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는 돌덩이 매달고 움직인 배"… 직원 8500명 해고 위기

이유진 기자(youzhen@mk.co.kr) 2023. 3. 1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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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고금리로 채권가격 떨어질때
美국채에 과잉 투자 '역주행'
작년말 장부상 손실만 22조원
채권 손절 발표가 위기감 키워
파산 11일 전 CEO 주식 매각

◆ 실리콘밸리 뱅크런 ◆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단 이틀 만에 벌어졌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다만 은행이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경고음은 이미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테크 스타트업이 2000년대 닷컴버블 이후 가장 큰 가치 하락에 직면해 SVB 시가총액이 2년 전 440억달러에서 현재 170억달러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SVB 파산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계속된 기준금리 인상과 테크업계 불황이 깔려 있다. 여기에 예민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 고객의 예금 인출이 더해져 미국 16번째 규모의 중견은행 파산 사태가 빚어졌다. 문제는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하면서 발생했다. 금리가 높아지자 신생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졌고, 기업 성장이 둔화돼 예금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고객이 요구하는 금리가 높아지면서 신규 예금을 유치하는 비용도 올라갔다.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미실현손실(자산 획득 비용과 시장 가치 간 격차) 문제도 생겼다. SVB의 모회사인 SVB파이낸셜은 장기 미국 국채와 정부 지원 모기지증권을 주로 매입했는데, 고금리 때문에 SVB파이낸셜이 보유했던 증권들의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말 SVB가 보유한 증권 포트폴리오에서 미실현손실은 17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넘어섰다.

SVB는 대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자를 안심시킬 목적으로 8일(현지시간) 증권 매각 결정을 발표했다. 210억달러 상당의 증권을 18억달러의 손실을 안고 매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결정이 시장에 공개되자 상황은 악화됐다. 오펜하이머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토퍼 코토우스키는 "이 결정이 SVB 수익성에 '돌과 같은 닻(stone anchor)'을 만들었고, 은행은 금리 변화에 취약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SVB가 투자금을 변동금리 증권부터 다른 은행 예금까지 다양한 수단으로 분산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SVB 최고경영자(CEO)의 도덕성 문제도 제기됐다. 블룸버그는 10일(현지시간) SVB 공시자료를 인용해 그레그 베커 회장 겸 CEO가 지난달 27일 모회사인 SVB파이낸셜 주식 1만2451주(약 47억6000만원)를 매각했다고 보도했다. 파산 공식 발표 11일 전이다.

이번 파산으로 8500여 명에 달하는 SVB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됐다. SVB 파산 관재인인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지난 10일 SVB 직원에게 45일간 고용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발송했다. 이 기간 안에 SVB 인수 기업이 나오면 직원 고용이 유지되나, 아닐 경우 파산절차가 끝나면 직원들은 해고된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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