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우파·페미니즘으로 역주행 예능을 만든 권성민 PD

조회수 2024. 6. 2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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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역주행 기록’을 썼습니다. OTT 채널 웨이브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2024년 1월26일 첫 화가 공개돼 3월까지 총 11부작이 올라갔어요. 재밌는 건 3월 직후 오히려 시청자 수가 늘었다는 거예요. 웨이브의 일일 신규 유료 가입 견인 지수가 이전 대비 4배 이상 늘었어요.

최근엔 백상예술대상 후보에 오르며 그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소감으로 메인 PD는 이런 말을 했어요. “시대가 이런 이야기를 필요로 했을 뿐이다.”

예사롭지 않은 소감의 주인공은 권성민 PD예요. 벌써 12년 넘게 예능을 만들고 있죠. <가시나들>, <톡이나 할까?>,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까지. 그가 만든 콘텐츠에는 ‘양극의 세계가 손을 맞잡는 힘’이 있습니다. 권성민 PD를 만나 자세히 이야기 나눴어요.


Chapter 1. 이야기 중독자, 예능 PD를 택한 이유

권 PD는 유년 시절의 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화 그리는 거 아니면 책 읽고 있던 애.’ 이야기를 달고 살았어요. 초등학생 시절에는 캐릭터를 상상해 판타지 만화를 그렸죠. 그걸 옆 반, 옆옆 반 친구들까지 돌려봤대요. 중학생 때는 온라인에서 판타지 소설을 연재했고,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방송국 시험을 치른 건 당연한 선택으로 보여요. 다만 시나리오 작가나 드라마 PD가 아니라, ‘예능 PD’를 선택했단 것이 조금 의외죠.

“예능은 여집합이에요. <무한도전> 같은 캐릭터 버라이어티도, <알쓸신잡> 같은 토크쇼도,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상담 프로그램도 모두 예능이라는 한 단어로 묶이잖아요. 드라마나 시사교양이 아닌, 다른 애매한 프로그램은 모두 예능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만큼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자유도가 높다는 뜻이에요.”

게다가 확장성도 큽니다. 시사교양은 마니아층이 따로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전해도 그 확장성이 낮아요. 예를 들어, 기후 위기를 경고하는 다큐멘터리는 평소 기후 위기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이 봐야 깨달음을 얻겠죠. 실제로는 원래 관심 있던 사람들만 봅니다. 권 PD는 이 문제를 예능이란 포맷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능에서 기후 변화 이슈를 소개하는 거예요.

실제로 권성민 PD는 <톡이나 할까?>에서 농인의 세계를 소개했어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한자리에서 만나되, 육성이 아니라 카카오톡 메시지로 인터뷰하도록 했죠. 덕분에 인터뷰 방송임에도 청각 장애인들이 출연할 수 있었어요. 유명 토끼 캐릭터 ‘베니’를 만든 구경선 작가, 농인·청인들로 이루어진 댄스팀 ‘핸드스피크’ 같은.

“다만 예능의 본질은 ‘유희’에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요. 쉬는 시간까지 교훈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예능의 할 일은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는 데에서 끝나요. 욕심내서 교조적인 이야기를 하는 순간, 예능의 역할을 넘어선 거예요.”
권성민 PD. ⓒ롱블랙

Chapter 2. 양극단의 세계가 만날 때, 새로움이 창출된다

권성민 PD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대립되는 세계’를 다룹니다. 2019년 방영한 그의 첫 단독 연출 프로그램 <가시나들>에서는 시골 할머니들과 20대 연예인들이 짝을 이뤄 한글을 공부했어요. 원래 그는 영화 <시네마 천국> 같이 노인과 소년·소녀가 함께 나오는 작품을 좋아했다고요. 양극단의 세대가 만날 때 시너지가 생긴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아내가 제 장르에 별명을 지어주기를 ‘노소물’이라고 하더군요. 노인과 소년·소녀가 만나는 스토리요. 세대를 뛰어넘어 관계가 일어나는 순간의 묘한 쾌감이 있어요.”

<가시나들>에서 배우 장동윤은 할머니와 서로 쌀을 씻겠다며 투닥였어요. 가수 최유정은 할머니들과 막걸리로 낮술 한 잔을 들이켰죠. 심지어 제작진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담당하는 할머니가 더 귀엽다’며 다투기 일쑤였답니다.

당시만 해도 할머니가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낯설었어요. 할머니 출연자들과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는 촬영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했죠. 권 PD는 ‘열린 촬영 현장’을 만들었습니다.

“스태프들에게 할머니들이 먹을 거 주시면 다 받아먹으라고, 뭐라고 물어보시면 다 대답해 드리라고 일러두었어요. 원래 방송에서는 제작진들이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게 당연했지만, 할머니들에게까지 ‘척’을 시키긴 싫었거든요. ‘제작진이 안 보이는 척’, ‘즐거운 척’해야 한다면, ‘진짜 정’을 쌓을 수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톡이나 할까?>는 대립되는 대화 방식을 한꺼번에 사용했어요. 얼굴을 마주 보고 있기에 가능한 표정, 눈빛 같은 비언어적인 소통과, 메시지로 대화하는 ‘언어적인 소통’이 한 화면에 등장했죠.

“마주 앉아서 카톡을 한다? 되게 낯간지러워요. 보통 업무상 카톡을 할 때 손으로 ‘ㅋㅋㅋ’를 써도 무표정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농담을 던져서 피식 웃게 되는 순간, 메신저 창의 ‘ㅋㅋㅋ’와 실제 내가 웃고 있는 순간도 있죠. 그 미세한 감정의 순간을 포착하는 게 포인트였어요.”

덕분에 <톡이나 할까?>는 ‘새로운 장르’라고 평가받았어요. 하지만 권 PD는 살짝 비틀었을 뿐이라고 말해요.

“새로움은 직관적이어야 돼요. 직관적이지 못하면 그건 그냥 낯선 거예요. 제가 긴 머리였다가 단발이 되면 지인들에게는 새롭다고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절 모르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그냥 낯선 사람인 거죠. <톡이나 할까> 역시 새롭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그냥 토크쇼거든요. 가장 새로운 것은, 고전에 약간의 변화를 줄 때 탄생합니다.”
ⓒ가시나들

Chapter 3. 대립을 화합으로 만드는 법

권성민 PD만의 ‘대립’이 가장 고도화된 프로그램이 바로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입니다. <더 커뮤니티>에서 권 PD는 ‘대립’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화합’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자 했어요.

프로그램 컨셉은 대놓고 ‘대립’을 표방했어요. 젠더, 정치, 계급, 개방성 차원에서 서로 대립되는 12명의 참가자가 서바이벌을 벌여요. 1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모두가 보는 화면에 ‘모든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다’라는 문장이 뜨고, 이에 동의한 출연진이 두 명 있다는 사실을 공지해요.

자극적이에요. 이 장면을 보고 생각했어요. ‘양극단에서 서로를 물고 뜯는 온라인 유저들을 타깃한 콘텐츠일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커뮤니티>의 리뷰로는 이런 댓글이 가장 많았어요. “편견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편견이 사라진 프로였다.”

방송에서 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의 스피치를 듣더니 눈물을 훔쳤어요. 페미니즘 활동가 이력이 있는 출연자가 보수 성향의 래퍼와 웃으며 장난을 쳤고요. 어떻게 이런 화목함이 연출됐을까요? “그냥 함께 생활하고 대화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권 PD는 말해요.

“‘온라인에서 쥐 잡듯이 싸우는 사람들이 실제 만나서도 싸울까?’ 절대 못 싸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서로의 맥락과 역사를 안다면요.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온라인에서의 싸움은, 필터 버블, 에코 챔버 효과 같은 사회 문제를 가속화시켰죠.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결코 그런 모습은 아니잖아요. ‘생각보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싶었어요.”

출연진들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탈락시키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게임’을 해나갔어요. 예를 들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스피치하는 미션이 주어졌죠. 서로의 스피치를 들으며 어느새 상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 부유층 참가자에게도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구나’ 하면서요.

빌런, 즉 악역도 여느 서바이벌과는 다릅니다. <더 커뮤니티>에는 이른바 ‘불순분자’ 캐릭터가 있어요. 화합을 방해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아야 자신도 더 많은 상금을 챙길 수 있어요. 그래서 은근히 타인의 생존을 도와요. 그 덕에 최종회까지 탈락한 참여자는 단 네 명에 불과했어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두 가지가 있으면 화제가 돼요. 빌런과 영웅. 빌런을 만드는 건 쉬워요. 그 사람을 이기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몰아넣으면 돼요.

그런데 <더 커뮤니티>에서는 한 사람이 밑바닥까지 이기적으로 변하는 장면은 별로 없어요. 저는 시청자가 피폐해지지는 않았으면 하거든요. 적어도 이걸 보고 나면 내가 사는 세상, 만나는 사람들을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더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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