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KCB '직장 내 괴롭힘'... 그후 1년
신용정보회사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서 자아비판 워크숍이 열린 것도 벌써 1년 전이다. KCB는 작년 9월 자신 잘못과 부족한 점을 자기 비판 반성문으로 작성해 동료들 앞에서 읽는 행사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일부 직원은 쓰려져 병원에 호송됐다. 블라인드 앱을 통해 KCB의 기업문화가 알려지면서 놀라는 이가 적지 않았다. 발상 자체도 창의적(?)이었지만 관련 워크숍 개최를 허락한 회사가 더 주목받았다.
KCB는 2005년 2월에 설립됐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신용조회 및 신용조사와 이에 부수하는 업무를 주로 하는 곳이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고 안정적인 금융산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서로의 신용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600억원과 300억원을 웃돈 알짜 회사다. 직원이 300여명, 자산은 1200억원을 넘는다. 국내 대형금융기관들이 과점주주다 보니 영업활동에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최대 주주는 한국기업평가(지분율 10.99%)며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서울보증보험 우리은행 하나은행이 각각 지분 9%씩 갖고 있다. 현대캐피탈 신한은행 삼성카드 등도 주주다. 과점 주주들은 주요 경영진을 추천 임명하고 최고경영자도 돌아가며 맡는다.
세간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금융감독원 눈치만 살핀다. 지난해 '자아비판 워크숍' 개최가 알려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살피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은 뒷전이고 어떻게 알려졌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최고 경영진에게 관련 사실을 정확히 보고해야 하는 인사가 사실을 왜곡한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이 관계자가 한 얘기를 들은 직원들은 다른 곳으로 이야기를 퍼 날랐다.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고 피해만 양산됐다. 일부 직원들을 '흉악 범죄자'로 낙인하고, 담당 업무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선의의 피해자들이 늘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연말 인사에서 승진했다. 이는 무관심했던 직원들도 회사의 불합리한 행태를 지적하고, 사측에 관대했던 노동조합마저 지난 1월 피켓 시위에 나서게 만드는 도화선이 됐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해 달라는 상식적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원들은 수개월에 걸쳐 시정을 요구했다. 고용노동부가 나서 이달 가해자와 피해자의 합의를 시도할 것이란 소식이 들려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7월 16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5년이 넘었다. 직장에서 괴롭힘 사건 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2019년 7월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에 포함됐다. 근로기준법 76조 2항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금지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때 조사 의무를 사용자한테 지웠지만 가해자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내용은 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회사와 사용자는 적극적인 책임으로 인식하지 않고 직원과 직원 사이 갈등으로 치부한다. 문제 해결보다 외부로 내용이 어떻게 알려졌는지 찾는 데만 혈안 돼 애꿎은 직원들의 메일과 일과를 살핀다. 노무사와 법무법인을 고용해 '셀프 조사'를 벌여 문제없다고 종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지난 1년 KCB가 한 행동과 오버랩되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기준은 상대적이겠지만 좋은 직장이란 부당한 대우 없이 직원들이 본인 업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곳이다. 연봉을 많이 주거나, 해당 조직에 속함으로써 사회적 평판이 올라가거나, 배울 수 있는 선후배들이 많은 곳이 이런 곳으로 꼽힌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힘든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KCB는 어디에 속할까.
홍정표 산업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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