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년 장수 CEO의 한국 출장
무려 17명이 왔다. 구단 고위층이 총출동한 셈이다. 갑자기(?) 한국을 찾은 명문 구단 샌프란시스코(SF) 자이언츠의 얘기다.
가장 유명한 건 사장이다. 버스터 포지(38)는 슈퍼 스타였다. 여기에 잭 미나시안 GM(단장)도 함께했다. 선수단 쪽도 마찬가지다. 굵직한 이들이 동행했다. 신임 감독 토니 비텔로와 간판스타인 유격수 윌리 아다메스다.
그중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래리 베어라는 이름이다. 직위는 구단 프레지던트(president)다. 일반적인 번역으로는 ‘사장’이다. 얼핏 포지와 동급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그보다 훨씬 위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최고 결정권자는 당연히 구단주다. 자이언츠의 경우 그렉 존슨 회장(chairman)이다. 그 아래 임원(executive)들로 구성된다. 포지도 그중 하나다. ‘야구 운영부문 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재직 중이다.
래리 베어(68)는 이런 임원들 중에서 최고위직이다. 즉 CEO(Chief Executive Officer)를 겸직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토박이다. 증조부 때부터 4대째 살고 있다. 대학도 그곳에서 다녔다. UC버클리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직장이 자이언츠였다.
오래 다니지는 않았다. 하버드에 진학해 공부를 더 했다(MBA). 그리고 방송사(CBS)를 거쳐 다시 야구단으로 복직했다.
학벌 좋은 유태계다. 중요한 직책을 두루 섭렵했다. (현재의) 오라클 파크 건설에도 참여했다.
그러던 끝에 CEO 자리에 올랐다. 51세 때인 2008년의 일이다. 그리고 벌써 18년째 재임 중이다. 그동안 (야구부문) 사장은 여럿이 바뀐다. 이정후를 스카우트했던 전임 파한 자이디, 이어받은 현직 버스터 포지가 그렇다.
그는 대외적으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단 내의 상당한 실력자임은 분명하다. 그런 인물이 직접 한국을 찾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박 3일간 동분서주
자이언츠 출장팀은 나름대로 바쁜 일정을 보낸다. 특히 호스트를 맡은 이정후가 정신없었다.
우선 아다메스를 삼성역으로 데리고 간다. 얼마 전에 왔던 동네 주민의 동선을 따른 것이다. 엔비디아(샌프란시스코 소재) 젠슨 황 회장이 찾았다는 치킨집이다. 닭튀김을 먹으며, 둘은 깐부가 된다. 다행히 알아본 팬들이 있었다. 사인 요청도 받았다.
다음 날에는 비빔밥 먹방이다. 비텔로 감독도 참여해 K푸드에 엄지 척을 날린다. 사회인 야구선수 출신 최현석 셰프가 참여했다.
전통 체험도 빠질 수 없다. 남대문시장과 한옥마을을 돌았다.
비석치기, 딱지치기도 가르친다. 당연히 승자는 이정후다. 하지만 아다메스가 “잠깐만”을 외친다. “정후가 금을 밟았다”라며 이의를 제기한다. 물론 비디오 판독은 없었다.
조촐한 야구 교실도 열렸다. 휘문고와 덕수고 선수 60명을 초청했다. 여기에 황재균도 모습을 보였다. “(샌프란시스코에) 잠깐 있었는데, 기억하고 불러줘서 고맙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KBO 허구연 총재와 만남도 이뤄졌다. 래리 베어 CEO가 참석했다. 포지 사장, 미나시안 GM과 함께 예방하는 방식이었다. 미팅 시간은 40~50분 정도로 전해진다. 유소년 교류, 지도자 연수 확대 등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다채롭고, 신경을 많이 쓴 일정이다. 아마 이정후가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알선하고, 예약하고, 확인하고.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이언츠 구단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개막전 하고 싶다”
무척 이례적이다. 새해 벽두부터, 멀고 먼 출장길을 자초했다. 딱히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다. 그렇다고 급한 용무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대규모 출장팀이 다녀간다.
현지 언론도 놀라는 눈치다. 디애슬레틱이 이렇게 묘사한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이런 식으로 해외로 나가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아마도 첫 번째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자이언츠는 명문 팀이다. 자산 가치로 따져도 MLB에서 상위권이다. 양키스(82억 달러), 다저스(68억), 레드삭스(48억), 컵스(46억)에 이어 5번째다. 포브스 평가로 40억 달러 규모다. 환산하면 약 5조 8000억 원이 넘는 액수다.
게다가 베어 CEO 정도면 MLB에서도 거물급이다. 그런 인사가 직접 행차했다. 프런트와 선수단 수뇌부를 모두 이끌고 말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정후 때문’이라고 한다. 베어 CEO의 말이다.
“우리 자이언츠 패밀리가 한국에 온 것은 정후에 대한 사랑과 존중 때문이다. 그는 입단 첫날부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야구장과 클럽하우스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에 비텔로 감독도 말을 보탠다.
“이정후 영상을 많이 봤다. 편하게 할 때 최고의 결과를 낸다고 본다. 풀타임 2년 차에 더욱 기대가 되며, 시즌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많이 도울 것이다.”
물론 다 안다.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진짜는 따로 있다. 역시 베어 CEO의 속내다.
“자이언츠는 국제 경기에 참여할 의사를 MLB에 전달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우리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지다. 시범경기 혹은 개막전을 치르고 싶다.”

MLB 역사에 남을 도쿄 개막전
솔직히 한국에서 게임하는 건 강행군이다. 선수들은 대부분 질색한다. 10시간 넘게 이동해야 한다. 날씨와 시차도 다르다. 자칫 시즌 전체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하려고 한다. 서울과 도쿄시리즈가 성공을 거둔 탓이다. 특히 도쿄 개막전(2025년 3월)은 MLB의 역사가 바뀐 사건이다. 엄청난 흥행을 직접 목격한 탓이다.
입장권 판매는 말할 것도 없다. 기념품 팝업 매장은 일주일 내내 장사진을 이뤘다. 여기서 올린 수익(추정액 4000만 달러)이 기록적이다. 월드시리즈를 능가했다는 통계도 있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당시 이런 말을 남겼다. “(일본은) 잠재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시장 가치를 가졌다.”
다시 베어 CEO의 얘기다.
“이정후 유니폼은 팀 내 판매 1위다. 오라클 파크에는 전용 섹션도 만들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그를 모델로 하는 광고도 목격했다.”
그는 마케팅 전문가이기도 하다. 중계권 계약과 구장 설립 때도 직접 실무를 뛰었다.
“이번 방한 기간 동안 기업 몇 군데와 미팅을 가졌다. 꽤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아마 올해는 오라클 파크에도 한국 광고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아쉬움은 분명하다. 지극한 정성에도 한계도 어쩔 수 없다. 다저스가 일본에서 거둔 성과만큼 바라기는 어렵다. 아직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 같은 스타와 비교하기는 이르다.
그 점은 자이언츠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는 ‘짝수 해의 챔피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부쩍 쇠퇴했다. 이렇다 할 실적도 없고, 전국구 스타도 사라졌다. 이젠 다저스와 차이가 크다는 인식이다.
물론 이정후 본인의 탓도 크다. 여전히 기대치에 못 미친다. 2년을 뛰었다. 풀타임 시즌도 치러봤다. 하지만 거액의 몸값에 어울리는 활약은 없었다. 현지 여론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냉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렇다. 뜬금없고, 생뚱맞다. 그런 느낌이다. 이번 자이언츠의 일정 말이다. 바쁘게 뭔가는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저러지?” “오버 아닌가?” 하는 물음표만 생길 뿐이다.
마치 승패와는 전혀 상관없는. 혼자서만 열심히 달리는. ‘무관심 도루’ 같은 느낌이다. 세이프된다고 해도, 기록으로 쳐주지 않는 그런 플레이 말이다.
