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Veteran] 두산 베어스 김재호

안녕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김재호의 시간에는 인내가 담겨있다. 주전으로 가기 위한 10년의 세월. 이 기나긴 시간 동안 그는 조바심 내지 않았다. 그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자신을 다듬고 기다릴 뿐이었다. 스스로 잘할 수 있겠냐고 수없이 물은 끝에 그 대답이 ‘Yes’가 되던 순간. 마침내 그의 빛나는 시간이 시작됐다. 이 시간이 오길 무던히 기다린 그는 그동안 준비한 모든 걸 쏟아냈다. 김재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하고 멋있는 수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천재 유격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표한 바를 다 이룬 그는 행운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갔다고 얘기한다. 이제는 덤덤하게 프로 생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그. 점점 다가오는 대단원을 그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두산 베어스의 영원한 유격수, 김재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Yeon Sang Eun Location Jamsil Baseball Stadium

#천유의 근황

먼저 독자분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9월 9일 인터뷰)
너무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두산 베어스 김재호입니다. 인터뷰 요청이 자주 왔었는데, 제가 나갈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래 기다렸습니다. 몇 년 만인지 아나요?
2019년에 우승했을 때 인터뷰한 게 마지막이죠? (맞아요. 5년 만에 만나게 됐는데, 5년 전과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9년에는 제가 주축일 때 우승하고 나서 촬영한 거였잖아요. 지금은 워낙 연차가 쌓여서 그런지 언제 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됐죠. (웃음)

생각도, 고민도 많은 2024시즌이었어요.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이번 시즌을 돌아보자면 어땠나요?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제 준비가 늦었어요. 팀에 합류한 시점도 늦었던 터라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죠. 게다가 작년에 팬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올해도 작년처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결과가 잘 안 따라오다 보니까 심적으로 힘들고 부담감도 컸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운 시즌이에요.

방금 얘기한 대로, 5월이 돼서야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생각이 엄청 많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첫 경기에 2루타 두 개를 치고 나서 ‘아, 됐다!’ 했는데, 그 순간에 욕심이 너무 컸는지 부상이 왔어요. 좋은 감을 이어 가야 했는데 의도치 않게 흐름이 끊겨버려서 속상했어요.

원래 ‘김ㅋㅋ’란 별명이 있을 만큼 웃는 표정으로 유명하잖아요. 근데 요즘은 표정에 무게가 느껴져요.
일단 잘 못 웃게 됐어요. 경기에 자주 나가지도 못하는데, 거기서 웃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포커페이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또 나이가 들다 보니 저희 세대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 요즘은 웃을 일이 더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흔히 팬들도 김재호 선수가 밝고 해맑은 성격일 거로 추측하는데, 원래 성격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죠. 꽤 진지한 편이죠. 오히려 재미도 없고 말도 잘 안 해요. 하지만 겉으로는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한 거예요. 야구장에 팬들이 선수들에게 힘을 받기 위해서 오시는 거잖아요. 저희의 표정을 보고 더 기분 좋았으면 하는 마음에 더 웃으려고 노력도 해요. 누가 웃으면 함께 웃게 되잖아요. 그래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드리려고 더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웃는 게 독이 될 때도 있어서 자제하게 되네요.

그러고 보니 야구장 안에서와 밖에서의 성격도 달라 보여요.
경기장에서는 웃고 있지만, 라커룸에서는 후배들이 어려워하는 선배죠.

후배들이 김재호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유해져서 나아진 편인데, 예전에는 저한테 말을 잘 못 걸었죠. 그래도 지금은 제가 후배들에게 일부러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니까 조금씩 편하게 대하는 느낌이에요.

팀 내 최고참이잖아요. 요즘 후배들과는 어떻게 지내나요?
웬만하면 피해 다녀요. (웃음) 저희 세대랑 요즘 세대는 다르잖아요. 후배들은 정말 쾌적한 환경에서 야구를 즐길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먼저 후배들을 불편해하면 그 친구들이 더 불편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조언해 줄 때 말고는 되도록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모범적이고 바른 이미지라 더 다가가기 어렵겠어요.) 제가 안 웃으면 무섭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이 선배가 화났나?’라는 마음이 들 거예요.

평소에 친구도 잘 안 만나고, 최대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하잖아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편인가요?
한 번은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가 “김 선수는 몸 안에서 스트레스를 분해하나 보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여기면, 그게 더 스트레스예요. 반대로 그게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것이 아니거든요. 원래 힘들다고 곱씹을수록 더 힘들어지잖아요. ‘안 힘들어, 안 힘들어’하면 정말로 안 힘들어지는 거예요.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해요. 내가 말하는 대로 뇌가 인식하니까요.

요즘 아내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해요. 함께 나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혼자서도 촬영을 하더라고요. 적성에 맞는 편인가 봐요?
예전만큼 경기에 잘 나오지는 못하니까 팬들이 근황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 보여드리니까 반가워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렇게 소식도 전할 겸 출연하고 있어요.

#자신감의 원천

2004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에 빛나는 주인공이었어요. 야수 1차 지명은 드문 일인데, 그때 기억이 나나요?
사실 별로 의식하진 않았어요. 프로에 가지 못할 거라는 의심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대학교와 프로 중에 어디를 가는 게 나을지만 고민했어요. (1차 지명이 될 거라고 예상은 했나요?) 상위 순번에서 뽑힐 거라고는 예상했어요. 그땐 연고지 내에서 1차 지명을 했거든요. 당시 프로야구 판도를 봤을 때 서울팀에서 제가 필요하다고 봤고, 여러모로 유리한 입장이라고 느꼈어요. (1차 지명 직후엔 어떤 느낌이었어요?) 큰 감흥은 없었어요. 그저 프로에 가서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가끔 모교인 중앙고등학교 얘기가 나오면 뿌듯해하잖아요. 김재호에게 중앙고란?
정말 훌륭한 학교니까요. 제게 중앙고는 감사한 존재예요. 큰 도움을 받은 학교기 때문에 저도 최대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에 중앙고 후배들이 프로에 잘 오지 못해서 아쉽고, 더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공부를 잘하는 학교라 운동부가 관심을 못 받을 때도 있는데, 앞으로 운동부에도 신경을 더 써주셨으면 해요. 제가 나온 중학교가 없어져서 이제 모교는 중앙고만 남았거든요. 그래서 더욱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입단할 당시 김재호가 보는 두산 베어스는 어떤 팀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순위가 낮은 팀이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OB 베어스를 좋아했죠. 특히 반달 유니폼이 멋있어서 제가 학생일 때 많은 아마추어 선수가 두산에 가길 원했어요. 그리고 대도로 유명했던 김민호, 정수근 선수가 너무 멋있어서 함께 뛰고 싶기도 했고요. 가서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근데 막상 팀에 들어오니 그게 안 되더라고요. 제가 기대한 것과 현실은 달랐던 거죠.

두산 베어스는 순위는 낮았지만, 선수층도 두꺼웠고 주전도 확실한 팀이었잖아요.
그렇죠. 근데 주전으로 뛰는 선배들이 다들 나이가 있어서, 머지않아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기대와는 반대로 정말 긴 인고의 시간을 보냈어요. 다른 팀과 트레이드 이야기도 종종 돌았는데, 솔직한 마음은 어땠어요?
솔직히 다른 팀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실제로 다른 팀에 보내달라고 요청도 했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저 자신에게 물었어요. ‘너 다른 팀 가서 주전으로 뛰면 잘할 자신 있어?’ 근데 준비가 안 됐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직 실력이 올라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가만히 기다린 것 같아요. 그래서 트레이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없었어요.

10년을 버티고 마침내 주전이 되었을 때 어땠나요?
확실한 주전이 되기 전에, 전역하고 잠깐 경기를 여러 차례 나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스스로 실망을 크게 했죠. 전 잘할 수 있을 거로 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2013년 중반에도 (손)시헌이 형이 다치면서 기회를 종종 받았는데, 그때도 잘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고요. 그러다가 2014년 6월부터 주전으로 나갔는데, 하필 바로 전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삼진을 당했거든요. 걱정됐지만, 다행히 그 뒤로 잘하면서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즌이 되었죠.

수비만큼은 자신이 있었을 것 같은데, 프로에서의 첫 수비도 괜찮았나요?
평소에 수비는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장점은 풋워크였거든요. 마치 춤추듯이 화려하고, 더 멋있게 선배들에게 제 수비를 보여줬죠. 그때 절 보고 김태형 감독님, 안경현 해설위원님이 “재호가 우리나라에서 풋워크 최고다. 이런 풋워크는 처음 본다”라고 칭찬해 주셨어요. 근데 경기를 하다 보니 화려한 풋워크가 필요가 없는 거예요. 긴장해서 몸이 굳게 되니까 제 풋워크가 안 나오는 거죠. 그때 프로에서는 긴장감과 싸움에서 이기는 게 먼저라는 걸 깨달았고, 긴장을 극복하면서부터 조금씩 제 원래 수비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풋워크도 풋워크지만, 포구 후 송구하는 속도 얘기도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이건 연습해서 되는 건가요? 아니면 솔직히 김재호라서 가능한 건가요?
이건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은 결국 내가 수비를 갖고 놀 수 있는 실력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절 천재 유격수라고 불러주시지만, 사실 저는 천재가 아니고 노력형이에요. 그만큼 노력을 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자신감이 생겼고요. 그리고 전 남들과는 다른 스타일로 수비를 해요. 이를테면 다른 선수들은 길이 들여진 글러브를 선호하는데, 전 딱딱한 글러브를 쓰는 편이죠. 딱딱한 글러브를 쓰면 아무래도 공이 글러브에 쏙 들어가기보다는 글러브 끝에 걸쳐지거든요. 그러니까 글러브에서 공을 뺄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빠른 거죠.

그렇게 되면 수비할 때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죠. 근데 제가 아까 얘기했잖아요. 자신감! 후배들이 이 동작을 보고 ‘선배님. 전 못합니다’라고들 해요. 제 딱딱한 글러브를 보고 어떻게 수비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제 글러브로 수비를 하려면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는 안 돼요.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는 힘이 빠져야 동작이 자연스러워지는데, 제 수비도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것도 기술이에요.

김재호가 보는 유격수의 매력은 뭔가요?
아무래도 수비의 중심이잖아요. 포수, 중견수의 가운데에 있는 포지션이고요. 센터 라인에서도 가운데서 조율을 잘 해줘야 그 팀이 잘할 수 있어요. 유격수가 못하면 내야가 흔들릴 수밖에 없거든요. 통계적으로도 유격수가 강한 팀이 좋은 성적을 냈고요.

#좋은 마무리를 위해

프로 입단 후에 여섯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올스타전 출전, 골든글러브, 타율 3할, 국가대표, 두산 우승, 그리고 일본 진출이었어요.
네. 그랬죠. 그중에서 일본 진출만 못 이뤘네요.

주전으로 도약한 시기와 맞물려 목표를 빠르게 이뤘어요.
맞아요. 너무 한 번에 이뤄버렸어요. 그렇게 행운이 지나치게 빨리 찾아와서 내려가는 것도 빠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목표가 있어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어요. 살면서 목표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정말 커요. 제가 시즌 초반부터 주전으로 뛴 첫 시즌이 2014년이고, 이 여섯 가지 목표를 세운 게 2015년이거든요. 2014년이 끝나고 열심히 버킷리스트를 만든 기억이 나는데, 2014년에 타율 2할 5푼을 치다가 갑자기 다음 해에 3할을 쳤어요. 헛된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계속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생기는 거예요. 물론 지금은 나이도 마흔이고, 주전에서 내려오고 나서부터는 목표를 정하기 힘들더라고요. 단기적으로 그날 하루의 결과만을 생각하다 보니까 성취감이 잘 안 나오는 거죠.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후배들은 확고한 목표를 정해서 노력을 하다 보면 저절로 성장할 수 있으니까, 꼭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어요.

근데 목표 중에 두 번이나 했던 FA는 없네요?
돈에 그렇게 욕심이 없어요. 돈보다는 내가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경기에 뛸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목표를 세울 당시엔 FA가 저와는 별로 상관없는 먼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팀에서 제 가치를 알아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지만, 원하는 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아쉬워하잖아요. 지금보다 시간이 더 생긴다면, 아이들과 어떤 걸 제일 먼저 하고 싶어요?
특별한 것보다도 아이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놀이터에서 놀고, 수영장도 가고, 놀이공원도 가고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녀오면 “누구는 아빠랑 어디 갔다 왔대. 아빠는 왜 우리랑 같이 못 있어?”라고 물어봐요. 그럴 때는 아무래도 미안하죠. 그래서 올 시즌이 끝나면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이제 야구를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나요?
일단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먼저고요. 그다음은 아직 없어서 요즘 생각이 정말 많아요. 뭘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지 고민을 자주 해요. 아직 결정된 바는 없고 열심히 밑그림만 그려보고 있어요.

베어스에서 최장기간 뛰고 있고, 출장 경기 수도 1위예요. 이 기록만은 꼭 지키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게 있을까요?
없어요. 언젠가 후배들이 금방 깰 기록들이라 큰 욕심은 안 나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김재호의 남은 야구 인생은 어떨 것이다!’
김재호의 남은 야구 인생, 잘 떠날 것이다. (아니, 너무 슬프잖아요…) 베어스의 선배들이 시즌을 다 마치고 은퇴하는 것보다 시즌 중간에 떠나는 걸 자주 봤어요. 그래서 저는 경기를 나가든 안 나가든 시즌은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어요. 그게 지금 버티고 있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인사드릴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야구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요. 얼마 남지 않은 제 야구 인생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직 우리는 천재 유격수 김재호를 떠나보낼 수 없다. 늘 든든하게 내야 중심을 지켜줬던 그가 없는 잠실 그라운드를 떠올릴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속절없는 세월은 우리의 마음을 알 리가 없고, 그 역시 천천히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있다.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의 시간. 그 순간이 조금은 천천히 찾아오길 바라며, 이기주 작가의 산문집 ‘한때 소중했던 것들’에 등장한 글귀로 글을 마친다. “소중한 사람이나 존재는 우리 곁을 떠날 때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무언가를 내게 남겨둔 채 떠나가거나, 내게서 소중한 무언가를 떼어내 가져간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2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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