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
배정자를 아시나요?

배정자의 아버지는
경남 김해의 아전이었는데,
배정남의 아버지가 명성황후 민씨에
적대적이었나 봅니다.
흥선대원군 하야 후
그의 행적과 발언들이 문제가 되어
대구에서 사형되었죠.

그 충격에 배정자의 어머니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배정자는 어린 나이에 천민으로 강등되었고
맹인인 어머니를 모시며
전국을 떠돌아 유랑하다가
기생이 되기도 하였죠.

비참한 삶을 도저히 버티지 못했던
배정자는
차라리 비구니가 되어버렸는데
3년 후 그녀의 정체가 탄로가 나 절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이후 죽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동래부사 정병화의 보호를
받았다고 하는데
역대 동래부사 목록에
그런 이름이 없어서
실존여부가 의심되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배정자는 정병화의 도움으로 조선을 탈출해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정병화의 존재는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그녀가 일본으로 간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때 다른 조선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지만
남편은 일찍 죽고
배정자는 과부가 되죠.

배정자는 일본에서 안경수라는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인물과 만나는데
안경수의 도움으로
배정자는 여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경수를 통해 김옥균까지
배정자는 알게 되었고,
김옥균의 중재로 이토 히로부미를 만났다고 하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호색한으로 유명하죠?

배정자의 미모가 눈에 띄어 배정자가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되어
이토 히로부미는
배정자를 첩보원으로 키웠죠.

이토 히로부미는 배정자를 고종의 통역관으로 임명해
배정자는 ‘사다코’라는 이름으로 귀국하였고

이때부터 고종을 모시면서
배정자는 온갖 고종의 정보들을 이토 히로부미에게 전달했다고 하죠.
일제강점기 후에는
일본군 헌병대에서 일을 하다가
만주로 넘어가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에서 근무했는데

그녀의 본업은 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 내 퍼져 있던 첩보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여기서 독립운동가들 색출 및 체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죠.

또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군 위안부 징집 및 파견업무를 도맡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지만 반민특위 해산으로 석방되었고
1952년 한국전쟁 도중 서울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배정자는 명백한 친일인이긴 하지만
그녀와 관련한 것들 상당수가
검증이 되지 않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이란 것도
일본 측 기록엔 아예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도 거론되지도 않죠.

하지만 반민특위가 체포한
친일여성들 중
가장 먼저 체포한 사람이
배정자인 것으로 보아
악질친일인임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