안으로 밀어 넣으며 사람들은 문을 닫고 들어온다. 그렇게 각자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하루를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사람이 “다녀왔습니다” 하며 돌아올 기회를 빼앗겼을 때,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간 사람이 영영 그 문을 닫으며 돌아오지 않을 때, 그렇게 닫히지 못한 문틈으로 소중했던 일상은 연기처럼 빠져나간다. 남은 이들의 마음이 폐허가 된다.
결국, 그 문을 닫아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다녀왔습니다, 그 인사를 대신 전하러 가는 여정이라고 느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다짐했던 이들은 많다. 하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이토록 아름답게, 이번에도 역시 많은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상업영화의 화법으로, 재난과 참사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감독은 신카이 마코토뿐이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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