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전주기 안전관리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배터리 인증제 도입과 관리 시스템 강화, 소비자 교육 등 안전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할 경우, 반복되는 화재 사고와 인식 저하로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용선 국토교통부 자동차정책과장은 지난 8일 제주 서귀포시 제주신화월드에서 열린 '글로벌 e-모빌리티 네트워크 포럼'에 참석해 "정부는 전기차 생태계 전반의 안전 정착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배터리 제조부터 폐기까지 관리하는 전주기적 체계를 마련하고, 국민이 전기차를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과장은 안전정책을 크게 제작단계와 운행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제작단계에서는 올해부터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정식 도입해, 차량 출시 전에 열적·화학적·기계적 안전성을 검증하도록 하고 있다. 또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의 성능을 평가해 공시하고 있다.
국토부는 자발적 안전 조치를 취한 제작사에 대해 과징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하는 제도도 함께 운영 중이다. 운행단계에서는 전기차 무상점검 서비스와 배터리 식별번호 등록제, 그리고 BMS 기반의 소방 알림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올해 4만대 규모로 시범운영되고 있으며, 내년에는 이를 10만대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창호 현대차·기아 기술연구소 배터리성능개발실장은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배터리이며, 이 경쟁의 본질은 결국 '안전 확보'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다중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객의 절대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BMS는 주차, 충전, 주행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전압, 전류, 온도를 진단해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차량 제어 및 긴급 정비 유도까지 연결된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기술을 통해 배터리의 차별화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종욱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배터리 화재 안전성을 둘러싼 기술 개발 흐름을 소개하며 "고전압 배터리는 에너지 공급과 출력 성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부품이지만, 동시에 열폭주로 인한 화재 위험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기술개발은 화재 예방부터 발생 이후 확산 억제까지 전주기적 안전 강화를 목표로 다층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며 "예방 단계에서는 BMS를 활용한 이상 감지 및 경고 시스템, 셀 내부의 열적 보강, 팩 내부의 확산 방지 기술 등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선 제도 정비 필요성과 범부처 협업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이광범 법무법인 세종 고문은 "현재 BMS 경고 방식이 제작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세부 기준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며 "어떤 제조사는 주차 후에도 BMS가 배터리 상태를 모니터링하지만, 일부 업체는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기능 요건과 감지·알림 시스템을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최영석 원주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지금까지는 전기차 보급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환경부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돼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며 "국토교통부는 건축물과 연계된 충전 인프라와 주차장 내 설치기준을 맡아야 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차 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집중해야 하며, 행정안전부는 재난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제12회 국제e-모빌리티엑스포'의 사전 공식행사로 진행된 이번 포럼은 세계e-모빌리티협의회(GEAN) 주최로, 국제e-모빌리티엑스포 조직위원회, 한국자동차기자협회, 한국자동차모빌리티안전학회가 공동 주관해 개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